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기독교知性

진정한 구원은 의지의 자유를 강제하지 않는다 1편

작성자엄기욱|작성시간06.10.21|조회수123 목록 댓글 0
* 진정한 구원은 의지의 자유를 강제하지 않는다 1편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해와 의지의 자유로운 운용에 의해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만일 이와 같은 인간의 이해와 의지가 자신 이외의 존재에 의해 강제된다면 이는 그의 자유가 침해를 당하는 상태이기에 설령 거기서 어떤 선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 영혼의 참 본질을 형성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의지의 자유는 그의 구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에 주님조차 그의 의지의 자유가 강제되지 않도록 섭리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인해 주님은 당신의 은혜 부으심에 있어서도, 또 성도의 견인에 있어서도 인간의 의지를 강제하시면서까지 그 영혼을 보호하시지는 않는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인간의 의지의 자유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의지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는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미래사를 아는 경우 또 이와 비슷하게 자기 영혼의 구원을 하나님에 의해 확정적으로 아는 경우, 아니면 기적과 환상을 접하거나 형벌과 공포 등에 처해지는 상태에서 비롯되는 모든 언행들이 이에 속합니다. 이 경우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결합을 위하여 자신의 완전한 자유에 의해 진행되어야 할 인간의 의지가 여러 형태로 제한 또는 강제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인간의 의지의 자유를 제한하고 강제하게 되는 이와 같은 일들이 의외로 하나님에 의해 행사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역사를 마치 구원의 길을 가는 사람들 누구나가 추구하고 인정해야할 적절한 모델케이스로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하여 성경에 기록하셨을까요? 그런 역사로부터 받게될 자유의지의 상실에 대한 위험성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런 식의 하나님의 역사 이면에는 특별한 상황 하에서 어쩔 수 없는 그분의 섭리라는 측면이 강하게 담겨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특별한 경우에 한정될 뿐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반적인 구원의 원리는 하나님편의 은혜 베푸심과 인간편에서의 순수한 드림 곧 그의 의지의 자유 하에서 나오는 진실하고도 자발적인 섬김을 통해 구원에 들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편으로부터 부어지는 은혜에 의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올바른 말입니다. 이 말 자체만 보면 그것에서는 잘못된 점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구원은 하나님편에서 부으시는 은혜와 인간편에서 드리는 믿음, 이 양측이 모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 말씀에서 배웁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아무리 은혜를 부으셔도 정작 인간이 그 은혜를 인식하지 못하여 믿음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 은혜는 마땅히 그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인간편의 그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은혜의 결과물일뿐이라며 그 믿음이 주어지기까지 하나님편의 일방적인 역사만 강조하고 인간의 의지의 노력은 부정하는 것을 봅니다. 물론 그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인간에게 강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편의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 그 믿음을 받도록 준비한 자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점을 배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일반적인 예를 들어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성경 말씀을 계시하심으로 그들 모두가 그 은혜를 골고루 입기 원하시건만 정작 성경을 접할 때 인간은 그 속의 진리를 인정하여 거기에 믿음을 두는 부류와 반대로 그것을 거부하는 부류로 나뉘어지는 것을 봅니다. 이는 하나님편에 의해 강제로 나뉘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편의 사정에 의해 나뉘어진 것입니다. 바야흐로 행한대로 보응받는 원리인 것이지요.

또 이런 측면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처음에는 대개 거기서 오는 이질감과 난해함 등을 느끼며 별반 믿음을 키울 수 없으나 그래도 인내와 겸손으로 읽으려 노력하다보면 어느 새 믿음이 들어와 있는 것을 봅니다. 이 경우 믿음은 분명 주어진 선물이지만 그것은 인간편의 애씀과 노력을 수단으로 주어졌다는 측면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를 말하는 것은 인간편의 공로를 주장하여 그 댓가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편의 의지의 노력이 없음에도 하나님편의 은혜가 일방적으로 그의 의지를 강제하여 그로 하여금 노력하게 하고 그 결과 그 영혼에 믿음을 형성하게 하여 그르 구원할 수는 없음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드리는 순종없이 오직 주님의 은혜만으로써 일방적으로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달콤한 환상을 지우려 하기 위함입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이 성경책과 그 속의 말씀을 이러저러한 경로로 접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은혜를 받고 아니받고는 그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달려있습니다. 은혜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골고루 뿌려졌으나 인간편의 사정에 의해 한쪽은 은혜의 효력이 나타나고 다른쪽은 그 혜택을 입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편에서 부으시는 은혜는 값없이 또 일방적으로 그냥 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편에서 준비하는 이해와 의지의 협동에 의해 그것이 선용되는 데에까지 나아가야 비로소 그 완전한 나타남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편의 은혜는 인간의 의지를 강제할 수 없고 반드시 인간편의 의지의 자유로운 협동을 통해 그 효력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인간편에서 본다면 이렇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고 있다는 인식 하에 자신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그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준비를 해야하고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이 모두가 주님의 은혜 베푸심의 결과라고 고백함으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가 인간에게 이런 식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육신으로 사는 한 인간은 누구나 그 힘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분명히 지각하고 느낄 수 없는 상태에 있기에 다만 그것을 지식으로만 고백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겉으로는 그 힘이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양 인식할 수 밖에 없기에 스스로 애써 노력하고 그 후에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함으로 주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편에서 부으신 은혜는 인간의 자유로운 이해와 의지의 운용에 따라 그 결과가 나타나도록 섭리하시는 것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주님 역사의 일반적인 원리인데 이를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무척이나 중요한 사안이 됩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그리스도의 피 공로에 위한 은혜의 구원만을 부르짖으며 스스로 자신을 악에서 돌이키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면 마음은 점차 악에 물들어 성품이 황폐해질 것입니다.

