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과 목회라는 용어 사용에 대한 소견
(전도출판사발행 월간지 횃불 2005.4 45쪽~48쪽;- 글쓴이 : 김용규)
지역교회의 인도자들에 대한 호칭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지역교회 인도자들은 모임의 성도들을 양육하고, 본을 보이고, 모임이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바로잡는 일을 맡은 형제들입니다.
그러므로 모임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인도자의 역할과 호칭과 주님을 섬기는 자세가 성경적인가를 늘 확인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자가 잘 못되면 모임 전체는 혼돈에 빠지게 되고 이를 바로잡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장로 형제들은 주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돌보게 하기 위해 성령께서 세우신 모임의 인도자들이므로 디도서 3장과 디모데전서 3장에 그 자질과 기준을 엄격하게 정해놓으셨습니다.
두 가지 가정적인 조건(한 아내의 남편, 믿는 자녀와 복종하는 자녀), 한가지 진리적인 조건(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열세 가지 인격적인 조건(책망할 것이 없고...)을 갖춘 자라야 장로의 일에 적임자라는 것입니다. 모든 조건에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장로는 말씀을 분별하는 것과 인격에 성도들의 모본이 되어야 성도들이 진심으로 존경하고 인정하게 될 것이며, 자신이 늘 자신을 살피되 성경에서 벗어난 부분이 없는가를 검토하여 주님을 섬기는 자세를 가진 형제라야 이 일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로 형제들은 자신을 일컫는 호칭부터 성경적으로 호칭되고 있는가를 검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물의 이름은 그 존재의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창2:19).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행15:23).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니"(행20: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5:17)
"너희 중에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도 함께 장로된 자요"(벧전5:1)
"장로는........."(요이1:1,요삼1:1)
인용한 모든 성구는 모임의 인도자들을 "장로"로 호칭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과 에베소서 4장에는 "감독\"과 "목자"라는 단어로 기록되었지만 이 용어는 장로들의 역할, 즉 일에 대한 용어로 분별됩니다.
일반적으로 인도자들은 장로 형제로 호칭된 것이 분명하며, 개인적으로 이름을 사용할 때는 형제라는 단어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벧후3:15)
일시적으로 존재했던 사도의 직임과 장로의 직임을 같이 맡았던 베드로와 바울도 서로 "형제"라고 호칭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전국에 있는 지역모임에 사역자, 목회자라는 단어를 모임에서 사용하는 것을 지면과 글을 통해 자주 듣게 되고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섬기는 일(사역)을 한다거나, 성도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는 의미가 아닌 어떤 형제 일인에게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분별됩니다.
어떤 모임에서는 장로와 사역자가 다른 직임인 것처럼 사용하기도 하고, 사역자를 모집하고 세웠다는 서신을 보내는 경우도 있으며, 또 어떤 모임의 한 형제를 목회자라고 본인도 말하고 다른 성도들도 인정해주는 경우도 있으며, 또 사역자에게 보고나 상담을 했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됩니다.
은사의 종류가 기록된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장, 에베소서 4 장 어디에도 사역자나 목회자라는 은사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 국가와 모든 단체와 종교계에서는 지위와 신분과 성직자와 평신도의 계단이 있습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과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들의 수고를 알아주고 존경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지만 형제와 형제 사이에 간격이나 계단이 생길 위험이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한 모임에서 직업을 가지지 않고 말씀에 수고하는 형제님을 사역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 장로와 다른 장로를 차별하는 호칭이요, 복수 장로의 진리가 흐려지고, 말씀 전하는 다른 은사자가 일어나는 것을 제한 하는 제도가 되어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지역모임의 장로들 중에 직장을 놓고 안 놓는 것은 개인적인 분별과 건강문제와 모임의 형편을 따라서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직장을 놓고 섬기는 장로 형제님도 그 지역교회 다른 장로 형제님 중 한 분일 뿐이지 특별한 형제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지역모임이 다른 지역모임의 형제를 초청해서 말씀을 전하는 장로로 세우는 것보다 그 지역모임의 성도들의 모든 사정을 잘 아는 그 지역모임의 형제님들 중에서 장로들이 세워지도록 기도 드리는 것이 합당한 방법이라고 분별됩니다. 혹시(여러 사정으로)연약한 지역모임을 돕기 위해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공개할 필요없이 조용히 가서 연약한 모임 성도들과 동역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경우 개인적인 인간관계에 따라 오가면 안 됩니다.
