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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대원들의 복색 (김천빗내.전북고창.구미무을 농악)이모 저모.
天. 地. 人 을 상징하는 농악대원들의 복색 바탕에 입은 옷은 상하 흰색옷에 쪼끼를 현(玄)의 색으로 청색복색(하늘.남.양)이 왼쪽(좌측)어께에서 우측허리에서 훈(纁)(적색복색(땅. 여.음)이 우측어께에서 좌측 허리로 가슴(앞)과 등(뒤)에서 서로교차(양과 음이서로교차)시켜야 하며 황색복색(인간이 탄생)은 허리를 감아야 바른 착용방법이다 5색을 가추워 우리의 전통문화로 계승하길바람니다(필자위주)
현제 사용중인 예로서 머리에 쓴꼬갈도 오색으로 해야함에도 흰색(3).황색(2)또는 적색 위주가 많고 일부에서는 적색.황색.흰색(2).녹색또는 청색.또한 흰색(5)으로 즐기고있다.
바른복색으로 음양오행의 기본뜻으로 이왕이면 훈(纁앞).현(玄뒤)과 청(靑좌).백(白우).황(黃정수리.중앙)이렇게 오색을 배치하고 하는 바랍입니다.(필자위주) 아래 사진들 복색 착용방법이 가지각색이다 공통된 복색 착용방법이어야하겠다
김천시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8호인 금릉빗내농악의 전승보존 및 지역전통문화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널리 홍보하기 위해 3월부터 10월까지 지속해서 빗내농악 상설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전형적인 여름의 뜨겁고 습기를 많이 품고 있는 후덕지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말을 맞이하여 금릉빗내농악 보존회는 2일 직지문화공원 상설공연장에서 빗내농악 상설공연을 열어 직지공원을 찾은 관광객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금릉빗내농악의 특유의 웅장하며 박진감 넘치는 꽹과리, 북소리, 장구와 소고 등의 가락이 울 화음을 이루며 직지공원의 허공을 가로지르며 퍼져 나가자 문화공원을 찾은 시민을 비롯한 관광객들은 하나 둘씩 공연장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리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금릉빗내농악단은 신명 나는 가락을 선사하기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해 가락과 농악 진을 펼쳐 보였으며, 이를 지켜보는 관객은 몰두로 인하여 더위를 한동안 잊을 수 있었으며, 가락에 맞춰 어깨춤을 추는 관객도 눈에 뛰었다.
한편, 김천 빗내농악단은 지난 국제자매도시 중국 성도시 초청 제3회 국제무형문화재축제에 참가하여 현지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고 돌아 왔다.
또한, 김천 빗내농악단은 오는 10월 여수 대회를 준비하기 위하여 단원을 대폭 충원할 예정으로 있으며, 더욱 웅장하고 규모 있는 빗내농악단을 위해 김덕수 빗내농악보존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함께 많은 노력을 펼치고 있다.
<금릉빗내농악 상설공연 이모 저모>
흰(白色)옷에 黑色조끼.左에綠色.右에黃色 허리(中央)에 赤色. 상모(위에 흑색.아래 속에 赤紅色).끈(白色)그리고 고깔은 白色으로 통일 ↑ 윗사진 김천 금릉 빗내 농악
고창농악 ↓
판굿가락 및 선반 전체가 진풀이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옷은 白色.조끼靑色.우측어께赤色 허리에黃色 두가지色을 綠色으로 함께 묶어서 오색을 만든 복색입니다. 각 악기별 개인놀이 과정 북놀이, 설장구 등의 가락과 춤을 배우는 고깔색 앞뒤 黃色 左右 赤色 상단에 白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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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단조로우면서도 힘이 잇고 강하면서도 부드러움이 있는 구미 무을 풍물놀이
멋을 통해 인간다운 삶의 향기에 젖어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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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參考 ~ 오방색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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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정,흰색,파랑,빨강,노랑 오방색의 의미 ~
흑(黑), (만물을 관장하는 신의 세계)
오방색에서 흑색은 북쪽을, 계절로는 겨울을 나타냅니다.
흑색은 태양이 사라진 어둠을 상징하며 죽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만물의 생사를 관장하는 신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흑색의 범위에는 검은색, 헌색, 담흑색, 회색까지 포함합니다.
검은색도 흑, 암, 현, 칠 등 여러 가지가 있어
검은색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복색으로 사용한 흑색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붉은 빛이 도는 흑색은 왕세자의 관복이나 백관의 시복 색상이었고 붉은빛이 없는 흑색은 흉례복의 색상이었습니다.
