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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知性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작성자천향|작성시간26.06.20|조회수6 목록 댓글 0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마1:25-27)

 

모세 언약은 옛 언약 갱신의 열매이다.

아담 언약과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이 갱신된 결과물이다.

그것은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을 통한 여호와의 옛 경륜이

모세가 나라를 설립함에서 종착점에 이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선지자나 제사장, 왕들은 모세의 권위 아래에서 사역한 사역자들이다.

모세의 말이 시행되는 율법의 나라 곧 다윗왕국의 사역자들이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613개 모세율법에 부착하여 직무를 감당해야 하였다.

이러한 모세 언약은 예수께서 맺은 새 언약을 통해서 완성된다.

따라서 새 언약은 더 이상의 갱신이 없는 마지막 언약이다.

그것은 옛 언약 내용인 모세율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종결되고 하늘의 질서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613개 율법에 부착하여 성전에 계신 여호와를 섬겼던 종(머슴)의 삶은 종결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아들(자녀)의 삶이 시작된다.

이러한 구원을 받은 대표 주자들이 제자들과 바울이다.

이것이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신 목적이다(갈4:4).

이것이 종말에 모세율법에 매인 종(머슴) 된 백성들을 하나님 아들(자녀)로 속량하신 목적이다(갈4:5).

 

그러므로 종말에는 613개 율법이 주지 못하던 구원과 생명이 주어진다.

종말에는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는 영생이 주어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나 율법과 상관이 없는 하나님 아들(자녀)로 세워진다.

하나님 아들(자녀)로 세워짐은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시킴으로 이룬다.

그러므로 제자들과 우리는 613개 모세율법 아래에 세워진 종(머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된 하나님 아들(자녀)이다. 그

래서 우리는 영광의 보좌에 좌정하신 그리스도의 통치와 권세, 영광에 참여한다.

이처럼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 아래의 종(머슴) 된 백성들을 하나님 안에 거하는 아들(자녀)로 구원하신다(갈4:4-5).

따라서 종말에는 모세율법과 그리스도 복음의 불연속이 주어진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옛 언약을 따라 시행되었던 땅의 일들이 하늘의 일로 완성된다.

그래서 마태는 율법 아래에 있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613개 모세율법을 따라 살던 종(머슴)으로 행하던 삶을 버리고,

제자들처럼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가르침을 따라 모세율법을 따라 살던 삶을 버리고,

예수에게 나아와서 그를 믿고 따르라고 말한다.

옛적에는 모세의 말을 따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겼으나

이제는 예수의 말을 따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라고 말한다.

이처럼 종말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데도

여전히 모세율법을 따르라고 주장하고 가르치는 자는 거짓 선지자이다(마7:15-23).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본문은 누가복음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언급한다(눅10: 21-24).

그런데 누가복음에서의 위치는 예수께서 70인 제자들의 선교 보고를 받으신 직후이다.

그래서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로 시작하며(눅10:21),

마지막 말은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 보는 것을 보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했으되 보지 못했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했으되 듣지 못했느니라’이다(눅10:23-24).

이처럼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믿음을 기뻐하심을 강조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갈릴리 마을들에 대한 심판 선고 후에(마11:20-24),

시작하는 말인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로 시작한다(마11:25).

이후의 말씀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이다(마11:28-30).

이처럼 마태복음은 하나님 아들의 심판과 구원의 권세를 강조한다.

 

마태복음 11장은 한 단위이며, 대칭되고 병행하는 일곱 개의 작은 단락으로 구분된다.

이에 대한 구분은 다음과 같다.

      A.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1-6)

      B. 광야의 선지자 세례 요한(7-10)

      C. 세례 요한 때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함(11-15)

      D.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옳다 함을 얻음(16-19)

      C’ 회개하지 않은 마을들에 대한 심판(20-24)

      B’ 내 아버지께서 내게 모든 것을 주셨음(25-27)

      A’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28-30)

홀수 대칭 구조에서 강조점은 대부분 가운데 있다.

대칭점을 중심으로 세례 요한과 아들의 증거가 병행한다.

중심내용은 ‘하나님의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옳다 함을 얻는다’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경영하시는 지혜가 마지막 시대에 세례 요한을 엘리야로 보내시고,

아들을 보내셔서 천국을 전파하게 하심으로 의로움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함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충실함이 드러났다는 말이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의는 언약에 신실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함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역할을 신실하게 행하심이 아들을 보내심으로 나타났다는 말이다.

 

세례 요한은 나아온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어서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예수께서는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들판의 양식을 제자들에게 주셨으며,

율법과 다른 참되고 온전한 아버지의 뜻이 시행되는 천국을 소개하셨다.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 예수께서 행하신 권능을 보고도 영접하지 않는 자에게 가장 큰 심판을 선고하신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전권을 주신 아들이시며

종말에서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나타내신 계시자이시다.

따라서 아들의 심판은 아버지의 심판이며,

아들은 아버지께서 주셔서 순종하는 자들에게 천국을 선물하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신다.

따라서 본문은 아버지의 계시자이신 아들의 심판과 구원이 아버지의 의로운 뜻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본문 내용을 요약한 내용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친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이다(마11:11-13).

이를 보충하여 설명하는 내용이 히브리서를 시작하는 말인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다(히1:1-2)

 

천국 왕 예수의 기도

 

예수께서는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께 감사 기도한다.

