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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교리 상식

가톨릭은 왜 좋은가/가톨릭으로 개종한 스웨덴의 대형교회 목사 인터뷰

작성자프란치스코|작성시간16.10.01|조회수110 목록 댓글 0

 

대형교회 목사 울프 에크만의 개종 : “우리는 완전한 크리스챤으로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가톨릭 교회에 주신 것들이 필요했다.

  

 

201439일 일요일, 울프 에크만은 업살라에 위치한 생명의 말씀 교회의 신자들 앞에 긴장하며 섰다. 양복에 하늘색 타이를 맨 이 스웨덴 목사는 이 대형교회가 1983년에 설립된 이래로 희노애락을 나누웠던 신자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제가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날 중 하나가 될 겁니다. 라고 말을 꺼냈다. 그동안 유트브에서 8000번 이상의 조회를 기록했던 그의 연설이 시작된 몇 분후에 그는 요점으로 들어갔다. “저의 아내 브리짓다와 저는 최근 주님께서 저희를 가톨릭 교회로 이끄심을 느꼈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 일수 있겠지만, 저희는 이 결정에 대해 대단한 기쁨과 평화를 느낍니다.”

이제..” 그는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은 아마 오랫만에 최악의 것을 들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이때 카메라는 젊은 여성을 비추었고, 그녀의 입술은 놀라움에 떨리고 있었다.

은사교회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이 울프 목사의 결정의 중요성을 깨닫기가 어려울 것이다. 목사중의 목사로 일컬어 왔던 그는 스칸디나비아의 가장 큰 성서 학교를 설립하였고 구 소련에서 1000 곳 이상 교회의 설립을 도와왔다. 그는 설교와 저서를 통해 가장 빠르게 성장하면서도 세계의 가장 많이 보급된 크리스쳔 운동가이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명석함과 품위가 있으면서도 뛰어난 유머감각을 가진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분명히 완전하게 자신의 마음을 찾는 사람이었고 일단 자신이 찾은 것에는 그것이 불편함을 가져 온다 하더라도 그에 따르는 사람이었다.

  

 

당신은 어릴적에 루터교에서 세례를 받았는가?

  

그렇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큰 항구도시인 괴텐버그에서 자랐다. 그 곳은 강한 노동운동이 있었던 좌익도시였다. 나는 매우 세속적인 삶을 살았으나 1970년 한 친구의 전도로 인해 매우 강한 회개를 하였다. 당시 그 친구가 크리스챤이 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고 그 때 갑자기 나도 도망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몇 달동안 그친구가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며 구원자 이심을 깨닫도록 인도했다. 그것이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 때에 실제로 내가 어둠으로 부터 너무도 안전한 길로 나오게 된것이다.

  

 

당신은 젊은 시절에 갑자기 크리스챤의 분열을 느끼며 울기 시작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에 대해 말해 주겠나?

  

글쎄,..그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있었는데 그는 사실 지금은 루터교 낮은 교회 운동중 하나인 곳의 수장이다. 우리는 그 당시 학생이었고, 우리는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며 교회의 문젯점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것은 매우 갑작스런 일이었는데 교회의 분열에 대한 그리스도의 슬픔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예상치 않게 무언가가 닥친 것과 같았고, 내가 의도해서 한것이 정말 아니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마음 안에서 계속 있었지만, 많은 다른 일에 관여하였고, 삶은 계속 되었다. 그러나 밑바닥에는 오랫동안 그것이있어왔다.

  

 

당신은 1979년 루터교에서 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1983년 압살라에서 생명의 말씀 교회를 창립하였는데, 그것을 위해 루터교를 떠난것인가?

  

루터교를 떠난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목에서 떠난 것이다. 처음 내가 느낀 것은 성서 학교의 필요성이었다. 성서 학교를 시작하면서 단지 은사적인 루터교인 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교단의 사람들을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나는 루터 교회의 성령 은사적 환경에 젖어왔다. 내가 시작한 성서학교가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성서학교로 성장하였고 몇년동안 10000명의 학생을 배출했다. 이 사람들을 적절히 보호하기 위해 지역 교회의 필요성을 느꼈다.