쪽물을 짙게 들여 붉은빛이 도는 검은색인 아청과 같은 귀한 흑색은 주로 제복에 사용했고
천한 흑색은 천민의 옷에 사용했습니다.
때로는 오간색이 오방색을 대신하기도 했는데 벽색이 청색을 대신하고 자색과 홍색이 적색을,
유황색이 황색을 대신하듯 검은색을 대신한 것은 압두록색(청둥오리 이마의 녹색)이라 하여 녹색 계열이었습니다.우리 전통 색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오방색!
백(白), (온화하고 너그러운 자연의 색)
오방색에서 흰색은 방위상으로
서쪽을, 계절로는 가을을 나타냅니다.
우리 민족에게 흰색은 곧 소색(素色)입니다.
소색은 가공하지 않은 무명, 삼베, 한지 등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흰색입니다.
빛나는 흰색을 만들기 위해 무명을
뽕나무 잿물에 삶아 표백하기도 했다지만
우리 일상의 흰색은 소색이었습니다.
조상이 살던 집 안 풍경을 보면 벽과 창은 한지와 닥종이 등
백색조로 마감되어 있고,
문인화와 공간을 장식하는 백자 항아리가 놓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흰옷을 즐겨 입었으며 문갑과 장롱 같은 가구도 무채색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 무색에 가까운 은은하고 편안한 주거 공간의 색감은
주변의 화려한 자연의 색과 안정적인 조화를 이루어냈습니다.
백의민족인 우리 선조들이 즐겨 사용한 소색에서 전통문화가
지닌 자연주의의 단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청색은 방위로는 동쪽을 상징하며, 계절로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으로 성장과 풍요를 의미합니다.
청색도 적색과 마찬가지로 액막이로 많이 쓰였습니다.
태양이 솟는 동방을 의미하는 청색은 강한 생명력을 나타내는, 양기 가득한 색이라 잡귀를 예방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혼례에서 청사가 빠지지 않고 신부 옷에 청색을 넣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오행 사상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동방이고 방위와 맞는 색이라 하여 청색은 서민에게도 허용해
상하 구별 없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음양오행설을 근거로 고려 충렬왕 때와 조선 태조 초기에는 흰옷을 입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서방의 색인 흰색이 동방인 우리나라의 기운을 막는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적(赤), (자연의 생명력과 태양의 에너지)
적색은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방위로는 남쪽에,
계절로는 여름에 속합니다.
양기가 왕성하고 만물이 무성해 생명을 낳고 지키는 힘으로 상징되어 생명의 근원과 신비,
태양을 의미하는 색입니다.
길한 의미뿐 아니라 잡귀와 병마의 접근을 막는 주술적 의미도 있습니다.
노인과 어린이가 늘 홍색 주머니를 차고 다닌 것도
모두 이런 의미 때문입니다.
양의 색인 적색은 혼례 등 길한 일에는 반드시 청색과 짝을 이뤄 사용했습니다.
전통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순수한 빨간색은
권력을 상징했기에 일반 서민이 빨간색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 고종이 곤룡포 색을 적색에서 황색으로 바꾸면서 일반인의 적색 사용이 완화되었습니다.
외국인 선교자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조선 기행>에서 당시 어린이들의 가장 흔한 옷 색깔로 진홍색을, 부녀자의 복색으로는 장밋빛을 들었습니다.
이처럼 조선시대 초?중기에는 상위 계급의 색으로, 말기에는 일반인의 의복에 적색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황(黃), (풍요로운 대지의 빛)
오행설에서 황색은 빛의 색이고 흙의 색입니다.
흙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근원이고 풍요의 상징이기에
황색은 오색 중 가장 고귀한 색으로 여겼습니다.
방위로 보면 동서남북의 중앙에 위치하며
천하를 통치하는 친자를 상징합니다.
신라시대부터 중국 제도를 모방해 황제의 색이라 해서 일반인은 황색 옷을 금했습니다.
고려시대까지 황색 곤룡포의 전통을 이어왔지만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청색 곤룡포를 입었습니다.
고려의 색인 황색,
즉 토 土의 기운을 누를 수 있는 것은 상극인 목 木의 기운을 가진 청색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태종대에는 중국 황제의 색이라는 이유로 조선의 왕도 황색을 입지 못했으나
이는 조선 말기 청국의 간섭에서 벗어나면서 사라졌습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이끌면서 스스로를 황제라 이르며 황룡포를 입었고 이후 서민들도 치자로 물들인 황의를 입는 풍속이 유행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