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의 Dung Gate (똥문)
고도 예루살렘 관광에서 카나다 토론토에서 오신 남형제님께서 불쑥 던진 질문이다. "왜 좋은 이름들도 많을텐데 하필이면 '똥문'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예루살렘 지도를 펴들고 "DUNG GATE"라고 적힌 문 곁에서였다. 저는 그분의 질문을 받고 바로 대답하지 않고 사연이 간단하지가 않으니 숙소로 돌아간 후에 대답하기로 약속하고 계속 "통곡의 벽"을거쳐 "오마르 사원"등 중요 성서유적지들을 돌아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실은 하루 종일 관광을 다니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똥문'(한글판 개역성경에는 '분문'이라고 번역됨)이라는 단어를 되새김질하면서 그 뜻을 깊이 곱십으면서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숙소에 돌아오자 마자 구약성경 느헤미야 3장을 펼쳤다. 느헤미야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생활 칠 십년을 끝내고 고국에 돌아와서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과 성벽을 복구하는 과정을 그려놓은 말씀이다.
저는 말씀을 상고하다가 깜짝 놀랐다. 느헤미야 3장 서두에서 '양문'이 나오고 그 뒤에 '어문'과 '옛문'이 나왔다. 그리고 13절에 가서는 '골짜기문'이 나오고 그 옆에 '분문 곧 똥문"이 나왔다. 여기서 문이름 속에 담긴 뜻에 마음이 집중되면서 깊은 심연으로 끌려가는 자신을 느꼈다.
첫 번째 문인 '양문'에 마음의 눈이 열렸다. "나는 양의 문이라."(요10;7) 고 말씀하신 우리 주님께서 "내가 곧 문이니 누구든지 나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 들어가고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10;9 참조) 그렇구나! 첫 번째 문은 '구원의 문'이구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안으로 들어 가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는 놀라운 축복이 열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문으로 접근했을 때 그 문은 '어문 곧 물고기문'이었다. 물고기란 고대 헬라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말의 이니셜만 뽑아 놓은 단어가 바로 "물고기"라는 뜻이다. 그러기에 초대교회 로마황제의 핍박의 시대에는 자기신분을 드러내기 어려운 때에 서로가 그리스도인임을 알리고자 할 때는 물고기 그림을 그려서 자기 신분을 은밀히 소개하곤 하였다.
'물고기'는 구원받은 성도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상징한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마 하신 주님께서 단순히 물에서 사는 물고기가 아닌 복음의 그물이나 전도의 낚시에 걸려든 '물고기'를 가리킨다.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문"을 지나 "옛문"에 눈이 쏠렸다. 우리가 물고기 운명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받으심직하게 요리되는 과정이 있어야 함을 "옛문"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 하신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타고난 기질과 고집과 관념이 처리되지 않으면 주님께서 우리를 받아 잡수실 수가 없다. 마치 물고기가 잡힌 후 배따고, 비늘 벗기고, 꼬리가 잘린 후에 부드러운 부분들로 요리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제 그 다음은 "골짜기 문"이다. 성경에는 "골짜기"가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고 절망과 눈물을 상징하기도 한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죄에서 해방되었고, 율법에서도 해방되었다고 하면서 언제 골짜기의 경험을 하게 될른지는 체험하는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코스이다. 사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 골짜기를 통과하였다.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이 골짜기를 통과한 흔적이 성경에 보인다. 다윗은 이곳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이 골짜기 앞에서 '무력한 자아'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때 그 입에서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하는 사도 바울의 절규의 고백같은 고백이 흘러나오게 된다. 이 순간 그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을 의지하고 믿었던 모든 것을 철저하게 포기하는 자리로 들어가게 된다. 이와같이 스스로 자기를 부인하고 버리는 자리가 사도 바울이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 그 자리이다.
그 자리가 지금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똥문" 자리이다. 이 "똥문"이 단순히 배설물을 버리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배설할 때 아끼는 마음이 없이 시원하게 배설하듯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버리되, 배설물을 버리듯 시원하고 통쾌하게 버리게 되는 자리가 바로 "똥문" 자리이다.
그 다음 샘 솟듯한 성령님의 역사를 상징하는 "샘문"과 하나님의 평강이 강같이 흐르는 "수문"의 축복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는 모두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문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지순례 일행들은 밤이 늦도록 이 말씀을 상고하면서 벅찬 기쁨과 감격 속에서 서로를 향하여 "똥문"은 더러운 이름이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이 체험해야 할 믿음의 여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인생의 모든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등을 배설물로 여기는 결단에 대하여 자정이 넘도록 피곤한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 갈보리 침례교회 게시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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