진정 주님의 피 공로를 알기 원하는 자는 지식적 고백을 넘어 영으로 이 사건을 체험하기 원해야 하며 이 과정에 진입한다면 그는 필히 지속적으로 자신의 죄악을 끊는 아픔을 겪지 않고는 주님의 피 공로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 공로의 성격은 죄 지은 자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여 그를 그냥 구원에 들게 하는 정도로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피 공로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에 있습니다. 즉 스스로 죄에 마음의 문을 열어준 탓에 죄성이 깊어져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는 지옥의 유혹과 맞서 싸울 수 없는 상태에 이른 자들을 구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제 악의 세력과 싸울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공급받게 하여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함으로 그들을 구원으로 이끄심에 피 공로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편에서 악을 제거하지 않고는 그리스도께서 부으신 피 공로의 은혜는 헛된 것이 되고 말 뿐입니다. 피 공로에 대한 의미를 잘못 이해함에서 오는 영혼의 피해는 실로 막대합니다. 무엇보다 끊어야할 죄악이 자신에게서 모락모락 피어나는데도 이를 끊으려 사력을 다하지 못한 채 스스로는 구원얻은 자라 안심하며 감사와 평화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악을 끊치 않고는 구원에 들 수 없다는 절대절명의 위기감이 없으니 그 마음에 어찌 자신의 악과 싸우려는 움직임이 있을 수 있으리요.

교리로는 구원을 얻었다고 외치며 그 은혜를 감사할지 모르나 그의 성품은 죄를 계속 짓는 태도를 그대로 방치하여 죄성이 점점 깊어지면 악을 향하여 치닫는 그의 마음을 통제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지경에까지 처하게 됩니다. 그래도 회개로 죄를 끊치 않고 그런 상태를 그대로 놓아두어 극한점에 달하여지면 마침내 선과 진리를 향한 그의 이해와 의지의 자유로운 운용이 전연 불가능해지는데 이 상태가 바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임박한 심판의 상태입니다.

이 심판의 상태는 한 개인의 영적 멸망을 표현한 것이지만 실로 이 땅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가 이런 영적 상태에 있는 사람들로 넘쳐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그때가 바로 그 교회에 심판이 행하여지는 때인 것입니다. 유대교회가 이런 지경에 처하였기에 주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며 그 결과 유대교회를 심판하시고 사도들로 시작된 기독교회를 새롭게 이 세상에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유대교회에서 행해진 수많은 기적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이집트 탈출부터 주님 오심의 전후까지 실로 많은 기적들이 공공연하게 행해진 것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 중에서도 기적들이 행해지던 절정의 시기는 역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직접 기적을 행하시던 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후 말씀이 체계화되어 순수 진리가 드러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런 공공연한 기적은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공공연하게 일어나던 기적의 빈도가 주님 오실 당시에 최절정에 달했다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극악한 영적 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그들 내면에 쌓인 죄성은 굳어질대로 굳어져 이제 더 이상 돌이킴이 불가능할 정도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선을 지향해야할 그들의 이해와 의지는 지옥의 세력에 지배되어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하고 심지어 몸까지 그들에게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오실 당시 유대에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이 많았다는 것은 이러한 일의 영적 그림인데 그 상태가 지속될 경우 거기 죄짓는 당사자의 죄가 더 무거워지는 것은 물론 주변의 선 안에 있는 소수의 무리까지 영향을 받아 모두가 파멸에 이르게 될 처지였습니다. 이에 세상에 오신 주님은 원치 않으나 어쩔 수 없이 물리적인 기적을 행사하시거나 때로 징벌의 두려움 등을 강하게 경고하심으로 이런 강제적 행사를 통해서라도 그들이 더 이상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공공연히 나타난 하나님의 이런 기적들은 그 당시 유대와 같이 인간의 자유의지가 파괴되어 심판이 임박한 영적 상태에 있는 자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 불과한 것일 뿐이기에 이를 지금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시킬 표본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물론 기적의 긍정적인 면이 있기는 하나 이보다는 반대적으로 그 폐해가 가공할 정도로 커 급기야 선을 향해 활발히 움직여야할 인간의 의지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지금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어 때로 어떤 영혼들은 기적이라는 외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그로 인해 더욱 영적 진전을 이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아직도 수많은 악과의 싸움에 있어 연약하여 뒤로 물러나기만 하는 우리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이미 말씀과 교리의 올바른 정립, 그리고 많은 영적 시험을 통해 악을 어느 정도 제거하여 영혼이 드높게 개량된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나 해당되는 특별한 경우인 것입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더욱 많은 이들이 주님을 잘 믿고 따르게 될 것이며 일생에 지속적으로 그런 기적을 통하여 인도받을 수만 있다면 신앙은 월등히 성장할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게다가 주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그분을 알리는 방법으로 기적만큼 효과있는 방법은 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널리 알리고 또 그것을 갈망하기도 해야 되겠지만 주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신 후 그런 자신의 모습이 밖으로 알려지지 않도록 새삼 당부하신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왜일까요?