사역자 동역자라는 단어는 고린도전서 3장5~9절에 한번씩 기록되었습니다. 아볼로와 바을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한 자(사역자)들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자로 부릴 사(使). 부릴 역(役), 사람 자(者)입니다.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겼음이라"(딤전1:12)고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충성된 바울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일을 수행하는 자가 사역자입니다.
주님께서 일을 맡기시는 모집 기준에 사용 기준을 보면 반드시 충성된 자에게 맡기십니다. 맡기면 충성하겠다는 것은 순서가 아닙니다. 그의 충성이 증명된 자에게 일이 맡겨지는 것입니다.
충성이란 "책임감이 강하고 근면, 성실하다"는 뜻에 온전히 복종하는"이라는 뜻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역은 단순히 일한다는 뜻이지 은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는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수17:13), 여기에 기록된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사역자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군대에서 \"사역병 집합\"하면 일하는 병사들이 일에 맞는 도구를 들고 집합해서 지시하는 일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일하다가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사역은 넓은 의미에서 모든 성도들의 여러 분야에서 맡은 은사를 따라 교회에 덕이 되게 모든 일(사역)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 전하는 것 만 중요한 사역이고 다른 일은 중요한 사역이 아니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중요한 은사, 덜 중요한 은사는 없습니다. 은사의 종류와 상급은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모임의 장로 형제님들은 자신을 위해 사는 시간보다 주님을 위해, 성도들을 위해 밤낮 기도하고 수고하는 그 모든 수고를 성도들이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어느 지역교회의 결혼식과 장례식에 참석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멀리서 온 모임을 인도하는 형제님들께 돌아가실 때 교통비나 하라고 봉투에 물질을 넣어 주셨습니다. 저는 받지 않으려고 거절했지만 계속 권하셔서 주님의 뜻으로 알고 받았습니다. 가는 길에 함께 동행하신 성도님들께 "주님께서 주신 것이니 오늘 돌아가다 저녁이나 맛있게 먹고 갑시다"하고 말씀 드렸습니다. 저의 말을 들으신 어떤 형제님께서 "참석한 모든 사역자들에게 주시던데요, 저도 받았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형제님께서 일인사역자(직장을 놓고 주님의 일을 하는)라는 의미로 말씀하시는 것 같이 들려서 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혹시 다른 의미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조심스러워서 그 문제를 교제해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고전14:29) 말씀을 들을 때나 책자를 읽을 때 그 용어가 성경적인가를 분별하면서 듣고 읽어야 합니다. 또 모임의 장로 형제님들은 지역모임에서 가르쳐졌고 잘 아는 진리일지라 할 지라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가르쳐야 모임이 진리 위에 든든히 설 수 있고 성도들의 영적 건강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성경은 가르치기 위해서 보는 교과서가 압니다. 우리가 섭취해야 하는 영의 양식입니다. 말씀을 내가 양식으로 먹고 실천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과 나눈 것이 교제입니다. 그렇게 해야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영적으로 죽은 자가 영적 새 생명을 얻는 양식이고, 성도가 영적건강을 유지하는 음식이며, 하나님의 작품인 인간과 만물의 유일한 설명서이며. 거듭난 성도가 어떻게 생활하며 지상의 교회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가에 대한 유일한 지침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없는 가르침을 전해서는 안되며, 성적이지 않는 용어를 사용해서도 안되며, 성경에 없는 방법을 동원하여 성과를 목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말씀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말씀을 경외하는 자세를 가져야 개인의 믿음이나 지역모임들이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사66:2)
그리스도인이 진리의 말씀 앞에서 떨지 않으면 진리적인 타락은 반드시 오게 되고, 도덕적, 물질적 타락은 이어서 오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는 자신의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부터 진리적인 거룩과 도덕적인 거룩 위에서 겸손하게, 세속에 물들지 않고 주님을 섬기다가 주님을 만 뵙고 싶습니다. ♠
필자는 현재 부산 북부교회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다..
