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문학적, 철학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의 글은 루터의 성서번역, 괴테의 서정시와 함께 독일문학의 최고봉이다.
특히 [선악의 피안, 1886]은 독일어로 이룩한 최고 경지라 한다(물론 원어로 읽을때 그러할 것이다).
그의 책들은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돼 있으며 따라서 접하기 쉽다.
그런데 막상 접하면 비유와 상징으로 기득차 있는데 특히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그렇다.
그리고 지나친 기독교 비판과 독설 때문에 더 이상 읽기가 곤란해진다.
사실 그의 철학은 기독교와 거기서 파생된 가치체계를 파괴하는데 목적이 있다.
니체는 역사상 가장 맹렬하게 기독교를 비판한 철학자이다.
그가 보기에 기독교란 플라톤 형이상학에 기반한 종교일 뿐이다.
플라톤 형이상학이란 세계를 이편과 저편으로 나누는데 이편 즉 현실세계는 저편에서 유래한 아류에 불과한 것이며 덧없는 것이다. 저편의 세계는 영원하고 유한한 이 세상의 삶은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된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 세상이 무가치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이세상은 이데아의 세계와 최대한 비슷하게 꾸며질 필요가 있다고 믿었으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판에 뛰어들기도 했다.
플라톤은 국가의 이데아와 가장 흡사한 지상의 국가를 상상하면서 책을 썻는데 그가 지상적 삶에 무관심했었다면 그런 국가철학을 발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가 상상한 국가는 계층이 정해져 있으며 계층간 이동도 없는 무섭고 암울한 유토피아이다.
플라톤 형이상학은 칸트의 체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칸트는 삶을 또는 세계를, 현상계와 본질계로 나누는데 이성에 기반한 현상계는 영원하지 않고 도덕적 원리가 지배하는 본질계는 영원하다. 도덕적 원리는 현상계와 본질계를 이어주는 밧줄과 같은 것이다.
칸트가 이해한 도덕종교는 커다란 틀에서 플라톤과 맥을 같이하며 더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니체는 플라톤과 칸트를 비웃는다.
오로지 현실세계 즉 현상계가 가치있고 형이상학은 무가치하다.
그런데 정녕 그러할까?
삶이 단 한번으로 끝난다면 그리고 상벌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누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할 것인가?
니체는 이점에 대해서 나름대로 숙고했던것 같다.
그는 형이상학을 파괴하겠다고 자처하면서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동일한 것의 영겁회귀, 힘에의 의지, 초인 등등이다.
니체는 자신이 경원시했던 저편의 세계 즉 본질계 냄새가 나는 용어를 기피했던 것같다.
그냥 "영혼의 윤회환생"이라고 하면 본질계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기에 "동일한 것의 영겁회귀"라는 기상천외한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동일한 것의 영겁회귀는 플라톤의 윤회환생에 비견되는 개념인데 아마도 플라톤을 염두해 두고 만든 용어라고 보여진다. 동일한 것의 영겁회귀는 상당히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니체 이전에 이렇게 말한 사람이 없었다고 본다면 그는 상당히 독창적인 철학자 집단에 넣어도 좋을 것이다.
영겁회귀론에 영감을 준 사상은 다윈의 자기보존원리, 에너지 보존법칙과 스피노자의 이론 등이다.
가장 확실한 것은 1824년 카르노가 발표한 에너지 보존법칙일 것이다.
매우 문학적으로 글을 쓰는 니체이지만 세상과 유리될 수 없었고 오히려 과학적 성과와 그의 철학이 조화되기를 바랐다.
만약 그의 철학이 과학적 성과와 무관하거나 세상과 유리된 것이라면 그도 역시 플라톤적 기독교에 속한 사람에 불과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