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믿음이 있습니까? / 2026년 6월 21일 주일 예배
본문 / 고린도전서 15:29-34
얼마 전에 한 영상에서 꿩알을 부화시키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한 유트버가 꿩알을 부화기에 넣고 부화하는 것을 찍은 기록인데 참 신기하고 신비롭습니다. 계란이 부화하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저녁으로 삶은 계란 두 개를 먹습니다. 노른자도 있고 흰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유정란이면 부화기에 넣고 21일이 지나면 그 계란 안에서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노른자와 흰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노른자에서 머리가 나오고 눈과 부리가 나오고 몸통이 나오고 날개가 나오고 다리가 나옵니다. 털 옷까지 입고 나옵니다. 몸 안에는 온갖 장기와 내장과 조직이 만들어지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지능을 갗춘 뇌가 형성이 됩니다. 그리고는 부리로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겁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는 일입니까?
삶아먹고 튀겨먹는 그 알에서 말입니다. 저는 너무 신기합니다. 너무 너무 신비롭습니다. 경의롭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아닙니까? 지금 생각해도 감탄이 됩니다. 와! 하는 탄성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신비를 통해 부활에 대한 흰트를 주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그 노른자와 흰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흐물흐물한 노른자에서 단단한 뼈와 살과 털을 입은 새가 나옵니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서 싹과 줄기가 나고 자라 30배 60배 100배가 되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곡식에서 곡식이 나오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알 안에 있는 노른자와 흰자에서 새가 나오는 것은 정말 신비할 따름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미 죽어서 그 영혼이 떠난 몸은 장사한 것이 아닙니까? 어떤 몸은 매장하고 어떤 몸은 화장합니다. 어떤 이는 장사할 몸을 찾지 못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 왔다간 인생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런데 그 사람의 무덤이 다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죽으면 자손들이 우리 몸도 장사하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누가 신경을 쓰겠습니까? 여러분은 조상의 묘를 몆 대까지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부활을 믿으십니까? 몸의 부활을 말입니다. 마음과 영으로 믿고 있습니까? 바울은 증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가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에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주님은 죽은 후에 영으로 나타나신 것이 아닙니다.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주님을 영으로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누가복음 24:39 말씀하시며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셨습니다.
제자들은 영의 세계를 알고 있었지만 죽어서 썩고 흙이 되어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육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믿지 못하였습니다.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생명의 부활은 죽었던 몸이 그대로 다시 살아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시는 사망과 고통과 슬픔과 눈물이 없는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늘의 속한 자의 형상으로 말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희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이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50-58.
바울은 15장 44절에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신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미처 알아 보지 못하였습니다. 3년 동안이나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였지만 신령한 몸으로 흙에 속한 자의 형상에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으로 부활하신 주님은 그 전에 입고 계셨던 육신의 몸과는 전혀 달랐던 겁니다.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으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는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흙에 속했던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신령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알 속에 있던 계란 노른자에서 전혀 다른 생물이 나오는 것을 보며 짐작하는 것입니다. 알이 그 노른자와 흰자가 부화하여 하늘을 나는 새가 된다는 그 지식이 없다면 누가 알을 깨고 새가 나오는 것을 짐직이나 하겠습니까?
믿음으로 되는 생명의 부활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 겁니다. 그런데 생명의 부활만 있습니까? 사망의 부활도 있습니다. 생명의 부활로 나아가지 못하는 자들은 사망의 부활로 나아가는데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갔고 지금고 그곳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른채 말입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즉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볼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요한계시록 20:11-15.
영국은 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인이 1%라고 합니다. 교회를 맡을 목사도 없습니다. 독일은 그 크고 오래된 교회를 유지할 교인들이 없어 많은 교회들이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미 한국교회에 드리운 현실이 아닙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도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아예 종교에 관심이 없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까? 부활의 믿음이 있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없는 교회와 성도들이 진짜 교회와 성도들일까요? 부활의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한 사람이 부화기에 넣은 알을 검사합니다. 빛을 비추어 봅니다. 알 안에서 부화가 진행되는 알은 즉 생명이 있는 알은 붉은 빛이 보입니다. 핏 줄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무정란이나 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생명이 없는 죽은 알은 붉은 핏 줄이 보이지 않습니다. 빛을 비추어 보면 압니다.
부활의 소망은 부활의 믿음으로 확인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복음과 진리의 빛으로 믿음과 생명의 핏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까? 부활의 소망은 천국의 소망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이 음란하고 패역한 세상에서 구원을 이루어가는 믿음으로 살게 합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 믿음은 무엇이겠습니까?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흘리신 그 보혈의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믿음입니다. 십자가의 피가, 그 보혈의 피가 마음과 영혼에서 흐르는 것입니다. 그 보혈의 피, 대속의 피가, 생명의 피가 믿음이 되어 삶으로, 몸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나옵니까? 날마다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을 따라가는 믿음으로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겁니다. 생명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좁은 길이라 하시고 길이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증언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바울은 부활의 소망 때문에 부활의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 부활의 믿음이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게 하는 믿음이 된 것입니다. 자신을 날마다 십자가에 부인하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못을 박는 자기 부인이 되었습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시험을 참고 인내하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고난을 견디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환난과 박해를 믿음으로 받은 것입니다.
육신대로 육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영으로 육의 행실을 죽이고 영을 위해 사는 믿음이 된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고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되게 한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우게 한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을 기뻐하게 한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받들게 한 것입니다.