필자와는 현재의 교회로 옮기기전 4년동안 북부교회에서 주님을 함께 섬겼습니다..삶에서 또 인격에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사시고 계시며 어려운 생활가운데서도 교회의 도움을 마다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출판사발행 월간지 횃불 2005.4 45쪽~48쪽;- 글쓴이 : 김용규)
지역교회의 인도자들에 대한 호칭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지역교회 인도자들은 모임의 성도들을 양육하고, 본을 보이고, 모임이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바로잡는 일을 맡은 형제들입니다.
그러므로 모임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인도자의 역할과 호칭과 주님을 섬기는 자세가 성경적인가를 늘 확인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자가 잘 못되면 모임 전체는 혼돈에 빠지게 되고 이를 바로잡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장로 형제들은 주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돌보게 하기 위해 성령께서 세우신 모임의 인도자들이므로 디도서 3장과 디모데전서 3장에 그 자질과 기준을 엄격하게 정해놓으셨습니다.
두 가지 가정적인 조건(한 아내의 남편, 믿는 자녀와 복종하는 자녀), 한가지 진리적인 조건(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열세 가지 인격적인 조건(책망할 것이 없고...)을 갖춘 자라야 장로의 일에 적임자라는 것입니다. 모든 조건에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장로는 말씀을 분별하는 것과 인격에 성도들의 모본이 되어야 성도들이 진심으로 존경하고 인정하게 될 것이며, 자신이 늘 자신을 살피되 성경에서 벗어난 부분이 없는가를 검토하여 주님을 섬기는 자세를 가진 형제라야 이 일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로 형제들은 자신을 일컫는 호칭부터 성경적으로 호칭되고 있는가를 검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물의 이름은 그 존재의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창2:19).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행15:23).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니"(행20: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5:17)
"너희 중에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도 함께 장로된 자요"(벧전5:1)
"장로는........."(요이1:1,요삼1:1)
인용한 모든 성구는 모임의 인도자들을 "장로"로 호칭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과 에베소서 4장에는 "감독\"과 "목자"라는 단어로 기록되었지만 이 용어는 장로들의 역할, 즉 일에 대한 용어로 분별됩니다.
일반적으로 인도자들은 장로 형제로 호칭된 것이 분명하며, 개인적으로 이름을 사용할 때는 형제라는 단어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벧후3:15)
일시적으로 존재했던 사도의 직임과 장로의 직임을 같이 맡았던 베드로와 바울도 서로 "형제"라고 호칭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전국에 있는 지역모임에 사역자, 목회자라는 단어를 모임에서 사용하는 것을 지면과 글을 통해 자주 듣게 되고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섬기는 일(사역)을 한다거나, 성도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는 의미가 아닌 어떤 형제 일인에게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분별됩니다.
어떤 모임에서는 장로와 사역자가 다른 직임인 것처럼 사용하기도 하고, 사역자를 모집하고 세웠다는 서신을 보내는 경우도 있으며, 또 어떤 모임의 한 형제를 목회자라고 본인도 말하고 다른 성도들도 인정해주는 경우도 있으며, 또 사역자에게 보고나 상담을 했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됩니다.
은사의 종류가 기록된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장, 에베소서 4 장 어디에도 사역자나 목회자라는 은사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 국가와 모든 단체와 종교계에서는 지위와 신분과 성직자와 평신도의 계단이 있습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과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들의 수고를 알아주고 존경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지만 형제와 형제 사이에 간격이나 계단이 생길 위험이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한 모임에서 직업을 가지지 않고 말씀에 수고하는 형제님을 사역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 장로와 다른 장로를 차별하는 호칭이요, 복수 장로의 진리가 흐려지고, 말씀 전하는 다른 은사자가 일어나는 것을 제한 하는 제도가 되어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지역모임의 장로들 중에 직장을 놓고 안 놓는 것은 개인적인 분별과 건강문제와 모임의 형편을 따라서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직장을 놓고 섬기는 장로 형제님도 그 지역교회 다른 장로 형제님 중 한 분일 뿐이지 특별한 형제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지역모임이 다른 지역모임의 형제를 초청해서 말씀을 전하는 장로로 세우는 것보다 그 지역모임의 성도들의 모든 사정을 잘 아는 그 지역모임의 형제님들 중에서 장로들이 세워지도록 기도 드리는 것이 합당한 방법이라고 분별됩니다. 혹시(여러 사정으로)연약한 지역모임을 돕기 위해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공개할 필요없이 조용히 가서 연약한 모임 성도들과 동역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경우 개인적인 인간관계에 따라 오가면 안 됩니다.