  

 

생명의 말씀 교회에 성사가 있는가?

  

있다. 시작할 당시에 나는 매우 낮고 자유로운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말을 하곤 했고 그것은 은사적 운동 위에 말씀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1998년 쯤 후로는 점차적으로 거룩한 일치 (성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에 관한 작은 책을 썼고 그 책이 많이 퍼져 나가는 것을 보고 꽤 놀랐다. 가톨릭으로서 그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성체에 대한 것으로, 거의 가톨릭적인 관점이었기 때문이다. 1988년 즈음 내게 개인적으로 일어난 일은 나의 지역 사역이 크게 성장한 것이었다. 그것은 사실 천문학적인 성장이었다. 성서 학교도 성장했다. 1989 년 부터는 소련에 가서 미션을 시작했다. 지금은 그곳에 1000 곳의 교회가 있고 우리는 그의 사역과 연결이 되어있다.

나는 좀더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배경으로 좀더 안정적이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됬다. 그리고 좀더 교회의 구조를 이해할 필요성을 느꼈다. 교회의 본질을 알아야겠다는 도전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교회가 발전 함에 때라 여러 프로젝트를 시작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왔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불만족스런 마음이 남아 있었고 그 질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의식이 계속 자신 안으로 들어오고, 들어오고, 들어오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생명의 말씀 교회가 무언지를 말하는가? 아니면, 보편적인 교회를 말하는가?

  

둘다이다. 우리의 본질은 무엇이고 교회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이야기 하곤한다. 그리고 우리모두는 최소한 어떠한 일치의 형태에 대해 말을 한곤 한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에 이르면 외형적인 일치로서 뒤로 물러서게 된다. 이것이 나를 불만족스럽게 했고 좀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도전을 하도록 했다. 좋다. 교회의 근거가 무엇인가, 무엇이 기본이 되는가? 진정한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그 물음이 나를 성사로 이끌었다.

  

 

그래서 당신은 생명의 말씀 교회에 성체를 도입한것인가?

  

처음엔 그랬다. 루터교의 배경을 가진 나로선 물론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거기에 중요한 것이 빠졌다. 나는 자유 교회의 신학과 자유교회의 방식안에서 그것이 포장되어져 버린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나에겐 그것이 불만스러웠고 우리는 그것을(성체?) 좀더 강조하고 현존에 대한 것을 가르치며 빵과 술에 주님께서 실제로 일치를 이룬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물론, 그것이 또 다른 질문을 가져왔다.

  

 

당신은 성의를 입고 제대위에서 성체를 기념했는가?

  

성의는 입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일치(성체) 테이블이라는 곳에서 시작했고 후에 좀더 적당한 제대를 꾸몄다. 전례의 구조가 가톨릭과 매우 비슷하다고 말할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1989년에 스웨덴을 방문했을 당시 생명의 말씀 교회에서 그의 방문을 반대하는 기도를 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다. 불행히도 사실이다. 나의 신학생들이 극히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꽤 안티 가톨릭이다. 스웨덴에서는 특히 자유 교회와 은사주의자들은 안티 가톨릭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나역시 그러한 환경에 영향을 받았었다. 그래서 교황이 스웨덴에 왔을때, 그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 전에는 교황이 한번도 온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황이 비성경적인 영향을 주지 않기를 기도했다. 공개적으로 이점에 사과드린다. 그 당시에 그 곳에서는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했다.

  

 

당시 요한 바오로 2세가 크리스챤의 리이더라고 생각했나?

  

우리는 그를 적그리스도로 보지는 않았다. 우리에겐 그런 아이디어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성서에 뿌리를 두지 않은 가르침을 준다고 보았다.

  

 

당신을 가톨릭으로 이끈 중요한 영적체험이 있었는가?

