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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의 길 / 고든 맥도날드

작성자세리|작성시간10.01.19|조회수151 목록 댓글 0

 


끈질긴 삶  


 

고든 맥도날드의 신간, [영적 성장의 길]

 

햄버거이든 책이든, 맥도날드라면


 


10여년 전 IVP의, 아니 기독교 전체에서 대표적인 저자들을 대라면 고든 맥도날드, 송인규, 존 스토트를 예로 드는 데 주저함이 없었을 것이다. 10~15년 전의 한국 기독청년들에게 이 인물들이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한 것이었다. 새내기 대학생들은 누구나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책을 추천받았고, [죄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한가] 소책자로 세미나를 가졌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읽으면서 그들의 지성을 길렀다. 세월은 흘러 새로운 저자들이 쏟아져나오는 지금 이 대표저자들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진 것이 사실이나 아직도 서가에서 이들의 이름이 찍힌 책들은 믿을만하다는 보증과 동일하게 통용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폭넓은 대중성을 가진 인물이 아마도 고든 맥도날드가 아닐까.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의 저서는 국내에 소개된 것만 해도 꽤 많다. 전세계적으로 1백만 부 이상 팔린 가장 대표적인 저서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Ordering your private world)]나 아내 게일과 공저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를 비롯해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 때], [베푸는 삶의 비밀] 등 다 한 번씩은 들어봤거나 책장을 펼쳐봤음직한 책들이다.


 


 


그렇게 90년대 한국의 기독교 서적 코너를 풍성하게 채워주었던 그의 책들이었건만, 개인적으로는 [내면세계의…]를 넘어서는 탁월함을 그 이후의 저서에서 느끼기는 좀 역부족이었다는 생각이다. 서구적인 배경에서 이끌어내는 일상적인 예들이 덜 와닿는 탓도 있지만, 그의 서술이 약간 길어서인 탓도 있다.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라]나 [영적인 열정을 회복하라],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 때] 등을 읽으면서 물론 얻은 것도 많지만, 주제를 좀 더 간결하게 다루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아마 30% 정도의 분량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이들도 필자같은 느낌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리스천 리더쉽으로서 고든의 명성은 맥도날드 햄버거처럼 여전히 드높지만, 서적 분야에서는 영향력이 좀 줄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두란노에서 펴낸 그의 신간 [영적 성장의 길(A resilient life, 2004)] 또한 그의 이런 패턴이 어김없이 배어있다는 데서는 맹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굳이 서평을 쓰고 싶다는 내적인 요청이 내 마음을 주장질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번 책은 그동안의 책과는 다른 미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아쉬움은 있지만 먼저, 한글 책 제목은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 [영적 성장의 길]이라는 제목은 여타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책이나 자기훈련에 대한 책과 같은 부류의 책으로 분류될 소지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원서 제목이자 본문 내용 중에 계속해서 반복되는 “끈질김(resilience)"이라는 주제를 이 제목이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책 표지 일러스트 또한 긴 장거리 경주에서의 ‘끈질김’을 표현한 것인데, 한글 제목 하에서는 본서가 전달하려는 본질이 희석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너무 서론이 길긴 했지만, 본문을 살펴보자.


 


 


본문의 전체를 관통하는 뼈대(framework)는 그가 스토니 브룩 고등학교 시절에 만났던 육상 코치 마빈 골드버그와의 이야기이다. 그를 처음 만나고, 육상부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지난한 훈련을 소화해내고, 여러 경기에 참여하면서 겪었던 고락의 시절들이 본문에 수시로 등장한다. 이는 저자에게 매우 의미 깊었던 경험이었기에 독자들에게 주제를 각인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잦은 회고로 인해 글의 호흡을 오히려 끊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육상경기 훈련에 대한 뒷이야기라면 영화나 스포츠뉴스에서 훨씬 흥미진진하게 다뤄주지 않는가?) 여전히 고든은 인생의 선배로서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 게다. 그래도 각 챕터는 그리 길지 않게 서술되어 있기에 읽어가기에 시원시원하고 적당하다.


 


 


