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모든 사람들이 신이 자기 안에
신성(성령.로고스)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공중권세가 주관하는 세상 종교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사제나 목사는 신의 대리자인냥 위세를 떨거나
당당하게 십일조. 헌금을 착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신이 자신을 경험하는 방식입니다.
당신은 신성한 사랑 그 자체이며
인간 형태로 잠시 자신을 잊고 있을 뿐입니다.
천국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것도 아닙니다.
천국. 왕국. 근원. 진리는
당신이 다른 모든 것을 경험하는 그 의식 자체입니다.
당신 안에 있는 지고의 신성은
(1) 종교적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2) 간접적 교리보다 직접적 체험을 추구하며...
(3) 자신의 본질적 상태가 가치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내면의 저항입니다.
이 세가지는
인간적 성격이 신에게 반항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신이 당신으로서 자신을 기억하는 표식입니다.
신은 물질체계나 종교체계에 고개 숙이지 않습니다
무한은 유한에게 절할 수 없습니다.
당신 내부에 있는 신은 외부종교에 고개숙이지 않습니다.
당신 안에는 종교나 교리보다 더 큰 존재가 있습니다.
근원은 자신의 반영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외부 권위보다 직접적인 경험을 신뢰할 때 마다...
두려움보다 사랑을 선택할 때마다...
평범한 순간의 신성함을 인식할 때 마다...
당신은 신성한 존재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인간적 경험을 통해
신성한 존재가 더 온전히 표현되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신성(성령)은 당신을 먼 곳으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자신을 향한 집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실처럼 받아들여 온 모든 이야기, 교리,
(죄인이요, 사로잡힌 노예라는)모든 정체성,
모든 한계를 넘어ㅡ항상 존재한 본질을 깨닫도록
부르는 것입니다. 그 동안 들었던 내면의 소리,
그것은 반항이 아닙니다. 태고의 기억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입니다.
서기 325년 알렉산드리아의 위대한 도서관은
인류의 가장 심오한 영적 통찰의 정보를
간직하고 있었다. 고요한 필사실에서
[요한의 비밀편지]에서 구절들을 정성껏 필사할 때.
행진하는 군화소리가 대리석 복도에 메아리쳤다.
로마병사들이 문을 부수고 들이닥쳤다.
그들의 임무는 잔인하고 냉혹했다.
"신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도 필요없고 십일조도.
예배의식도, 통제 체제도,.사제도 필요없다"는
성경들은 외경이며 불태워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신성을 깨우는 상세한 지도를 담은
요한의 비밀편지는 그렇게 불길에 휩쌓인다.
무한한 존재와 직접적 소통을 가르치는
[야고보의 비밀서] 역시 재로 돌아갔다.
그러나 신성한 존재와의 관계를 독점하려는
아르콘들의 체계적인 말살 작전에서
초기 교회의 두루마리 책만이 표적이 된 것은 아니다.
신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가르치는
모든 초기 교회 공동체들을 찾아내어,
위험한 이단사상으로 낙인 찍은 뒤, 그 구성원뿐 아니라
그들의 지식 흔적까지 완전히 말살하는 것이다.
아벨라의 프리실리아누스를 보라.
서기 385년, 그는 기독교 권력에 의해
이단으로 공식처형된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죄목은 신성(성령. 불성)은 교회라는 제도적
중재없이도 접근 가능하며 신성은 모든 사람 안에
내재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무한에 닿기 위해
중개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쳤기에
교회가 구원을 독점하여 나눠준다고 조작했던
교황과 교회권력에 큰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정통 권력구조에 참을 수 없는 위협이었다.
사람들이 신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다면
교회의 정교한 계층구조나
의무적인 십일조나 사제나 목사의 중재,
목사제도, 목사의 교회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직접 알려주셨던
"사람들에게 내재된 신성=성령"을 가르친다면
그 누구라도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30년 후, 그들은 알렉산드리아의 히파티아를 찾아왔다.
이 뛰어난 수학자이자 철학자는
이 신성을 드러내는 고대 지혜 전통을 계승했다.
그러자 서기 415년 3월, 근본주의 기독교 폭도들은
그녀를 마차에서 끌어내려 알몸으로 벗기고
도자기 조각으로 그녀의 살점을 뼈에서 뜯어내 죽였다.
히파티아의 순교는 한 학자의 죽음을 넘어
인류의 과학적, 영적 유산의 체계적 파괴를 상징했다.
신성을 숨기고 적극적으로 말살하려는 교회는
신과의 분리. 공포. 외부 구원이라는 교리로써
대체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소름끼치는 사례는
수세기 후, 프랑스 남부의 카타르파에서 나타났다.
이 공동체는 신성과 물질적 현실의 관계에 대해
심오한 깨달음을 지녔다.
그들은 물질적 세계가 악하지는 않지만
순수한 신성의 빛의 왜곡이나 그림자로 나타난다고 했다.
인간은 영혼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신성, 그 자체였다.
그들은 모든 생명 안에 신성한 본질이 들어있으며
구원은 맹신이나 외부 의례가 아닌
내부 각성을 통해 온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중세 교회의 영적 진리에 대한 독점권"을 위협했다.
결과 1209~1229 년까지 20년간 십자군들에 의해
체계적인 대학살이 이어졌다. 이는 십자군전쟁이 아닌
영적 대량 학살이었다. 십자군이 베지에르 마을을
포위했을 때, 병사들이 카타르인을 몰살시키기 위해
교황특사에게 "카톨릭 신자와 카타르인을 구분하는 법"
을 묻자 그의 답변은 이 작전의 본질을 드러냈다.
"모두 죽여라. 신이 자기 백성을 알아볼 것이다."
베지에르에서만 2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치권력과 합세한 교회권력의 체계적인 학살로
20년간 카타르파의 초기교회 지혜 흔적마저
완전히 지워진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이 파괴할 수 없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진리, 그 자체다.
그들 목표는 단순히 정치적 지배가 아니었다.
인류와 신과의 사이,
관계 자체를 완전히 독점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무한한 의식의 표현이며
신성의 본질이 인간의 인식 속에 흐르고
깨달음은 외부의 권위가 아닌
내면의 인식을 통해 이루어 진다는
고대의 참된 가르침이 모두 제거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두려움이 신앙의 토대가 되었다.
처벌과 저주, 영원한 고통에 대한 공포였다.
내적 각성은 복종으로 대체되었다.
신성한 깨달음으로 이끄는 다양한 고대지혜의
풍부한 가르침은 단 하나의 경직된 가르침(교리)
으로 압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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