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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評論] 서시(序詩) - 윤동주

작성자gaegu|작성시간18.01.15|조회수82 목록 댓글 0

[評論] 서시(序詩) - 윤동주

                                                                                     written by kim sang bong(gaegu)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암울한 일제(日帝)식민지(植民地) 치하 일제의 강점(强占)으로

나라 잃은 설움에 깊이 잠겨 절망하고 있던 우리 민족에게

아름다운 시의 혼의 살아있음을 널리 일깨워준 시인 윤동주.

그는 가고 없지만 아름다운 그의 시는 우리 민족의 혈맥(血脈)속에 살아있어

지금도 우리의 심금(心琴)을 짜르르 울려 주고 있다.

나라가 없다면 국어도 없고, 국어가 없다면

그 민족은 살아 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열강(列强)의 나라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침탈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이때,

님의 시를 이 마당에 다시 건져 올려 되새김하고자 하는 뜻은

우리 민족의 자주와 독립과 이 땅을 사랑했던 님의 숭고한 희생이

오늘에 사는 우리들에게 참된 경종을 울려주기 때문이다.

저번에 일어났던 미군 장갑차에 의한 두 여중생의 사망 소식을 떠올리면서

힘이 약한 나라의 설움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다시는 이 땅에 일제점령과 같은

암울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최근세사에 인구에 회자되던 속담과 격언 같은 다음 말을 기억하면서

민족 자존과 자주와 번영을 위한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다져야만 할 것이다.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군을 믿지 마라, 일본이 일어난다, 조선아 조심해라'

우리 나라는 지정학적인 위치가 국운이 강성하고 융성할 때는

해양과 대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입지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국운이 쇠퇴하고 나라가 쇠약할 때는 언제나 주위 열강의 침략을 받은 것을

우리의 지나간 역사가 실증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초강대국 미국이 재편하는 힘의 균형을 견제하기 위한

유럽(,,)과 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는 중국과 일본 등 그 어느 때보다도

첨예한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힘의 헤게모니(쟁탈전)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대 이라크 공격만 해도 그렇다.

 옛날 같으면 전통적 우방인 프랑스가 미국을 편들고 나서겠지만

지금은 반대하는 편에 서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 독일, 러시아 등도 반대를 하고 있다.

 미국은 전쟁의 대의명분을 얻기 위해서 유엔안보리에 이라크 공격을 위한 동의를 구하고 있지만

 그것도 프,,,중국이 반대하고 있어 사실상 9개 상임이사국 인준 통과가 부결될 것이 뻔하다.

이 마당에 미국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부시가 아들의 정책에 대해 조언을 하고

 너무 강골(强骨)로 나서지 말 것을 주문한 것도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야기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감이 있다.

각설(却說)하고 이제 본 서시(序詩)에 대하여 깊은 주의와 환기를 하면서

시의 진면목 그 깊이와 높이와 부피와 넓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 시의 전체적인 대략은 19행으로 된 짧은 단시이다.

그렇지만 이 시에 담겨있는 깊고 심오한 여러 가지 사상은 시가 짧다고 해서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실증으로 보여주고 있다할 것이다.

 또한 이 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애송(愛誦)되어 그 끈질긴 생명력과 함께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사상을 전해주는 주옥(珠玉)같은 시편(詩篇)으로 두고 두고 기억될 것이 틀림없다.

시대의 불운을 뛰어 넘어 그 아름답고 고결한 시의 혼을 짧은 어귀(語句)속에

이렇게 함축적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고운 노래도 그렇게 많지가 않다.

이제 행과 줄을 넘나들며 널뛰기와 줄다리기를 해 보고자 한다.

그것이 이 시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요, 관심이며

새로운 각축(角逐)의 시대를 맞이한 우리들의 사명이기도 한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땅에서 태어난 인생은 언젠가 한번 죽게 마련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법칙을 따라 여기에서 예외(例外)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누구나 다 한번 태어나서 죽고 말겠지만 이 시인은 사는 날 동안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기를 원하고 바란다.

죄를 전혀 하나도 안 짓고 사는 의인이야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겠지만,

고결한 이 시인은 마음으로 원하고 소원하는 바가 참으로 높고 고상하다.