책의 서두에서 고든은 자신 뿐만 아니라 일가친척들이 줄줄이 타고난 한 가지 유전성을 발견했다고 밝히고 있다. 고든은 ‘중도 포기 유전자(quitter gene)’라는 재치있는 표현을 쓴다. 고든은 고등학교에서 이 본능을 일찍이 감지한 마빈 코치의 경고에 의해 자신의 본능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리게 되고, 그 결과 끈덕진 근성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인생의 후반부에 승리한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런 끈덕진 근성을 길러 열매를 맺었다는 것이다. 이제 이 근성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가 책의 전반부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가 책의 중반부를 형성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저자들의 책들과 별반 큰 차이가 없다. 이 책의 미덕은 중반부 이후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 책의 저력, 후반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이 사실을 누구나 알면서도 유독 쉽사리 인정하기 힘든 경우가 있으니, 바로 리더가 죄를 범할 때이다. 명성이 자자하고 탁월한 리더일 때 그 실수는 더욱 치명적이고 후유증 또한 엄청나다. 더욱이 신앙인의 추락(墜落)이라면 배신감마저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필자 역시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 문제 앞에서 망연자실하기보다는, 우리 인간이란 정말로 취약한 존재이며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사실, 아주 작은 차이이다. 그러나 사소한 일련의 선택을 거쳐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서구교회에서 리더쉽의 범죄가 드러났을 때, 교회는 그에게 회개케 하고 수년동안을 근신하며 자정(自淨)하도록 한 뒤 적절한 시간에 사역을 재개하도록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든은 자신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다시 우리 앞에 서게 되었음을 이 책에서 처음으로 밝히고 있다. 유명한 저자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것, 그리고 회개의 지난한 터널을 통과해 다시 원래의 지점에 서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잘못을 시인하는 고든의 용기와 지혜로운 아내 게일,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던,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리라. 여태까지의 고든의 책에서 미처 볼 수 없었던 아픈 경험이 묻어있기에 그의 조언은 그저 매끄러운 경구(警句)로 흐르지 않고 간절하고도 또렷하게 독자의 마음문을 두드린다. 이것이 이 책의 후반부를 달라지게 한 첫 번째 요인이다.


 



 


고든 맥도날드 (Gordon MacDonald)


 


 


고든의 결론에 공감하다


 


 


총 5부로 나뉘어져 있는 책의 구성에서 4부까지 분주하게 조목조목 여러 주제들을 다루던 고든은 책의 말미인 5부에서 평소와는 다소 다른 결말부로 방향을 튼다. 아마 평소의 그였다면 4부까지의 내용 뒤에 깔끔한 에필로그가 뒤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그가 조언해주려는 마지막 내용은 마라톤의 막판 스퍼트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평생에 걸쳐 조언을 듣기보다 해주어야 하고, 여러 가지 일에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도록 독려하면서 평생을 살아온 고든. 그런 자신에게 결여된 것이 있었으며, 그것이 자신이 실족한 이유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로 ‘친밀한 소수의 공동체’ 라는 것이다. 이 결말부의 귀착점이 이 책의 후반부를 달라지게 만든 두번째 요인이다.


 


 


나는 고든이 이 부분에 있어서 겪은 어려움을 깊이 공감한다. 많은 사역을 감당하고 여러 사람들의 필요를 채움으로서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보람을 느끼는 이들은 - 필자도 고든도 - ‘뭉그적거리기’를 견디기 힘들어한다. 의미가 있는 만남과 진지한 모임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기에, 그냥 뭉개고 노는 데 의지적으로 시간을 내기가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오스왈드 챔버스의 표현처럼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은 적다.” 결국 하나님을 위한다며 오버하는 활동들이 우리를 옥죈다.


 


 


고든은 책에서 친밀한 소수에 대해 ‘고통과 실망을 주고받기를 두려워 않는, 내가 세상을 떠날 때 정말 가슴 깊이 슬퍼하면서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 로 정의하고 있다. 효율적인 시간활용을 누구보다도 강조하던 고든이 끈질긴 근성을 기르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소소한 재미가 넘치는 우정을 강조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더불어 함께하는 삶, 그리고 거기에 드는 시간과 재정은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고귀한 낭비’ 인 것이다.


 


 


[Dinner for 8]라는 요리책을 낸 지휘자 정명훈은 이렇게 말한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요리책을 낸 이유는 삶에 균형을 주는 여유 를 얘기하고 싶어서다. 지금껏 치열하게 경쟁하며 '발전'을 향해 치달아왔던 우리 삶은 사실상 요리같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작은 부분도 귀함을 알고 관심을 가져야 바르게 갈 수 있다. 테크닉을 익혔다고 연습을 게을리 한다면 결코 멋진 연주가 나올 수 없듯이 균형 없는 삶이 행복할 리 없기 때문이다.” 어느덧 50세를 넘긴 그의 음악이 해를 더해갈 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이유는 이런 데 있었나보다.


 



 


균형잡힌 삶에 대한 소망


 

책을 덮으면서 책의 내용이 어떠하냐, 책을 얼마나 잘 썼느냐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고든 맥도날드라는 사람 그 자체다. 아무리 탁월한 글이라도 인격이 수반된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감동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넘어졌으나 아주 엎드러지지 않고(시 37:24) 리더쉽의 권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한 그의 존재가 전하는 무언의 웅변은 이 한권의 책보다 우렁차지 아니한가.


 

필자 역시 어떤 면에서 고든과 비슷한 코드를 품고 있다. 그가 고백한 것과 유사한 문제점을 떠안고 있고, 붕괴될 수 있는 취약한 부분이 내재하고 있음도 자각한다.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를 흘려보내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나서는 갑자기 추락하는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고든이 이번에는 특별히 속으로 은근 골병들어 있는 필자같은 사람들을 위해 책을 써준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게 고마워서 오랜만에 이렇게 긴 서평을 쓰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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