  

여러 체험이 있었다. 이미 말한대로 1998년 부터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나에게 그것은 실존의 문제였고 교의적인 질문이었다. 우리는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실제로 무엇의 한 부분인가? 이것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100150년 후에는 이 자유 교회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어떻게 역사적인 교회, 특히 가톨릭 교회가 계속 이어져 오는 걸까? 안정성에 대한 이해와 교회의 역사가 나의 흥미를 끌었다. 이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을때, 특히 교회론에 있어서는 가톨릭과 접촉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나 둘씩 발견해 나아갔다.

나는 구 소련과 인도에서 일을 많이 했다. 나의 아내와 나는 인도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속에서 결국은 이스라엘로 가게 되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3년을 보내며 핵심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에 있으면서 여러 곳에서 가톨릭을 만났다. 가톨릭 사람을 만나지 않고서는 길을 갈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많은 다른 형태의 가톨릭 신자들을 만났고 매우 놀랐다.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로부터 은사주의자 까지.. 그리고 거기서 여러 다른 가톨릭 공동체와의 만남을 가졌다. 유럽의 여러 곳에서 가톨릭 교회에 대해 나의 눈이 열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스웨덴의 가톨릭 교회가 소수 이민자 현상으로 본다고 말했었다.

  

어느 면에서 그렇다.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스웨덴에서 가톨릭은 종교개혁 이래로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현재 스웨덴에는 가톨릭 주교 Anders Arborelius 가 있다. 그는 갈멜에 속해 있다. 그가 1998년 주교가 되었을때 종교개혁 이후로 처음으로 가톨릭 주교가 생긴것이었다. 우리는 서로 알고 지낸다. 그의 모범과 깊은 영성 생활은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강하게 말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주교님에게 나의 이스라엘에서의 경험을 이야기 하곤 했고, 그 후 가톨릭 성령 운동단체와 수도생활 운동, 그리고 여러 가톨릭 교회내의 다른 개인을 만나게 되어 2000년 부터 많은 것을 공부했다. 이것들이 조금씩 점차적으로 지금의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당신은 내면으로부터 가톨릭에 조금씩 좀더 가까이 가는 것이 옳다고 느낀것인가?

  

정말 그렇다. 나의 아내와 나는 이것을 두고 많이 기도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끌고 계심을 느끼게 하는 많은 예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것을 아주 천천히 해야한다고 느꼈다. 나에게는 책임져야 할 여러 교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마음 안에서는 갈망과 같은 것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런데 어떤 시점에서, ‘아니다, 어려워 보이지만 가능한 일이다하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언제나 자신에게 명확하지 않으면서 가지고 있었던 여러가지 다른 편견들이 노출되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알아가면서; 지식부족이거나, 혹은 그저 일반적인 편견등은 가톨릭에 대한 스칸디나비나 지역의 문화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러번의 부흥운동은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교류하고 그분을 잘 알고 있다는 자만심을 갖지고 있었다. 이러한 실험적이었던 것의 실제를 가진 가톨릭을 만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교리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 실제(현존) 한다는 것이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이 결정이 당신의 삶과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 보았는가?

  

물론이다. 기본 물음은 이것이었다 ; 이것이 진짜인가 아닌가? 만일 진짜라면 나는 행동해야 한다. 진실이 아니라면 나는 떠나야 한다. 그러나 점점 더 이것이 개인 적인 진리가 아니라 나와 관련되어 있는 것들에 대한 진리가 되어 갔다. 물론 나의 가족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나에겐 네 아들이 있는데 그들 모두 성장 하였으므로 그들이 잘 핸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진짜이고 주님이 나를 부르신다면 나는 내려와야 한다. 우리는 믿음을 살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재산이고 우리의 삶이다. 그러니 물론 주님께서 우리를 보살펴 주실 것이다. 이곳 압살라에는 3300명의 신자가 있다. 그들중 일부는 아마 실망하고 떠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적절하게 핸들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아내보다 내가 더 억제하기도 한 이유이다.

  

 

신자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느낌이 어떘는가?