사역자 동역자라는 단어는 고린도전서 3장5~9절에 한번씩 기록되었습니다. 아볼로와 바을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한 자(사역자)들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자로 부릴 사(使). 부릴 역(役), 사람 자(者)입니다.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겼음이라"(딤전1:12)고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충성된 바울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일을 수행하는 자가 사역자입니다.
주님께서 일을 맡기시는 모집 기준에 사용 기준을 보면 반드시 충성된 자에게 맡기십니다. 맡기면 충성하겠다는 것은 순서가 아닙니다. 그의 충성이 증명된 자에게 일이 맡겨지는 것입니다.
충성이란 "책임감이 강하고 근면, 성실하다"는 뜻에 온전히 복종하는"이라는 뜻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역은 단순히 일한다는 뜻이지 은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는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수17:13), 여기에 기록된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사역자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군대에서 \"사역병 집합\"하면 일하는 병사들이 일에 맞는 도구를 들고 집합해서 지시하는 일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일하다가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사역은 넓은 의미에서 모든 성도들의 여러 분야에서 맡은 은사를 따라 교회에 덕이 되게 모든 일(사역)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 전하는 것 만 중요한 사역이고 다른 일은 중요한 사역이 아니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중요한 은사, 덜 중요한 은사는 없습니다. 은사의 종류와 상급은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모임의 장로 형제님들은 자신을 위해 사는 시간보다 주님을 위해, 성도들을 위해 밤낮 기도하고 수고하는 그 모든 수고를 성도들이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어느 지역교회의 결혼식과 장례식에 참석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멀리서 온 모임을 인도하는 형제님들께 돌아가실 때 교통비나 하라고 봉투에 물질을 넣어 주셨습니다. 저는 받지 않으려고 거절했지만 계속 권하셔서 주님의 뜻으로 알고 받았습니다. 가는 길에 함께 동행하신 성도님들께 "주님께서 주신 것이니 오늘 돌아가다 저녁이나 맛있게 먹고 갑시다"하고 말씀 드렸습니다. 저의 말을 들으신 어떤 형제님께서 "참석한 모든 사역자들에게 주시던데요, 저도 받았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형제님께서 일인사역자(직장을 놓고 주님의 일을 하는)라는 의미로 말씀하시는 것 같이 들려서 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혹시 다른 의미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조심스러워서 그 문제를 교제해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고전14:29) 말씀을 들을 때나 책자를 읽을 때 그 용어가 성경적인가를 분별하면서 듣고 읽어야 합니다. 또 모임의 장로 형제님들은 지역모임에서 가르쳐졌고 잘 아는 진리일지라 할 지라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가르쳐야 모임이 진리 위에 든든히 설 수 있고 성도들의 영적 건강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성경은 가르치기 위해서 보는 교과서가 압니다. 우리가 섭취해야 하는 영의 양식입니다. 말씀을 내가 양식으로 먹고 실천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과 나눈 것이 교제입니다. 그렇게 해야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영적으로 죽은 자가 영적 새 생명을 얻는 양식이고, 성도가 영적건강을 유지하는 음식이며, 하나님의 작품인 인간과 만물의 유일한 설명서이며. 거듭난 성도가 어떻게 생활하며 지상의 교회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가에 대한 유일한 지침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없는 가르침을 전해서는 안되며, 성적이지 않는 용어를 사용해서도 안되며, 성경에 없는 방법을 동원하여 성과를 목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말씀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말씀을 경외하는 자세를 가져야 개인의 믿음이나 지역모임들이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사66:2)
그리스도인이 진리의 말씀 앞에서 떨지 않으면 진리적인 타락은 반드시 오게 되고, 도덕적, 물질적 타락은 이어서 오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는 자신의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부터 진리적인 거룩과 도덕적인 거룩 위에서 겸손하게, 세속에 물들지 않고 주님을 섬기다가 주님을 만 뵙고 싶습니다. ♠
필자는 현재 부산 북부교회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다..
필자와는 현재의 교회로 옮기기전 4년동안 북부교회에서 주님을 함께 섬겼습니다..삶에서 또 인격에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사시고 계시며 어려운 생활가운데서도 교회의 도움을 마다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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