죄 없이 살기를 적어도 양심에 비추어서 순수하게 아름답게 살려는 시인의 고결함이

바로 이 시의 아름다운 사상을 높이 거양(擧揚)시키고 있다.

 참으로 그 어느 누가 나는 일평생 살면서 죄 없이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그 마음과 생각과 행위와 말로, 날마다 쉬지 않고 사언행(思言行)으로 죄를 먹고 마시며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사실 인생의 종말을 고하는 육신의 사망이 올 때 그 때 비로소 인생은 죄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죽은 자는 말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

그냥 무색(無色), 무취(無臭), 무동(無動)의 자연상태로 회귀(回歸)하는 것이다.

비로소 모든 고통과 괴로움, 생의 굴레와 멍에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이 때인 것이다.

그래서 잠언에도 이르기를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있고,

미련한 자의 마음은 연락(宴樂)하는 집에 가 있다"고 했던가?

 여하튼 이 시의 초두에 본 시의 저자는 그의 아름답고 고상한 생각으로

순수하고 양심적으로 깨끗하게 살기를 바라고 원하고 있다.

우리도 이와 같은 마음의 자세로 살아간다면 멋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수가 있지 않겠는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잎새에 이는 바람은 어떤 바람일까? 잎사귀(인생)에 부는 바람(풍진세상)은 당연한 것이다.

잎사귀는 널찍하여 바람을 맞기에 안성맞춤이다.

잎사귀는 그 넓은 깃으로 말미암아 바람을 맞는 것이 필연적인 사실이다.

그것은 회피하거나 거부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바람과 잎새 그것은 필연이요, 운명이며, 숙명의 관계이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풍진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때로는 운명의 거친 굴레와 수레바퀴로 생의 수레를 불태울 듯이 다가오기도 하고,

미풍에 속살거리듯이 다가와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던지기도 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은 때로는 인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센 태풍이나 광풍(狂風)으로, 때로는 향기 좋은 훈풍(薰風)이나

아름다운 미풍(美風)으로 귀를 간질일 때도 있다.

생에 있어 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주위를 넘나들며 불어오고 불어 가는 것이다.

그 바람의 세기가 다른 것은 사람 사는 모습이 천차만별이듯이

자연도 그와 같이 우리의 조건이나 형편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바램이나

기대와는 전혀 무관하게 쉴 새 없이 불어온다는 것이다.

그 바람은 자연에서 불어올 수도 있고, 사람과 사람 즉, 인문 사회적인 환경에서 올 수도 있고,

사람과 자연 즉, 자연과학적인 관계에서도 올 수 있다.

여하튼 사람은 연약한 고로 여러 가지 유해한 자연환경에서

오는 질병이나 병약함, 질고 등의 바람도 맞을 수가 있다.

이 시인은 아마도 심성(心性)이 여린가 보다.

또 다른 그의 시 ' 별 헤는 밤'에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의 고결함과 결부시켜

노래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 시인은 천성적으로 여린 감성이 다른 사람들보다

 승()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시인의 괴로움은 여러 가지 바람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관심으로 인해 그 극()에 달하고 있다.

 심성이 여리고 따뜻하고 고결한 사람에게 엿볼 수 있는 동정심, 사랑이 이 구절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흔히 시대를 앞서 살아가는 선각자(先覺者)들에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나라와 민족과 국가의 안녕(安寧)과 평안(平安) .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간구(懇求)하고 기도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바램이기도 하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별은 하늘에 매달려 있다. 자연의 대표적인 아름다움의 표상이다.

하늘 허공에 매달려 칠흑 같은 어둠을 밝게 비추며 길 잃은 나그네의 여정에 벗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문인(文人)재사(才士)와 아름다운 명상가(瞑想家)들 그리고 작곡자(作曲者)들 노래하는 사람들,

미술가(美術家)들에에 의해 언제나 불려지고 그려지고 있는 영원한 아름다움의 명제(命題) 내지 테마(theme),

아름다운 사상과 꿈의 산실(産室)인 별에는 언제나 아름다움과 그리움이 있다.

