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료는 http://cafe.naver.com/anyquestion.cafe?iframe_url=/ArticleRead.nhn?articleid=4878 에 근거한 것입니다>
감리교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옮겨온 글입니다....
이글을 통하여 서로 비난하는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정야베스
일단 저는 웨슬레안입니다. 그러나 캘비니즘을 잘못된 신학이라고 보지 않으며, 정통신학적인 범주 안에 포함시킵니다. 그러나 오직 캘비니즘만이 옳다고 하는 사람은 비판합니다. 우선 제 입장을 밝히고 설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로 상반된 두 종류의 신학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문헌과 자료를 보면 안된다고 생각됩니다.
♣ 알미니안과 캘비니즘의 다섯강령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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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미니우스 |
캘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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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자연적 무능력(Natural Inability) |
전적타락(Total Deprav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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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조건적 선택(Conditional Election) |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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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만인 구속(Universal Atonement) |
제한적 구속(Limited Atone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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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 |
불가항력적 은총(Irresistible Gr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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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조건적 견인(Conditional Persererance) |
무조건적 견인(Final Perseverance) |
예정론(豫定): 헬라어 “프리오리조”이며 영어로는 Predestination입니다. 한 마디로 예정론이란 미리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활을 강조하는 신학적인 한 분류를 말하는데, 장로교회의 대표적인 교리와 신학입니다.
♣ 도르트공의회
1618년 11월13일부터 1619년 5월9일에 끝난 도르트공의회에서, 102명의 네델란드 캘빈주의자와 28명의 외국 캘빈주의자, 그리고 13명의 알미니안주의자가 참석하였습니다. 그 회의에서 알미니안이 이단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내막을 보면, 그들 13명의 알미니안 대표자들은 이미 국가반역죄가 주어졌으므로 발언권과 선거권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도르트공의회에서 알미니안들은 만장일치로 이단으로 정죄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항의자(Remonstrations)로 불려졌습니다.
그 회의로부터 예정론을 비판하는 자는 하나님을 비판하는 비기독교인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도르트 공의회는 발언권과 선거권이 전혀 없는 13명의 알미니안 대표들을 앉혀놓고, 캘빈의 5대강령을 재확인하며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캘빈주의에서도 이 공의회 이전의 타락전선택설(Hyper Calvinism, 초캘빈주의)은 타락후선택설(Hi Calvinism, 극단적캘빈주의)로 수정이 되어지며, 그 후 캘비니즘은 구원과 멸망의 대칭적인 이중적예정론이 구원과 유기의 비대칭적인 예정론으로 완화되어집니다.
♣ 알미니우스의 근본적 원리
사람들은 알미니우스는 펠라기우스와 동일시하지만, 알미니우스는 예정론자였습니다.
제임스알미니우스는 1560년 네델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 홀로인 어머니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그는 개종한 카톨릭 신부의 양자가 되었고 그 신부가 죽은 후에는, 개혁교회 목사인 피터 베르티우스의 집에 머물며 라이덴 대학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알미니우스는 목회훈련을 위하여 제네바대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베쟈와 다른 스승들에게 신학을 배웠습니다.
교육을 마친후 그는 암스테르담 교회의 목사가 되었고 그의 강해설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전해집니다. 1589년 “코른헤르트라”는 평신도가 베쟈(캘빈의 후계자)의 이중예정론에 대해서 비판하는 강연과 책의 저술을 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비판이 신학계에 돌풍을 일으켰는데, 코른헤르트가 매우 뛰어난 지식으로 예정론을 비판하는 논리를 주장하자, 어느 목사도 그것을 대항할 수가 없었으므로 이것을 위하여 알미니우스에게 그를 비판하라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알미니우스는 예정론을 비판하는 코른헤르트라는 평신도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하여 그의 주장을 검토하면서 로마서를 연구하게 되었는데, 로마서를 연구하면 할수록 의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께 범죄하고 타락한 유대인들은 멸망당하도록 예정되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유대인들을 선민으로 예정하시고 부르셨는가? 그렇다면 타락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구원받을 수 없도록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고, 그렇다면 그 어떤 것도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 사실을 바꿀 수가 없었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회개하도록 참고 인내하시지 않았던가? 왜 수없이 많은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냈단 말인가? -
알미니우스는 교회사적인 연구를 하였고, 놀랍게도 인간의 의지를 강조한 펠라기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한 어거스틴마저 도덕적 책임성(Full Moral responsibility)을 가르쳤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알미니우스의 양심은 결코 코른헤르트를 이단으로 만드는 것을 실현하지 못하였습니다.
후에 제임스 알미니우스(1560)는 라이덴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으며, 그는 예정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캘빈과 베쟈(캘빈의 후계자)의 이중예정론을 전적으로 반박하므로 주목을 끌게 됩니다.
