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교회와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우리 죄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께서
속죄하신 구원의 사건이라고 이야기해왔습니다.
근대에 들어서 소위 자유주의 신학 및
기타 여러 진보신학에서는
역사비평적 연구를 통해
예수 십자가 사건의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은 유대종교와
로마정치의 결탁에 의한 사건이었고
예수는 정치범으로써 처형된 것이라고 주장했죠.
그런데 전자와 후자의 주장 모두
틀리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성경을 보면 전자의 주장에 대한 근거도 나오고
또 특히 4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과 유대종교지도자들과의
끊임 없는 갈등의 상황도 사건적으로 계속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죄인을 구원하는 방법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로마의 식민지 하에 있던
유대 땅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갈등하고
결국 로마인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사형이 결정되고 십자가 형벌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세팅하셨을까요?
속죄의 의미와 십자가 사건의 정치,사회,역사적 의미와의
상관성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 우리가 신학적으로 분명히 대답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기독교 복음과 신앙은 이 땅에 제대로 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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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신재연 작성시간 10.02.27 예수님이 법정에서 죄가 있다고 판결받고 죽으신 이유는 그가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인류를 위해 죽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곧 그가 억울하게 죄가 없는데 돌아가셨다거나 아니면 아무런 이유없이 십자가에서 억울하게 죽으셨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신 분이 아니라 죄가 없음에도 억울하게 죽은것이되어버립니다. 예수님은 법정판결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도 죄인으로서 외면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시기 때문에 부활하여 자기의 의를 증거했습니다. 곧 의로운 자들을 위해서 부활하신것이고 부활하실수 밖에 없으셨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 신앙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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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룰룰랄랄라 작성시간 10.02.28 (신재연님의 댓글 의견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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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iDeaRush 작성시간 10.02.28 십자가의 죽음을 표면적 이유와 내면적 이유에서 잘 말씀하고 계시는군요. 이 두가지 견해는 동시에 존중되어야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진영에서 크게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구원교리에 지나친 의미를 두 다보니 사회적 죄성에 대해서 대하여
간과하는 부분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죄성은 사실 개인의 죄성의 총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에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하는 유대교와 이스라엘을 구체적으로 (역사적으로)심판지은 것이라고 보며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 나라 백성이며 제사장 역할을 부인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
답댓글 작성자iDeaRush 작성시간 10.02.28 님께서 지적하신
개인적인 부분에서의 속죄의 의미와 십자가사건
사회적 부분의 정치, 역사적 의미와의 상관성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결코 용서되지 못할 부분이 있음을 환기시킵니다.
실제로 양심적인 신학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범주에서 신학을 사회 구조적 악을 해결하는 부분에 대하여 통찰하려는
측면을 강하게 드러내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값싼 은총]을 설파한 본회퍼식 주장은 정말로 온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는 묘하게도 양태적으로는 기독교근본주의 노선과 보수신학을 표방하는 것 처럼 보이면서도
극도로 이기적인 개인구원을 강조하는 측면이 강하며 정서적으로는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고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iDeaRush 작성시간 10.02.28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안에서 역으로 풀이해 간다면
예수님께서 가장 강하게 대립했던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을 지적하신 것들은 [개인의 죄성]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돈독한 율법 수호 정신은 살짝 칭찬하였지만 율법의 한계인 [대략 베풀고 도덕적이면]그만이라는
스스로 부요한자들의 내면을 근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바리새적 종교관을 근엄하게 꾸짖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25장 후반에 있는 [주여 주여] 부르짖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쫒고 병도 치료하는
사람들에 해당하는 경고와 똑같습니다. 신자의 본분은 바로 그 뒤의 구절에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