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죄사함은 아무 관계가 없다.
유대의 율법은 선택된 민족(유태인들의 논리에 따라서)이
지켜야 할 행동규범일 뿐이다.
그리고 그 행동규범은 신정국가였던 이스라엘의 국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유태인은 누구나 율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비유태인은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다.
율법은 복잡하지만 그 중에서 영원하고 보편적인
가치규범도 없지 않으니 그것들을 애써 외면할 이유는 없다.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는 '구원'이 압도적인 관심사이다.
이때 율법이 구원을 후원해 주거나 보증할 수 있을 것인가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죄사함에 관한 율법은 제사규정에 나와 있다.
형편에 따라서 제사 짐승을 선택할 수 있으며 제사물의 일부는
레위인이 취하였다.
레위인의 계보는 바빌론 유수 이후로 그 맥통이 끊어진 것 같았다.
바빌론에서 귀환한 제사장들은 자신이 아론의 핏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족보를 만들었다.
죄사함의 희생제사는 재개되었다.
로마 장군 티투스에게 성전이 파괴된 이후 희생제사는
자연스럽게 사라졌으나 유태교와 그리스도교는 이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다.
먼저 그리스도교는 예수께서 단번에 희생제사물이 되셔서 이를
믿으면 모든 죄가 사해진다고 하고 유태교는 희생제사를 드릴
성전이 사라졌으므로 제사장들의 업무가 없어진것 뿐이다.
예루살렘을 되찾은 현대 이스라엘은 성전을 중건하여 희생제사를
드릴만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오랜 디아스포라 생활을 통하여 희생제사를 대신하는 그 무엇을
찾았기 때문이다.
율법을 공부하는것 자체가 희생제사로 인식되며 그들의 랍비는
공부를 도와주는 스승을 역할을 해왔다.
하여간 유태인은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죄사함이 없이는 구원이 없다는 그리스도교의 입장은 예수를
통해서 그 해결책을 찾는다.
(1)예수 자체가 구원이다.
(2)예수의 피흘림이 구원이다.
위의 두가지 명제가 구분 가능한지 생각해 보았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여러번 구원을 선포했다.
유출병 앓는 여인에게 '구원'을 말씀하셨는데,이때 구원의 의미는
'육체적 건강'이다.원래 연약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건강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질병을 얻었다면 그에게 구원은 '건강의 회복'이다.
유태인에게 질병은 죄의 댓가 혹은 죄의 결과이기 때문에 예수는
'네 죄가 사함받았다'고도 말씀하신다.
죄는 어떤 결과를 유발한다.죄는 또한 여러 종류가 있다.
죄의 결과에 대한 해결책은 당사자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 죄와 사회적 범죄를 구분할 수 있다.
사회적 범죄는 법률에 따라 처벌될 것이다.
개인적 죄는 당사자 간의 문제이므로 윤리,도덕의 범주에서
고려하여 행동을 취하면 된다.
결론적으로 (2)번 항목은 상당히 좁은 의미에서의 구원론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피흘림과 상관없이 여러 사람이 구원 인증(?)을
받았음이 복음서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1)번 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의 결정적인 사건 중에서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인가?
그분의 탄생? 대속? 아니면 부활?
복음 혹은 구원의 시효는 부활이라고 본다.
부활로 인해 비로소 기독교가 탄생했다고 보는 견해가 통념으로 굳어졌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