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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천년주의

작성자동행| 작성시간11.01.26| 조회수2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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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동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3.08 무천년주의와 후천년주의는 결과적으로 문자적이고 가시적인 천년왕국을 부인하는 것이며, 교회와 유대인을 동류로 보기 때문에 결국 교회가 환난을 통과하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교회를 창세전에 이미 심중에 두시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또 그리스도와 공동상속자로 부르신 주님의 부르심과 이미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혀진 존재라는 에베소서 2장의 말씀에 불일치한 분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글 : 무명의 순례자>
  • 작성자 동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3.08 성경을 모든 사람이 읽고 분별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경륜에 대해서 성경적인 분별을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으며, 우리도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의 견해가 옳다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진리는 하나이라는 것입니다. 누구의 분별이 맞느냐 하는 부분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진리는 시대와 풍조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시대에 따라, 문화사조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 해석이 다르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오류가 적은 성경분별은 문자적인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도 완전하지 않습니다<무명의순례자>
  • 작성자 동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3.08 다만, 하나님께서 성경이라는 문자에 자신의 뜻을 한정하시고 말씀을 주신 것이 그분의 뜻을 어렵게 하여,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도 없고 읽는 사람마다 그 뜻을 다르게 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라는 것과 모순된다는 것입니다. <글 : 무명의 순례자>
  • 작성자 동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3.08 같은 본문을 읽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일한 결론에 이르는 일관된 해석이 문자적 해석이라는 것입니다.물론 성경말씀이 어려운 부분이 있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주님께 지혜를 구하고 엎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성경을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은 우리는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개인의 삶에서 적용은 다르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해석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해석과 적용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글 : 무명의순례자>
  • 작성자 동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3.08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고 그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를 바르게 나누어 보면, 우리는 주님의 신부인 교회가 환란을 유대인과 동일하게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알게 되며, 믿는 이는 결코 정죄함이 없으며 심판에 이르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하신 주님께서, 또한 신실하기에 빌라델피아 성도에 말씀한 시험의 때(기간. 환란기)를 면제해주시겠다는 약속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한 약속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무명의순례자>
  • 작성자 동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3.08 여기서 그리스도인이라 할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분은 성령의 능력으로 죽은 자가운데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바로 하나님이심을 믿는 성도를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환란을 통과하면서, 성도가 정결해진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성도가 거룩한 것은 주님께서 그를 위해서 피흘리시고 그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케 해주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열심히 해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거룩해질 수 없다는 것이 복음이 말씀하고 있는 바임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데서 나온 생각이라고 봅니다. <글 : 무명의순례자>
  • 작성자 동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3.08 물론 성도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신 아버지의 뜻을 저버려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더하기 위해 죄에 거할 수 없는 것처럼 마땅히 성도는 선한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되기 위해서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성도이기 때문에 열심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순서를 거꾸로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모든 종교가 저지르기 쉬운 오류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글 : 무명의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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