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프랑스 담요

작성자한광기|작성시간26.06.10|조회수46 목록 댓글 0

에어프랑스 담요

 

 

 

 

1989년부터 지금 2026년까지 40년 가까운 날들을 유럽에서 지내며 또 한국과 터키, 필리핀을 오가며 살아왔습니다.

벨기에와 영국에서의 일과 공부, 그리고 그러는 동안 유럽을 70바퀴 정도 둘러보았습니다. 1989년 7월 어느 여름날, 김포공항을 떠나는 에어프랑스 Air France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일본 나리타 Narita와 알래스카 Alaska 앵커리지 Anchorage, 그리고 파리 Paris를 거쳐 벨기에 브뤼셀 Brussels의 자반템 Zaventem 공항까지 날아가는 먼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제가 탄 비행기에는 한국을 떠나 벨기에로 입양되어가는 어린아이들이 스무 명 남짓 있었습니다. 비행하는 동안 내내 마음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버림받아 불행한 아이들인가, 아니면 그나마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되어 다행스러운 것인가 하는 혼란스러운 마음이 내내 저를 짓눌렀습니다. 우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비행기 안이 다소 소란스럽다가도 아이들이 잠들면 이내 적막 속으로 빠져들기를 되풀이하며 비행기는 먼 하늘로 날아만 갔습니다.

만 24시간에 가까운 비행을 마치고 브뤼셀에 도착하니 입국장이 시끌벅적했습니다. 많은 벨기에 가족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마중 나와서 환호성 질렀습니다. 저렇게 아이들이 반갑고 사랑스러울까, 저 모습이 과연 진심일까, 혹시 아이들을 괴롭게 하지는 않을까, 저 아이들이 낯선 가족들 속에서 정말 행복하게 잘 자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혼란스럽게 교차하며 눈 앞을 지나갑니다.

기내에서부터 우연히 아이들을 돕다가 공항에서 벨기에 입양기관의 관계자들, 입양 가족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간 한국 입양기관의 사람들을 통역하며 돕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벨기에 입양기관의 책임자인 구스타브 Gustave씨의 집으로 초대되어 며칠을 함께 지내기도 했는데, 이분 역시 자신의 두 자녀와 함께 한국에서 입양한 삼 남매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한국으로부터 입양한 큰딸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랍니다.

벨기에로 입양되는 아이들을 포함해서 유럽의 여러 나라, 덴마크나 스웨덴 등으로 입양되는 여러 나라의 아이들 가운데 다 행복하면 좋겠으나 불행히도 잘 못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특히 1990년대 전후로 입양아를 지원하는 정부 예산이 커서 어떤 이들은 아프리카로부터 자신의 먼 친척 아이들까지 여러 명 데려와 키우며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받아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즉 편법으로 입양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입양의 가장 무서운 폐해는 입양 부모들이 위장으로 입양해서 아이들을 범죄단체에 큰 돈을 받고 되팔아버리는데 그 아이들이 범죄자로, 매춘부로 길러지게 되는 경우입니다. 법을 교묘하게 악용해서 이처럼 끔찍한 짓을 저지릅니다. 정말 저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어느 갓난아기를 감쌌던 담요를 얻었습니다. 그 담요를 40년 가까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도 잘 자라서 벌써 40대가 되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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