그가 예정론을 거부한 것은 비성경적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알미니우스는 예정론 자체를 반대하며 부정한 것이 아니라, 도덕무용론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만일 모든 인간의 구원이 이미 창세 전부터 이미 운명되어진 대로 흘러간다면, 성결에 의한 윤리적 요구가 전혀 필요없게 될 것이라는 때문입니다.
알미니우스가 성숙하여지고 라이덴대학의 교수가 되었을 때에 그는 신앙신조에 서약하는 것을 거부하였고, 예정론자이며 신약교수였던 고마루스와 정면으로 부딪히게 됩니다.
고마루스는 “신성한 성경은 고백서와 교리문답서에 의하여 해석되어져야만 한다”고 선언을 하였고, 알미니우스는 자신의 성경적 해석을 신조들에 종속시키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 누구도 알미니우스와의 논박에서 예정론을 옹호하는데에 있어 성경을 최종적인 권위로 사용하는 데에 실패하였으며, 항상 성경적인 토론에서 그는 승리하였습니다. 그가 주장한 예정론 비판의 근본적인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정교리는 일차적으로 철학적이 아니라 성경적이어야 한다.
2. 예정은 반드시 기독론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신적작정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구원의 근원이며 원인이다. 인간은 강요받은 선택에는 책임이 없다.
3. 구원은 복음적이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개인적 믿음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
4.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드는 어떠한 이론도 비성경적이며, 한편으로 인간을 스스로 구원의 창시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만일 예정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원인이 된다면 하나님은 곧 죄의 원인제공자, 즉 죄의 창시자가 됩니다.
왜냐하면 멸망받기로 미리 예정된 인간들이 있다고 할때에, 그들은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되며, 그러므로 그 멸망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멸망받기로 예정되어 있으므로 인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의 책임이 됩니다.
더군다나 이미 예정되어졌고 이미 운명지워진 “멸망받을 사람”을 다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죄를 짓게끔 예정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하시는”(롬5;20)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알미니우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신학적 해결을 보지 못한 채, 160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가 살아 생전에 알미니우스의 성경해석에 대해 틀렸다고 반박을 하지는 못하였을 만큼, 그는 성경을 최종권위로 내세웠고, 그것이 예정론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의 불만을 가지게 하는 요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후에 그가 죽자, 그의 추종자들이 예정론자들과 그 논쟁을 계속했고, 그들 중 일부는 복음적 정신에 충실하였으나, 또 다른 부류의 몇몇 사람들은 자유주의적 신학노선을 걷게 됨으로 알미니안주의는 두 계열로 분류되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혹간 사람들은 알미니안주의를 자유주의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으며, 알미니안주의를 인간의 의지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던 펠라기우스의 후예로 착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또 일부 장로교의 목회자들마저 “감리교회가 인간의 의지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더라”는 견해를 갖고 있을 정도의 잘못된 오해를 갖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알미니우스는 예정론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장로교 목회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알미니우스는 결코 예정론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다만 조건부적인 예정론을 수용하였을 뿐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웨슬레안(알미니안)과 캘비니즘의 다섯강령의 차이점”을 잘 읽어보게 되면, 알미니우스는 예정론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조건부적인 예정론을 수용하였던 것이며, 그 이유는 성경적인 근거를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 요한 웨슬레
오늘날 감리교의 대표적인 창시자로 불리우는 웨슬레목사는 알미니우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또한 어거스틴의 은총론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무엇보다도 캘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웨슬레 역시 예정론 자체를 반대한 것도 아니요, 인간의 책임한계를 예정론에서 끄집어 낸 것뿐입니다.
즉 알미니우스는 믿음을 신적예정이라는 감옥에서 해방시켰으며, 웨슬레는 그 믿음을 새로운 주인(Master)을 모셔오는 삶의 새로운 길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즉 “믿음”은 예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책임한계의 측면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멸망당하는 사람은 그가 멸망당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웨슬레목사는 인간의 책임적 측면을 “오직 믿음”으로 주장하였습니다.