그 사정은 이러한데 즉 기적과 같은 식의 간단하고 급작스러우며 또 충격적인 수단에 의해 구원으로 인도되어지는 것에는 인간이 그 어떤 강제적 외력도 없는 상태에서 자기 스스로의 자유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야 할 의지의 자유가 묶여져버릴 수 있는 엄청난 위험이 내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기적의 놀라운 매력에 매이면 인간은 의지의 자유를 통해 시험과 고난을 극복하며 어렵게 믿음을 키워가는 것보다 그 기적이 주는 손쉬운 감화력에 마음을 빼앗겨버리는 것이 인간의 전반적 기질입니다.

입술로는 기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도 실제 조그마한 어려움이 오면 이를 믿음으로 극복하기보다 손쉽게 기적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이 인간이지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삶으로 조금씩 믿음을 키우며 꾸준히 주님께 가까이 가는 일은 정말 해도해도 어려운 일인데 이에 반하여 주님의 모습을 환상으로 만나거나 그 음성을 들음에서 순간적으로 얻어지는 믿음은 얼마나 황홀할까요?

아마 그런 기적은 자신의 약함을 순식간에 떨쳐버리고 변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공급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 덕분에 한동안은 주님의 은혜 베푸심에 감사하며 그 감화력으로 평소 자신의 것 이상의 순종을 주님께 드리며 손쉽게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에 의해 일순간에 얻어진 이 힘은 그것이 아무리 크고 화려하다 할지라도 훗날 그의 영혼에 돌이킬 수 없는 해를 가하고야마는 결정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적과 같이 의지를 강제하는 방법에 의해 얻어진 힘의 문제는 그 영혼 깊숙이에 새겨지지 않는 일시적인 성질의 것이라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볼 수 없어 답답은 하지만 주님이 확실히 돕고 계심을 믿음으로 보며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로 악과 피흘리기까지 싸우는 식의 투쟁을 통해 획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주님이 기적을 행하자 대다수 무리들은 그런 주님의 모습을 환호하고 반기며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허약하게 붙잡히심으로 더 이상 그런 기적으로 그들을 돌볼 수 없게 되자 마음의 본심이 드러나 곧 그들은 주님을 배반해버립니다. 이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적 등을 통해 주어지는 힘의 놀라움에 한번 매료되기 시작하면 인간은 어려움을 그복하고 자신을 드리는 순종으로 한 단계씩 차고차곡 구원을 완성해 가기보다는 자꾸 더 큰 기적 보기를 염원하며 한꺼번에 손쉬운 구원을 얻으려는 욕망에 마음을 빼앗겨버립니다. 자신에게 남겨진 미약한 힘이나마 그것으로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 드릴 때 주님은 그전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도록 보다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방법이 구원을 이루는 정상적인 원리임에도 이를 버리고 한탕주의식 구원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이것이 거짓인 줄 알지 못하는 것은 이미 성경이 그런 식으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의지를 강제하면서까지 베풀어지는 은혜는 또 얼마나 아름답고 황송하게 느껴지던지 그 은혜를 받은 자는 감사와 눈물을 흘리며 나름대로는 진정어린 고백을 하게도 됩니다. 이런 열기에 휩싸이면 악은 그대로 자신 내면에 있어 옆사람조차 눈살을 찌푸리는데도 정작 자신은 주님의 무한한 은혜의 물결에 도취되어 그분과 아주 가까이 있는듯한 느낌에 젖어 살고 이런 분위기로 인해 자신을 구원얻은 것으로 간주하며 안심하는 사이 영혼은 점점 멸망에 처하게 됩니다. 사단의 교묘함은 이처럼 알아차리기가 어려워 거짓을 가지고 진리라고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적에 이런 폐해가 있음에도 기적을 체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적을 보고 들을 때 자신만큼은 그것을 통해 더욱 주님께 충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기적의 긍정적인 부분만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자신의 영적 상태가 좋을 때에는 그 기적을 잘 활용하여 선을 이룰 것 같은 담대한 생각에 사로잡히나 때가 이르러 극심한 어려움이 오고 그때 지독한 악의 세력에 공격을 받는다면 상황은 달라져 그런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기적을 베푸시는 주님만을 찾아 그분께 도움을 청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그와 함께 해주시던 주님은 기적을 베푸시는 주님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 주님이 기적을 행하지 않으면 그는 다시 주님을 배반하게 되겠지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