예수께서 기도한 이유는 아버지께서 자신을 통해서 종말의 구원과 심판을 집행하시기 때문이다.

종말에서의 하나님 심판과 구원은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신 일이다.

여기에서 지혜롭고 슬기가 있는 자들은 당시에 율법을 맡은 관료들이다.

당시의 제사장과 장로들, 율법 선생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다.

반면에 어린아이들은 율법 아래에서 작고 나중 된 이방의 갈릴리 출신 사람들이나,

당시 죄인의 표상인 세리와 창기와 같은 자들이다.

이처럼 사도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개념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규정한 모세 언어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종말의 심판과 구원을 시행하시는 아버지께 감사기도를 하신다.

이러한 아버지의 뜻과 경륜을 계시하는 아들은 종말의 심판과 구원을 완성하는 대행자이시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아버지의 모든 뜻을 알리는 예수의 선지 사역을 강조한다.

그래서 제자들의 선교 보고를 들으신 후 예수께서는 ‘이때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기도하셨다’고 기록한다(눅10:21).

 

그러나 마태복음은 ‘그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로 시작한다(11:25).

이는 마태복음이 아버지 뜻을 대행하는 아들의 권세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마을들에 대한 심판 선고와(11:20-24),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천국의 안식을 주시는 권세가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씀하신다(11:28-30).

이처럼 마태는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대행자임을 강조한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모세율법이 아니라

예수의 말을 따르도록 권고하기 위함이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는 창조주 여호와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죄 아래에 있는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으며,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시고 613개 항목의 율법을 주셨다.

이는 종말에 아들을 보내실 때까지 이스라엘과 역사를 동행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율법 아래의 이스라엘 관원들의 눈은 상하고 마음은 어둠으로 가득하였다.

이는 여호와께서 베푸신 풍족한 삶과 유대사회에서 주어진 명예만을 사모하고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방의 권세 아래에 맡기셔서 언약의 땅은 황무지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남은 자들을 언약의 땅으로 불러들이시고

친히 그들의 목자가 되시며 무너지지 않는 나라를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다.

공생애 당시 유대 땅을 지배하던 로마는 바벨론의 상속자이며,

백성의 관원들과 도시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거절하고 로마 왕을 추종하였다.

이에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신 저주가 그들의 것이라고 정죄하신다(13:10-15).

그래서 예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비유로만 가르치시고 제자들에게는 비유를 설명하여 주신다.

 

맺는 말

 

예수께서는 천국 백성을 모으시려고 열두 사도를 파송하신다.

천국 백성들은 모세율법에 부착하여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던 남은 자들이다.

그들은 이방의 권세 아래에서도 613개 율법에 부착한 경건한 백성들이다.

그들을 위하여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유대 땅에 보내신다.

이처럼 아들을 보내심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역할을 온전히 이행하신다.

이는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충실하게 행하신다는 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다.

이처럼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심은

율법 아래의 종(머슴)이던 백성들을 하나님 아들(자녀)로 구원하시기 위함이다(갈4:4-5).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의 가르침과 사역을 접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갈릴리 마을을 심판 선고하신 후,

율법 통치 아래에서 자신에게 나아온 백성들을 보내주심을 감사 기도한다.

그런데 구약에서 모세율법을 가진 지혜로운 자들,

율법 아래의 관헌들인 제사장과 장로들,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예수를 거절하고 대적함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천국을 감추셨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귀로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다.

그들에게 천국을 감추심은

그들의 눈과 마음이 율법 아래에서 주어진 부유한 삶과 사회적인 명예, 권세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의 눈은 썩었으며 마음은 어둠으로 가득하였다(마6:19-24).

그래서 제사장과 장로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을 듣고 보았으나,

율법 아래에서 주어진 신분과 삶을 포기하지 못하여,

예수를 거절하고 대적함으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율법 아래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이방의 갈릴리 출신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마4:18-22).

이전의 613개 율법을 따라 살던 삶을 청산하고 예수를 따름으로 그리스도의 통치에 거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통치에 거함이 천국에 거함이다.

제자들이 예수를 따를 수가 있음은

이방의 권세 아래에서도 선지자들의 약속을 붙들고 여호와의 구원을 바랐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눈과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눈은 성하여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임을 보았고

그들의 마음은 밝아서 예수의 부르심이 능력의 하나님 말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율법 사회에서는 이방의 갈릴리라고 천시받는 신분이었고,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 변방 갈릴리에 거주하는 작고 나중 된 자이나,

그들의 눈과 마음은 여호와에게만 맞춰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마태복음 19장 내용이 잘 설명한다.

예수께서는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서 나아온 어린아이들에게는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마19:13-15).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함은 어린아이들처럼 예수에게 나아온 상황을 가리킨다.

그런데 바리새인 출신 부자 청년은 예수를 떠나간다.

그것은 재물을 포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마19:16-22).

이에 예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가 쉽다고 말씀하신다(마19:23-24).

여기에서 부자는 유대인 부자를 말한다.

유대인 부자는 모세율법에 충실하여 율법의 복을 받은 자들이다.

제자들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묻자(마19:25),

예수께서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시고(마19:26),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말씀하신다(마19:30).

이처럼 율법 아래의 삶과 그리스도 안의 삶은 공존할 수가 없음을 말한다.

이것이 율법과 복음의 불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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