즉 성화가 믿음으로 이루어지고 성령의 사역에 의해 수행된다고 웨슬레는 주장하였습니다. 웨슬레와 알미니우스가 다른 점은, 웨슬레가 특히 성령의 능력과 사역을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성령께 굴복하면(Surrender) 그는 성령에 사로 잡힌다(possessed by) 성령은 인간본성의 돌출을 압박하고 억제하며 조절한다. 성령이 우리를 사로 잡으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성을 억누르고 지배하게 된다.“
믿음이란 한번의 행위가 아니라, 전인생을 하나님에 대한 계속적인 신뢰와 그리스도께 복종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헬라어에서 “믿는다”는 것은 항상 현재진행적 시제를 갖으며, 그것은 지속적인 책임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인간 스스로의 의지가 있으며, 그러므로써 인간 스스로에게 책임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믿으면 그 믿음으로 인하여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며, 예수를 믿지 않으면 그 자신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할지라도, 미리 구원받지 못하기로 예정된 자는 어쩔수 없이 지옥에 떨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받게 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과연 성경에는 인간의 조건과 책임이 언급되어있지 않는가? 성경은 분명하게 인간의 조건과 책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조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나님의 약속---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인간의 조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의 약속--- 구원을 얻으리니....(롬10:9)
인간의 조건----- 저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약속---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3:16)
인간의 조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하나님의 약속--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10:32)
인간의 조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행2:21)
인간의 조건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인간의 조건 ---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하나님의 약속--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이러한 성경적인 예는 그야말로 얼마든지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인간의 조건과 책임을 언급하고 있으며 믿음에 대한 중요성을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 인간의 조건과 책임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인가? 그렇다면 인간의 의지가 필요없는가?
우리는 다음 두가지 사실에서 한가지라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딜레마입니다.
(1) 구원은 오직 하나님만의 주권적인 사역이며, 또한 절대적이다.
(2)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으며, 그가 선택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분명히 구원은 하나님만의 주권적인 사역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책임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으며,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두가지의 주장을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의지라는 문제 앞에 섰을 때 싸울 것인가 도망할 것인가 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주권이 참으로 상호모순이라면 우리는 둘 중에 하나는 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주권자가 아니라는 것도 안되지만 인간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여도 모순이다. 다행히 하나의 대안이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상호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 모두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가족을 통해서 유추할 때 나에게도 자유로운 의지가 있고 자녀에게도 자유로운 의지가 있다. 이 의지가 충돌할 때, 자녀의 의지를 나는 통제하는 권위가 있다.(스프롤)
“세계 안에는 자연세력이나 인간의지와 같은 원인들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고무하시며 매순간마다 동행하시며 또한 이 행동을 효과있게 하신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이 한부분을, 인간이 다른 한 부분을 분담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며 하나님은 그의 모든 창조물과 합력하시며 그들의 일을 정확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선을 위하여 악을 제압하시는 것이다.(루이스 벌콥)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는 우물 속에 있는 밧줄과 같다. 표면에서는 그것들이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우물 바닥의 어둠 속에서는 함께 올라온다.”(롤레이드)
우리는 다음 두가지에 대해서도 인정을 하여야만 하는데, 다음 두가지를 반대하는 주장은 비성경적인 주장이며 명백한 오류이기 때문입니다.
(1) 인간의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피구원자이다.
(2) 하나님을 불의를 조장하시거나 악의 창시자가 될 수 없다.
저는 하나님의 측면에서는 모든 것이 예정된 것이 옳으며,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여 믿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는 없는 것에 우리는 동의하여야 하며, 그러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라는 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인간의 믿음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함께 연결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별히 웨슬리는 그의 말년에 이르러 칼빈주의에 대한 지나친 비난은 온당치 않다는 태도의 변화를 보이고 자기의 주장과 칼빈주의는 머리털 하나의 차이밖에 안되며 견해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이것을 멀리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술회하였습니다.
저 역시 성경과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던 처음에는 캘빈주의를 비판하였지만, 결국 캘빈주의는 하나님의 통치적인 주권을 강조하는 성경적인 신학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웨슬리가 인간의 책임과 결단을 촉구하는 것은 18세기 영국의 부흥운동을 주도하면서 도덕폐기론자(또는 반율법주의자, Antinomianist)의 사상으로부터 기독교의 윤리적 책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경험적으로 볼 때도 인간의 구원이 절대적으로 수동적이라는 주장을 비판한 것이었습니다.
즉 도덕무용론자와 율법폐기론자들은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니 선을 행한다든가 법을 지키는 일이 무의미하며 이것은 구원을 얻기 전이나 얻은 후에 똑같이 해당된다고 하는데, 이에 반대하여 기독교와 윤리를 분리시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웨슬리의 입장입니다.
인간의 전적타락을 말하는 죄론(罪論)이나, 하나님의 주도적 역사로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구원론에 있어서 웨슬리의 입장은 칼빈과 일치합니다.
다만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예정론을 주장하는 이중칼빈주의에 반대하며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결단과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웨슬리의 주장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오직 믿음(sola fideism)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구원을 적용하는 일에도 하나님께서 선행은총을 통해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유의지를 부여하시므로 역시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사는 주도적이라는 점에서 개혁자들의 신앙과 일치합니다.
[출처] 감리교 신학에 대한 궁금함이 있어서요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작성자 dsmed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