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제에서 절은 몇번 해야 하는가?
한국은 곧 산의 나라다.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요즘 주 5일제 근무제와 레크레이션(Recreation) 의 일환으로 산을 찾는 인구가 엄청 많아졌다. 가끔 휴일에 인근 산에 올라보면 마치 산길이 시장터를 방불할 정도로 등산인구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를 흔히 금수강산이라 표현함은 바로 이 산이 존재하되 수려한 산세와 산의 풍광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 들을 보면 서양화가들은 “풍경화“인 토지나 경지를 많이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전통적으로 겸재(謙齋)로부터 청전(靑田)의 현대화가에 이르기까지 진경화(眞景畵)라 하여 강산(江山)과 산천(山川)을 중심으로 그리는 산수화(山水畵)를 그리는데 산은 한국의 자연 공간의 본질이요, 도망칠 수 없는 필연의 구성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산이 역사기록의 단군신화에서부터 등장하고 있다.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로서의 산은 한국의 지리적 원형이자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사상이라 일컫는 한국인의 의식의 원형을 상징하는 형자(形姿)로서 한국 역사의 원초에서부터 삼위태백(三危太伯)의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의식주 생활을 들여다보아도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곧 산이다. 주거생활을 보아도 절대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사상에 풍수지리의 중요함을 의식, 집들이 집단화돼 산을 주로 등지고 흐르는 물을 마을 앞으로 정함도 바로 우리의 산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귀속사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고조선 조(條)에 보면, 단군께서 하느님 “환인(桓因)”의 손자로서, 그의 아버지이고 신(神)인 환웅천왕(桓雄天王)의 뒤를 이어 이 나라의 왕이 되었다가 후에 백두산(白頭山)에 숨어 산신(山神)으로 좌정하였다고 하며, 주몽 역시 산신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산신은 우리나라 역사와 민족 생성 때로부터 인정을 하고 우리민족의 의식의 밑바닥에 깊이 깔려있는 신앙으로 산신신앙이 내재하고 있다하겠다.
또한 《국조보감(國朝寶鑑)》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산신에게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 기록이 있고, 이를 기은(祈恩)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산신제의 풍속은 계속되었는데, 사악신(四岳神)으로, 남쪽은 지리산, 중간 쪽은 삼각산(三角山), 서쪽은 송악산(松岳山), 북쪽은 비백산(鼻白山)을 정하여 제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제천의식의 뿌리가 깊은데 고대 무천, 영고, 동맹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마을 단위나 군 단위 또는 국가적인 단위에서 제사지내는 천제단(天祭壇)(또는 천제당(天祭堂))이 있는데 대개 이 천제단은 산정이나 산기슭에 위치하고 하늘에 제사지내면서 별도로 산신을 함께 제사 지냈다.
산신은 여러 마을 또는 지역을 포괄하는 넓은 지역의 공동신앙체가 되는 예가 보편적이며 산신신앙 역시 역사가 깊어 신라 때부터 국가적인 규모로 명산에 제사지낸 기록이 있다.
그러나 산신은 명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모든 산에는 산신이 거주한다고 믿어왔고 지금도 믿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산신제를 정초부터 대보름 사이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봄·가을에 지내기도 하며, 지금은 변형되고 형편상 산악인들은 한결같이 해마다 정초나 그해의 산행을 처음 시작하는 날에 산신제를 올린다. 우리 낙동민속보존회 산악회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해마다 그해 산행 행사 초에 산신제를 올림은 당연한 의식(儀式)중의 하나라 하겠다.
여기서 산신제를 올릴 때 느낀 점으로써 여려 제물이나 의식순서 등은 대체적으로 인습적인 관례에 따라 한다고 보아 이의가 없으나 이 의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산신에 대한 절을 몇 번 올려야 하는가하는 문제이다.
일반적으로『생 일배(生 一拜,) 사 이배(死 二拜,) 절3배(佛.法.僧 三拜,) 왕·성현 사배(王·聖賢 鞠躬四拜)』란 말을 익히 들어 온 말이었는데 내 경우 평생 동안 많은 제례 행사와 전통 의식 등에 참여해 보면 이 예를 벗어나고 있지 않음을 볼 수 있었다.
즉 살아 계신 분에게는 4배였으나 간단히 생략하여 절을 한번만 하며, 그리고 돌아가신 분에게는 음양(陰陽)수의 원리에 의해 절을 두 번 올리고, 절(부처님.법.스님.에게)에서는 예로서 절을 세 번을 하며, 군왕이나 성인들에 대해서는 최고의 예우로서 절을 네 번씩(鞠躬四拜) 한다. 그리고 성균관에 모신 성현(聖賢)들에 대해서도 살펴보면, 가령 석전제(釋奠祭)시에 보면 성인의 경지에 이른 공자(孔子)같은 성현들에 대해서도 군왕의 예에 따라 절을 네 번식(鞠躬四拜)올림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혼례시는 협배로서 신부선2배후 산랑이답배로서 읍1번후1배,또신부가2배후 산랑이또답배로서 읍1번후1배,수연례시는 자손들이 4배를 올린다(옛우리 전배법:참고바랍니다.)그러나 요즈음은 절받는 어른들께서 요구하시는 데로 함이타당하다.(큰절로서 남자1 여자2번으로 보통하고있다)
이 절하는 예법에 대해서는 각 종교단체나 민족종교와 민속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하여 중국의 예의작법을 많이 따라왔다. 따라서 중국과 유사한 점이 많을 뿐만이 아니라 우리역사상 전통적으로 위의 절하는 법은 크게 변한점이 없는데 요즘 산신제 지낼 때에도 두 번식만 절을 올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은자(死者)도 신(神)이고, 산신도(山神) 신(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