그 속에는 땅에 사는 사람들의 온갖 애환이 묻어있고, 노래가 담겨 있다.

그 별을 이 아름다운 시인도 노래하고 있다.

노래할 때 세상의 거센 바람도 비껴 갈 것이라는 낙관을 엿볼 수가 있는 것도

별이 희망의 상징으로 빤짝거리며 빛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시인은 여기서 아름다운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상의 극치는 사랑이다. '자비와 긍휼'의 마음이다.

모든 죽어 가는 것들 삼라만상(森羅萬象)에 존재하는 일체의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理由)로 나타나고 있다.

생명은 잉태하는 순간부터 조락(凋落)을 시작한다.

내부로부터 시작하여 쉴 새없이 진행되는 그 현상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인 것이다.

 인력으론 어찌해 볼 도리는 없지만 그래도 사랑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근거가 있음으로 해서 인생은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다.

 사랑을 위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에서 사랑을 빼어버린다면 남는 것은 사실 상 아무 것도 없다.

그만큼 사랑이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사랑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존재(存在)현상(現狀) 내지 그 실체(實體)이다.

시인은 여기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아우르는 생명의 외경(畏敬)에 대한 높은 시사(示唆)를 우리에게 던져 주고 있다.

우리도 이 시인처럼 모든 것들을 사랑할 때 고결하고 고상한 품위로

아름답게 살아갈 수가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우리 모두의 소망이면 참 좋겠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시인의 눈길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땅에 발을 붙이고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상,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면서 살겠다는 당찬 포부의 발로(發露)이다.

주어진 길 모든 인생들에게 부과된 땅 위의 날들,

살아있는 동안에 행해야 할 모든 책무가 이 속에 녹아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분수, 직책과 직위에 따라 부여된 달란트를

잘 감당하겠다는 소원과 소망이 이 속에 흐르고 있다.

인생의 날들은 길 위에 날이다.

행인 같이 나그네같이 지날 때 어떤 사람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버거워하며 괴로워하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고

그것을 단 마음으로 기꺼이 수용하며 용맹(勇猛)정진(精進)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돌(猪突)맹진(猛進)하던지 어렵고 힘들어하며 겨우겨우 가든지

여하튼 간에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간다.

위에서 부른 부름의 상을 좇아서 목표와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것 없이 그냥 별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다.

사는 모습과 행로는 각 사람의 생각과 삶에 대한 태도와 차이에 따라 나중에 각기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

이 시인은 자기에게 주어진 길, 책무와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인생을 알차게 다지며 살아가겠다는 야무진 포부와 결의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이라는 인생의 길을 갈 때 누가 옆에서 길동무가 되어 줄 것인가?

험한 인생의 바다에서 돛단배를 타고 갈 때 풍랑(風浪)이는

바다와 해일(海溢)이는 광풍(狂風)을 어떻게 이겨내며 갈 것인가?

 모든 사람들에게 던져지는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한번 깊은 심사숙고(深思熟考)와 자아(自我)에 대한 성찰(省察)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 운다.'

 

시점(時點)은 다시 현재(現在)이다.

 이 서시(序詩)를 쓴 날 밤에도 역시 하늘 바깥에는 별이

바람 속에서 나부끼며 온갖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그 스치는 별 이야기는 과거에도 그렇게 해왔고 현재에도 그렇게 하고 있고, 미래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 스치는 별과 아름다운 바람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인생의 온갖 희노애락(喜怒哀樂)애오(愛惡)()을 불러일으키며

사람들과 아름다운 자연들과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을 할 것이다.

언제나 생명의 현상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며

그 속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모습을 꿈꾸면서

 이 시인은 이제 자기의 아름다운 서시(序詩)를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연(自然)속에서 생명의 날들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 생명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일체(一切)

별이 하늘에서 바람과 스치우듯이 그런 인과관계(因果關係)를 맺고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꿈과 아름다운 사상과 사랑의

위대한 속성을 일깨워 주면서 영원 무궁토록 이어질 것이다.

지금 이 시인은 그 때 그 하늘의 별과 바람과 사랑에 대하여

훗날 우리들에게도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

살아갈 것을 주문(奏文)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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