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에서 예수교회와 새교회의 관계> 라는 글 제목을 달았습니다. 외국의 사례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두 교회의 관계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미국의 새고회에 대하여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스베덴보리=스웨덴볽의 영향을 직접 받은 교회는 새교회와 예수교회가 있고.. 간접적으로 통일교가 그 영향을 받았다는 짧은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영향이라? 그 영향이라는 말 자체가 어디까지 적용되어야 하는 것인지.... 어쨌든 그 글을 쓴 사람도 어렴풋이 그 관계는 들은 것 같습니다.
2. 창립 연대 순서로 <예수교회>를 먼저 언급합니다.
예수교회는 1933년에 평양 원산 안주 해주 등지의 열렬 기도인들이 모여서 창립한 교회=교단입니다. 이용도 목사 초대 선도감..그 후 이호빈 목사입니다. ..
예수교회는 스베덴보리신학과 관련이 있습니다. 원산의 예수교회 창립 주동인물들이 선다싱 스베덴보리=스웨덴볽의 애독자 연구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스웨덴볽 스위든볽 스베덴보리를 혼용하며 글을 씁니다. 한 사람의 이름인데 외국인 이름을 한국어로 표기하는 방법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것 뿐입니다.
80년대부터 스웨덴어와 가까운 발음 표기를 하자 해서 스베덴보리로 표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점차 공감을 얻어 지금은 새교회인이나 타교파 사람이나 출판물에서 스베덴보리라고 씁니다. 이것으로 정하는데 본인과 스베덴보리학회의 노고가 교계에서 인정되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중앙선도원이 발간한 예수교회 기관지 <예수>지에는 스웨덴볽의 생애. 저서 목록 선다싱이 스씨를 영계에서 만나 대화하였다는 편지.. 새예루살렘과 천상적 교리...등이 번역되었습니다...
연속으로 꾸준히 게재되지는 못하고 단편적 간헐적으로.. 당시 한준명 복음사와 박계주 선생이 이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3. 예수교회는 한국에서 자생한 교파입니다. 교회 설립 이전에 원산 지역에서 선다싱을 통해 스웨덴볽이라는 특이한 인물의 이름을 알게 되고.. 일본에서 천국과 지옥 일어역을 구해 읽은 것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선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가 18세기 스웨덴의 기독교 신비가의 글을 번역하였습니다... 천계와 지옥.신지와 신애. 신려론..등,..스즈키 교수는 스웨덴볽을 서양의 붓다라고 하였습니다.
1933년 예수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교회 창립의 핵심 인사들이 평양기도단의 이종현 이조근 김지영 유붕렬 등이고.. 원산에서는 백남주 한준명 박승걸 등인데.. .이용도 백남주 . 한준명 3인을 새생명의 길을 선포한 사람이라고도 하고 여선지파라고도 합니다.
33년 9월 9일 예수교회 원산예배당이 개천식을 하면서 동시에 원산신학산을 개강하였는데.. 그곳에서 수도생을 가르친 교수 내용이 스웨덴볽 신학과 유관하다고 봅니다 (수도감. 백남주. 교수. 백남주 한준명 박승걸. 수도생 남 5인 여 6인... 34년 가을 일 년 정도하다 운영난에 봉착하여 문을 닫음)
원산파가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선다싱 스웨덴볽의 영향을 약간 언급하였습니다. 자세하게 고증하여 비판한 것은 아니고 단편적으로...
4. 그러나 예수교회가 곧 새교회는 아닙니다. 만약 새교회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다면 그 교회 이름이 ``새교회``였을 것이고 . 규모는 아주 작았을 것입니다.
(그 시절에 새교회라는 이름으로 한국 기독교에서 용납이 되었을까? 설립 자체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현재도 시작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교회가 둘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예수교회는 이용도 목사의 부흥회와...평양과 원산의 기도운동이 장로교단에서 배척을 당하면서... 이단시되어 출교 제명 된 교역자 교인들이 모여서 설립된 교회입니다.
