從北을 종북이라 부르면 안되는… '화성에서 온 판결'인가 |
- 최연진 사회부 기자
"분단 현실과 국가보안법이 있는 현 상황에서 종북(從北)이라는 용어는 조선노동당을 추종하고 헌법의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현실상 종북이라 지칭되면 반사회적 인물로 몰릴 수 있다."
지난 8일 오후 이정희(45) 통합진보당 대표가 정치평론가
변희재(40)씨를 상대로 낸 소송의 선고 공판에서 재판장(서울고법 민사13부 고의영 부장판사)이 한 말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구체적 증거
없이 종북·주사파라 부르는 것은 적대 세력으로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했다. 이 대표에 대해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등 상당한 평가를 거쳤는데, 종북으로 단정될 근거가 없다"는 평가를 보탰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종북이란
말은 재판부의 판단보다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친일파' '수구' '꼴통'이라고 비판받는 정치인들이 있는 것처럼, 종북도 북한 김씨
왕조체제를 감싸는 태도를 보일 때 쏟아지는 일종의 '정치적 수사(修辭)'였다.
이번 판결에 앞서 1심 재판부도 "종북이라는 표현
자체는 누군가의 행동과 발언 등을 토대로 평가한 특정인의 대북관을 의미한다"며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부터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사회세력에 대해서까지 다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인정했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 대표 측 주장만 받아들여 '구체적 증거' 없이 '단정적으로' 표현해선 안
된다는 결론을 냈다. "종북 프레임을 들이대지 말라"는 통합진보당의 '프레임'에 법원이 스스로 묶인 셈이다. 판결 이후 한 법관은 기자에게 "이
대표를 종북이라고 하면 안 되느냐. 몰랐다"고 했다.
현재 우리 정부는 이 대표가 이끄는 통진당을 "헌법 질서를 문란케 하고 북한을
추종하는 위헌 정당"으로 규정하고 정당 해산을 청구했고 헌법재판소가 그 결정을 내리기 위해 9개월째 숙고 중이다. 그런데 법원의 이번
판단대로라면 우리 정부도 통진당을 명예훼손하는 잘못을 범한 셈이 된다.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화성에서 온 판결'이라는 생각까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