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아우리흐 Aurich.
제가 지구상에서 정말 제 삶을 그곳에다 다 쏟아붓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대구 동산동인데 제가 태어난 곳입니다.
저는 대구 동산 기독병원, 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사택에서 태어나 그곳, 정말 꽃이 아름답게 만발한 그곳에서 꿈결같이 찬란한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못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 많던 꽃나무와 과일나무들을 베어내고, 짙푸르던 잔디밭을 다 걷어내고 콘크리트를 덮어 흉한 주차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 제 지난날의 아름답기만 하던 동산을 다 부수고 파괴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이제 제 아련한 지난 추억 속에만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곳은 그리스 옛 고린도 산성입니다.
지금은 2,000년 전의 지난날을 뒤로하고 쓸쓸한 돌무더기만 남았지만 욕심 같아서는 2,000년 전 옛 집터에 다시 벽돌을 얹어 집을 지어 살고만 싶습니다.
그곳 돌무더기 옛 집터를 지나 산성으로 오르는 길을 걷노라면 세월은 그렇게도 흘러가 모두를 떠나갔으나 아직도 그 옛날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눈물겨운 기도 소리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뜨거운 찬송이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나머지 한 곳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Stuttgart에서 조금 떨어진 평화로운 전원 마을입니다.
‘아우리흐 Aurich’
영국에서 함께 공부한 독일 형제의 곧프리드 Gottfried Scheuermann의 집에 초대받아 갔다가 그만 그곳이 저의 제2의 고향이 되어버렸습니다.
1994년 이후 시간을 내어 자주 방문하여 곧프리드의 집이나 그의 부모님이신 한스 Hans와 마리아 Maria Scheuermann의 시골 농가에도 한 달씩 머물며 트랙터를 몰아 넓은 농장도 일구고 함께 농사도 짓곤 했습니다.
늘 제가 껴안고 다니던 곧프리드의 이 4남매도 이제 모두 커서 결혼도 하여 아기의 엄마가 되고 좋은 직장인, 독일군 장교, 응급구조사로 일하고 있기도 합니다.
늘 그립던 한스와 마리아 부모님은 몇 년 전에 모두 천국으로 떠나셨고 웃음 가득하던 곧프리드의 집은 이제 그의 아름다운 아내인 마티나 Martina와 둘이서 지내고 있고 제가 자주 머물던 시골 농가는 부모님께서 떠나신 후 다른 사람에게 팔렸습니다.
지난해에(2025년) 바쁜 일정을 미루고 달려가 커다란 기쁨 가운데 그들을 만났는데 한스 아버지와 마리아 어머니의 몸이 묻힌 마을 공동묘지에 가서 서니 그저 이름 모르는 눈물이 그리움이라는 불치병으로 눈 앞을 가렸습니다.
제가 그 어느 곳 보다 아우리흐를 사랑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1997년 어느 여름날에도 그곳 농가 다락방에서 머물 때 깊은 밤에 비몽사몽 간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찾아오셔서 그 놀라우신 음성을 들려주시며 저를 만나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우리흐에 좋은 집을 하나 지어 선교센터로 사용하며 한국의 많은 사람을 초대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공유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픈 뜨거운 소망이 제 가슴속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리워하는 곳이 두 곳 더 있는데 소중한 독일 가족인 프레드릭 Friedrich Mielke과 함께 지내던 Bickenbach와 터키 가족이 살고 있는 430만 평의 광활한 해바라기 농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