  

물론 약간 긴장되었다. 그러나 발표하기 두주 전쯤 우리 교회의 작은 구릅의 몇명의 리이더급들에게는 이미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물론 그 곳에 나갔을때 어떤 사람들에게는 큰 쇼크일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특별한 감정이었다. 나는 목사다. 나의 교인들을 사랑하고 30년이 넘게 그들과 함께 했다. 그러므로 그것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건방지게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단상에 서자 마음이 침착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참으로 그것이 하느님의 손길이라고 느낄수 있었다. 그 분께서 인도하신다면 나의 사랑하는 교회도 돌보아 주실 것이다. 우리는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은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다.

  

 

당신을 그말을 했을때 그들의 얼굴이 어땠는지?

  

글쎄매우 조용해졌다. 그리고 은사적 교회가 조용해졌을때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것이다. 내가 말을 마치자 사실은 동시에 박수가 터졌다. 그에 나는 많이 놀랐고 끝나고 나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내게로 왔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축복한다. 당신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고 주님께서 이끌어 주실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한 말들이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다음날 우리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나는 두 시간동안 서 있어야 했고 그들은 가톨릭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쏟아내었다. 나머지 주는 우리의 모든 목사들이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할 준비를 하여 사람들을 도왔다. 매일 밤 우리는 그것에 대한 시간을 가졌다. 거기엔 감정들이 엇갈렸다. 어떤 사람은 이해했고, 어떤사람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그에 대해 매우 강한 감정을 보였고,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 맡겼다.

  

 

아직 가톨릭이 되지 않았는가?

  

내년 봄, 부활절 후가 될 것이다. 주교님이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좀더 개인적으로 조용히 할 것이다.

  

 

가톨릭 교회에서 어떠한 역활을 하기를 원하는가?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단지 가톨릭 신자로서 만족한다. 우리는 작년에 매우 강한 갈망을 하였고 매우 특권 같은 것을 느꼈다. 우리는 가톨릭 교회로 받아들여진 것을 주님의 은총으로 느낀다. 물론 나의 30년의 경험이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저 좋은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으로 매우 만족한다.

  

 

가톨릭 신자로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무엇인가?

  

성사적인 생활이다. 그것이 내가 갈망하던 것이다. 교회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을때 의문은 권위와 성사와 일치였다. 그 세가지가 우리를 교회로 이끈 것이다. 나는 항상 성사에 대한 강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내가 그것이 실제 하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을 때는 내가 밖에서 바라만보는 아웃사이더라고 느꼈다. 나는 그것에 참여하고 싶은 갈망을 가졌고 내가 할 수 없었던 방법의 성사생활에 끌렸다. 또한 그것을 보면서 우리의 성체기념 방법의 부족함을 보았다. 그것은 주님께서 가톨릭 교회에 주신 풍요로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내가 그동안 배운 것들이 잘못된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능력의 최대한 성서를 배웠다고 믿는다. 복음을 설교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빛에 따라 선교했다. 나는 우리가 하였던 모든 일과 교인들이 이룬 일들에 기쁨을 느낀다. 결코 그것들을 내버릴 수 없다. 그 곳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좀더 풍요롭고 깊은 곳으로 가는 것이다. 진정한 교회를 이해하고 참여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아니라도 나중엔 이해 할 것이다. 우리가 결정한 것은 감정적으로 한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끄심이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가톨릭 은사주의자라고 생각하는가?

  

글쎄, 그런것 같다. 그는 확실한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는 은사주의에 매우 열려있다고 알고 있다. 나는 그분이 하느님이 선택하셨다고 생각한다. 이 세대의 하느님의 사람. 그분은 우리 모두에게 도전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의 가난에 대한 견해는 나에게 많은 도전 의식을 주었고 그의 급진적이고도 복음에 땨라 사는 삶은, 국경을 넘나드는 진정한 용기를 심어준다.

  

 

당신은임무는 끝났지만 우정은 남아있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요일에 교회에서 그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그 시간이 지난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내가 가톨릭에 끌린 이유는 주님께서 가톨릭에 주신 크리스챤으로서의 완전한 삶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가톨릭 교회의 일원이 되길 원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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