일제 시대 교회 수 30 개.교인 2700 여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평안남도; 평양부 안주군 용강군 강서군 대동군 평원군 성천군. .함경남도 원산부 덕원군 문천군 영흥군 황해도 해주군 송화군 연백군 강원도 이천군 경기도 경성부 등지에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예수교회의 창립 교인들은 주로 장로교인들이었고 감리교인들도 참여하였습니다. 목사들도 장로교 감리교의 목사 전도사였던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40년 통계로 교회 수 27개 그 후 연백군과 경성부 상도정에 교회 개척 소식 그러나 40년대는 일본의 종교 탄압이 극심해져서 예수교회도 몇 개 남지 않고 문을 닫고 지하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5. 해방 후 평양 예수교회의 이조근 집사 가족이 월남하여 서울 흑석동에 정착하였습니다. 그 아들 이정선 씨가 한국신학교를 다니면서.. .예수교회를 알려면 스웨덴볽의 책을 읽으라는 박선관 집사의 권유로 서점에서 천국과 지옥 등 몇 권의 책을 구하여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교회인들이 스베덴보리에 친숙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당시 원산의 한준명 목사는 북한 땅에 있었으므로..이정선 목사가 스베덴보리를 알게 된 것은 이른바 평양파가 알려준 것입니다)
그리고 헬렌 켈러 나의 종교를 읽고 스씨를 알게 된 정인보 장로를 만나 신앙적 교유를 하다 전쟁 후에....두 분이 미국 유학을 함께 간 것입니다. 매서추세츠 주 케임브리시 소재 편의상 보스턴 새교회라고 우리가 부릅니다. 제네럴 컨벤션 새교회.
6. 50-60년대 예수교회를 표방한 교회로는 서울연합교회 명수대예배당 한강예배당이 있었습니다.
서울연합교회는 이호빈 목사 설립한 교회로..중앙신학교 구내에 있어 교내 채플 같았습니다. (60년대 후반기 장사동 세운상가 안에 있는 중앙신학교에 간 적이 있음).. 그러다 70년대 대치동 신해청 아파트 상가에 있었습니다. 예수교회공의회가 이 교회를 모체로 하여 출범하였습니다. 현재는 서울 동작구 사당5동 서울 연합교회와 에덴교회가 통합하여 에덴교회 이름으로 교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인이 된 공의회 역대 의장...박영주 손순조 이호빈 김희방 목사.
명수대 예배당은 35년 경에 강숙경 씨가 개척한 교회입니다. (내자정 예수교회 개척자) . .일제 말엽 문** 씨가 학생 시절 이 교회에 다녔다고 하여 그 이름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 때 그 교회란 작은 교회로 목사는 없고 복음사가 있었습니다.[권성훈 복음사]. 50년대 말 군목에서 제대한 이원재 목사가 부임하여 한 동네 한강예배당 이정선 목사와 친구 사이였고 한 교파인지라 친하게 지냈습니다 명수대는 60년대에서 70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교회가 해산되었습니다
한강예배당은 해방 이듬해...평양에서 월남한 이조근 집사 가족이 흑석동 한강변 언덕에 있는 신사건물을 예배당으로 변경하여 시작한 교회입니다. 현재 서울 강서구 화곡동 제일예배당이 한강예배당의 후신이라고 보면 됩니다.
**1965년 부활주일 휴전되고 서울에 올라와 예배당이 전쟁 중에 없어져.. 이조근[리도근].집사 댁에서 10년 예배를 드렸고.. 65년 바로 옆에 있는 2층 목조 건물로 이전하였습니다. 이 때 간판은 예수교회라 하고 그 밑에 영문으로 THE CHURCH OF THE NEW JERUSALEM이라고 부기하였습니다. 새교회와의 연관성을 뚜렷이 한 것이지요.
그 전에는 {예수교회 한강예배당} 간판과 {예수교회 중앙선도원} 간판이 집사님 댁 문 양 기둥에 걸려 있었습니다. 세로 글씨로..
