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하여 - 예수님의 교실 기도모임 / 2003년 6월 21일

작성자이은진|작성시간05.09.09|조회수51 목록 댓글 0
‘결혼’에 대하여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건, 사물, 대상 등 모든 것에 뚜렷한 정체성을 갖는 것은 참 중요하다. 결혼에 대하여서도 올바른 시각을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만나 잃어버린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더욱 강력하게 이루어 드리는 것이다.
그러한 뚜렷한 시각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혼이 아니다.

왜곡된 결혼관과 뚜렷한 결혼관의 차이는 분명하다.
왜곡된 결혼관을 갖고 있으면 왜곡된 배우자를 갖게 될 수밖에 없고 올바른 결혼관을 갖고 있으면 올바른 배우자를 만날 수 밖에 없다.
한국 남성들 사이에는 가부장적이고 남존여비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한 남자들은 그에 맞는 배우자를 만나 군림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는 모두 하나님 앞에 고유하고 존귀한 존재이며 다만 가정에서의 그 기능과 역할이 다를 뿐이다.
본질적이고 성경적인 결혼관 속에는 배우자를 생각하는 창조적 가치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결혼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들을 나누었는데 이제는 결혼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나누어보자.
대개 남자들은 중학생시절부터 성 욕구를 느끼기 시작하는데 그 이후로 항상 성을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성은 결혼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필수불가결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에게 성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심어준다. ‘결혼 = 성’이라는 가치관을 심어준다.
그러나 성은 결혼을 윤택하게 하는 것일 수는 있으나 절대적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성이 결혼에 있어 무시될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온통 성에 미쳐있다.
음란으로 가득하다.
이런 세상 속에서도 존재적 가치로 아내를 생각한다면 아내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면서 동역자요 지체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소유적 가치로 남편과 아내를 생각한다면 음란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조금 더 실제적으로 얘기한다면 결혼을 해서 성 결합을 가질 때는 딱 한 가지 ‘네가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대접하라’는 성경구절을 적용하라.
내가 상대를 통해 기쁨을 느끼고자 하는 대로 상대를 먼저 대접해야 한다.
아내는 남편의 쾌락을 충족시켜주는 일방적 도구가 아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무시할 수 없는 실제적인 문제가 경제적 문제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하셨다.
오늘날 시골교회에 가면 경제적인 문제로 고난 받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에서는 물질이 너무 풍족하여 하나님을 모른다 하지 않고 가난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적당한 재물을 달라 구해야 한다.
적당한 재물이란 우리에게 1000억이 있어도 그것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지혜롭게 쓸 수 있다면 그것이 적당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1만원이 있어도 그것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적당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발생하는 관계성의 문제가 있다.
결혼은 부부가 하는 것이지만 그 부모나 형제가 별개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관계들을 잘 만들어 가는 것이 또한 결혼한 부부의 역할이다.

그리고 자녀의 문제가 있다.
자녀는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키는 노리개가 아니다.
자녀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영혼이므로 자녀에 대하여 청지기적인 사명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실제적인 면에서 본질적, 성경적인 결혼관과 배우자관을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즉 구체적으로는 결혼을 생각할 때 부딪히게 되는 가치관의 문제, 성적인 문제, 경제적 문제, 사회 안에서의 문제, 교회 안에서의 문제 등을 잘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혼을 하나님 앞에 잘 이루어 나간다면 우리 안에 성령 충만의 열매가 맺어질 것이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어떤 열매가 맺히는가에 따라 얼마나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하느냐를 알 수 있다. 성령 충만한 열매를 맺는 창조적 결혼생활을 준비하기 바란다.

그런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가 죽어야 한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둘 중 하나가 죽어야 산다.
육이 죽으면 영이 살고 영이 죽으면 육이 산다.
양자택일이다.
육신대로 살려는 고집을 버려야만 영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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