오직 부활의 소망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참 소망이 강하고 담대한 십자가의 믿음으로 나온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 때문에 십자가의 믿음으로 사신 것은 주님도 마찬가입니다. 히브리서는 증언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히브리서가 증언하는 믿음의 선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며 심판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와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에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11:33-40.
부활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산 선진들의 그 삶이 그려지십니까? 그들의 십자가의 길과 삶이 말입니다. 적당한 믿음은 없습니다. 저는 이 죄악된 어둠의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고 흰 옷을 입고 피를 흘리며 주님을 따라가는 믿음의 선진들이 모습이 떠오릅니다. 부활의 승리와 영광을 바라보며 말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피 없이는 눈물 없이는 못 가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배 고파도 죽더라도 이 길만을 가야 한다고 한 것이 아닙니까? 왜 조롱과 멸시을 받으며 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왜 그 고통스러운 죽음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순교의 길을 갔을까요? 많은 목사와 성도들이 타협하며 하나님과 세상을 두 주인으로 적당히 함께 섬길 때 말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과 영으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십자가의 삶이 나오지 못합니다. 타협하며 적당히 믿고 맙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세상과 사람이 두렵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재물을 사랑합니다. 십자가를 외면합니다. 여전히 죽지 못하고 주인으로 살아 있는 육체의 정욕과 탐심으로 자신의 자아를 숭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두 주인으로 함께 섬기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넓은 길을 갑니다. 십자가가 없는 편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주님과 교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자아를 섬기는 자가 됩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척하지만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기에 부활의 소망을 이룰 수 없는 멸망의 길입니다. 그 길이 당장은 편합니다. 육신과 세상을 사랑하며 안일한 마음으로 가는 겁니다. 그 영혼이 잠을 자며 설마하며 가는 겁니다.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을 믿으며 가는 겁니다.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믿으며 가는 사망의 길입니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요?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유트브의 한 영상의 제목이 생각합니다. '오늘 죽으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여러분은 내가 가는 길을 돌아봅니까? 확인하고 있습니까? 내 삶이 말하는 대답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3:19-23.
부활의 소망이 부활의 믿음이 되게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과 재물의 유혹과 온갖 두려움과 걱정과 고난을 이기고 견뎌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육체로부터 나오는 정욕과 탐심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하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십자가의 믿음만이 부활의 소망을 심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못하는 겁니다. 오직 믿음만이 하는 겁니다. 마음과 영으로 진리를 깨닫고 부활을 소망하는 그 믿음만이 하는 겁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죽으면) 생명을 얻으리라! 부활의 믿음이 있는 자들은 그 믿음으로 인하여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가 되는 겁니다. 그것이 부활의 소망이며 믿음입니다. 부활을 소망하며 오직 믿음으로 살았던 선진들의 삶을 보십시오. 상상히 됩니까? 나는 부활의 소망 때문에 믿음으로 어떤 고난과 인내와 시험을 받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부끄럽기 짝이 없지 않습니까?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였지만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는 커녕 미리 고난을 피해가지 않습니까? 알아서 미리 타협해 버립니다. 미리 마귀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주님의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우라고 하였지만 누가 믿음과 말씀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으려고 합니까? 철저하게 십자가는 외면하는 시대입니다. 과연 십자가가 없는 부활이 가능하겠습니까? 울며 씨를 뿌리지 않고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 있을까요? 주님은 너희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하십니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요?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부활의 소망 때문에 더러는 울며 믿음의 씨를 뿌리고 있습니까? 알을 부화시키는 과정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도 거의 비슷해서 그런지 부화가 부활로 부화기가 부활기로 연상이 됩니다. 어미 새가 품어 주는 것을 부하기가 대신하는 것인데 알은 스스로 부화하지는 못합니다. 어미 새가 정해진 기간 동안 품어주어야 합니다.
성도의 부활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주님 안에서,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날개 아래로 새끼를 모음 같이 내가 내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입니다.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부활의 소망을 이루는 믿음입니다. 주님 안에 어떻게 거합니까? 내 죄를 대속해주신 그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며 주님의 뜻을 받들고 말씀에 순종할 때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그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 인하여 부활의 소망은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품 안에 있다고 고난과 시험이 없습니까? 알은 어미새가 품지 않으면 스스로 부화할 수 없지만 어미새가 품는다고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전적으로 새의 몫입니다. 어미새는 알의 그 껍질은 깨주지는 않습니다.
부화기에서 넣은 꿩알이 23일 지나자 알 안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부리로 알 껍질을 콕콕 깨는 소리입니다. 사람이 볼 때에 껍질을 깨는 그 수고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새는 죽을 힘을 다하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 쉽겠냐구요? 몇 번을 쪼아야 할까요? 알에 금이 살짝 가서 곧 나올 것 같았는데 날을 넘깁니다. 그런데 그 껍질을 사람이 벗겨주면 안 된답니다. 껍질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는 것은 오롯이 새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새끼에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감당하지 못할 고난을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사랑은, 소망은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이기는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의 그 은혜 안에 있는 부활의 소망과 사랑과 믿음이면 모든 것을 이기는 겁니다. 날마다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며 세상과 죄를 이기고 결국에는 사망을 깨고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고 신령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부활의 믿음으로 사십니까?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과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인생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육체로 있을 때 부활의 소망을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심어야 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으로 인하여 주님과 함께 영광스런 생명의 부활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부활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