휴전 되고 나서 중앙선도원이 재소집되어 흑석동 한강예배당 안에 그 선도원을 둔 것입니다. 그러다가 60년대에 들어가서 작은 간판으로 바꿨는데.. 그 때 예수교회중앙선도원은 영문으로 THE GENERAL BOARD OF THE MISSION OF THE JESUS CHURCH-라고 길게 번역하여 병기하였습니다.
그리고 60년대 개교회 간판은 예수교회라 하고..SWEDENBORGIAN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60년대에 들어가 중앙선도원의 행정 기능이 약하여지면서.. 이정선 목사는 새교회라는 것을 더 나타내려고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시 교회 어른들은 새교회를 말하니까. 그러면 예수교회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에 대하여 일말의 의구심이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7. 이정선 목사는 1971년에 미국에 갔고... 흑석동에 있던 교회가 2년 정도 용산구 갈월동 남영동에 월세로 있다가 73년에 당시 신흥주택 개발지구인 화곡동으로 이전하여... 78년에 현 위치로 이전하여 신축한 것입니다. 현재 담임은 이영근 목사
예수인출판사에서 스베덴보리 저서를 꾸준히 번역하여 출판 중입니다.
*화곡동으로 이전하여 예수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새 건물이 세워지자. .당시 서울연합교회를 중심으로 하여...중앙신학교 출신 목사들이 조직한 예수교회 공의회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들도 교단 이름을 예수교회라고 하는데... 비록 합치되지 못한 부분은 있으나...들어가서 공동선을 위하여 협력하자는 생각으로 공의회에 들어간 것으로 압니다.
90년대 초반기까지 한 10여 년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공의회 역시 작은 교회들이 모여서 살림이 군색하였고...발전이 지지부진하였습니다. . 공의회도 예수교회가 좋다고 하여 예수교회공의회라고 이름을 지은 것인데... 안타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80년 10월에 이용도 목사 추모회에 이호빈 목사 참석 추모사를 하였습니다. 실로 오랫만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정선 목사가 강남사회복지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것도 공의회와 가깝게 된 분위기 조성을 한 것 같습니다.
교역자들 간에 오간 이야기나 공적 결정은 평신도인 나로서는 알 수 없고 그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새교회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 것이 아닌가 싶어요. 81년 6월 방배동 새예루살렘교회와 화곡동 예수교회가 새교회날 연합 예배 개최 [ 화곡동 예수교회에서. 정인보 목사 설교] 이것이 두 교회의 연합 행사로 마지막입니다.
8. 한국에서 새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교회는 정인보 목사 개척한 광주새교회입니다. 미국 새교회신학교에 유학하고 그 교단 목사로 안수받은 후 광주에서 개척하였습니다.
서울 이정선 목사는 예수교회에서 안수받은 목사입니다.. 두 분이 미국 유학을 함께 하였고...교회 이름과 그 체제와 역사는 다르지만.. 새교회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정선 목사는 미국 유학 후에 새교회적 색채가 더 짙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1967년에 새교회 한국연합회를 조직하고 한국 새교회신학원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연합회가 교단으로 정착되는 단계로 발전을 하지는 못했으나.. 1967년은 한국에 새교회라는 교회가 교단을 표방하였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70년대에 서울에 새교회를 개척하는 움직임이 있어서.. 염리동에서 모이다가 방배동으로 가서..그것이 새예루살렘 교회가 된 것입니다. (현재에도 있다고 들었으나 그 이상 알지 못함)
곽진평 목사가 1988년 강남대치동에 서울새교회를 개척하고 번역과 교지 발행을 하였습니다. 광주새교회는 현재는 빛고을새교회라고 합니다. 미국 제네럴 쳐치 새교회 총회 산하에 있는 한국새교회입니다. 한국 새교회신학원을 개설하여 2기 졸업자 배출 목사 안수를 받은 분들이 교회 개척 중입니다.
2010년 6월 22일 작성. 6월 30일 수정 보완 새교회 홈페이지에 한국 새교회 약사를 기록한 글을 보고 생각이 나서.. 2017.12.21 목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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