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복음 3장 20-35절
예수님과 베엘제불 (마태12,22-32 ; 루카11,14-23 ; 루카12,10)
20 예수님께서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참가족 (마태12,46-50 ; 루카8,19-21)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과 친척들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는 기사가 20-21절과 31-35절에 따로따로 적혀 있으나 본디는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상황 서술로 시작하여(20-21+31-33절) 예수님의 말씀으로 끝맺기 때문에(34-35절) 전형적인 상황어다. 그런데 아마도 어느 전승자가 이 상황어를 양분하고 그 사이에 삽입문(22-30절)을 집어넣었을 것이다.
20절: 예수님께서 집으로 가셨다.
여기 집은 베드로의 집일 것이다.
21절 : 친척
여기 친척들은 어머니와 형제들이다(31절).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고향으로 데려가고자 몰려왔다.
21절: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고향, 친척, 직업을 저버리고 정처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신 때문에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으신 것이다. 사실 형제들과(요한 7,5) 동향인들은(마르 6,1-6a) 그분을 믿지 않았다.
22절: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두가지 모함을 구분한다. 첫째는 예수께 베엘제불이 붙었다고 한다(22a절), 베엘제불은 히브리어 복합명사로서(바알+제불), 직역하면 “집주인”이란 뜻인데(마태 10,25) 이교도 신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30절에서 베엘제불을 일컬어 “더러운 영”이라 하니 그는 귀신들의 두목이 아니라 귀신의 일종인 셈이다. 사실 예수님은 귀신이 들렸다는 모함을 종종 받으셨다(요한 7,20; 8,48; 10,20).
22절: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
둘째 모함은 예수께서 귀신들을 축출한 사실을 악으적으로 해석한 것이다(22b절).
이 모함과 거기에 대한 답변이 어록에 더 잘 전해 오는데(루카 11,14-15.17a.19=마태 12,22-24.25a.27), 루카에 따라 옮기면 이렇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셨는데 그는 벙어리 귀신이었다. 귀신이 나가자 벙어리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군중은 놀랐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그는 귀신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하였다. .. 그러자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만일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면 여러분의 자식들은 누구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바로 그들이 여러분의 심판관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인용한 어록의 기사는 매우 자연스럽다. 오직, 베엘제불을 “귀신 두목”이라 한 것만은 뜻밖인데 이는 어록 작가가 귀신 두목 사탄과 베엘제불을 동일시한 결과일 것이다.
23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22-30절에는 다섯 가지 전승요소가 집성되어 있는데 23-26절은 22a.b에 이어 셋째 전승요소다. 그런데 이것을 “비유”라 하나 매우 간결하기 때문에 차라리 상징어라 하겠다. 나라든 집안이든 갈라지면 망하게 마련이라는 상징어(24-25절)를 사탄의 조직에 적용한다(23.26절). 예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분이 귀신을 축출한 사실을 악의적으로 풀이한 데 대한 또 한 가지 답변임에 틀림없다. 같은 상징어가 어록에도 전해 온다(마태 12,25=루카 11,17).
27절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넷째 전승요소인데 상징어만 있고 그 뜻을 밝히는 설명어가 없다. 그러나 당신의 구마행위를 두고 하신 말씀임에 틀림없다. 상징어의 뜻인즉, 더 힘센 이(예수)가 덜 힘센 이(사탄 혹은 귀신)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그 세간(부마자)을 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해설은 비교점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우의적 해설이요, 따라서 이 상징어는 일종의 우화라 하겠다.
28-29절에는 다섯째 전승요소가 적혀 있다. 본디 앞뒤 문맥과 관계없이 전해 온 이 단절어는 직역하면 “아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로 시작된다. 유대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남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아멘이라 응답한다. 그런데 예수님만은 유별나게 당신 말씀 첫머리에 아멘(공관복음서) 혹은 아멘 아멘(요한복음서)이라 하시는 때가 있다. 그분의 독창적 어법에는 당신의 말씀이야말로 참되다는 확신이 번뜩인다. 그렇다고 해서 아멘으로 시작되는 말씀은 죄다 예수 친히 발설하신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 신도들이 자기네가 만든 말을 예수님의 말씀인 양 내세우면서 그 앞에다 아멘을 덧붙인 경우도 있다.
28-29절의 단절어는 그 유래와 뜻을 밝히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우선 마르코복음사가가 그 단절어를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살펴볼 수밖에 없다. 앞뒤 문맥을 참작할 때 “성령에 대해서 독성의 말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귀신이 붙었다느니(22a.30절) 귀신 두목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느니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람은 결국 그분에게 작용하시는 성령을 모독하는 독성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단절어의 변체가 어록에도 전해 오는데(마태 12,32=루카 12,10) 여기서는 그 뜻이 한결 더 분명히 드러난다. 우선 루카 12,10을 따라서 어록의 말씀을 소개하면 이렇다. “누구든지 인자에 대해서 말을 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대해서 독성의 말을 하는 사람은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 뜻인즉 지난날 예수님이 이승에서 활약하실 때에 그분을 불신한 죄조차 용서받을 수 있지만 이제 성령이 작용하는 초대교회의 선포마저 불신한다면 용서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 시대와 성령 시대(교회 시대)를 구별하면서 전자보다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말이겠다.
30절: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전승요소를 수집해 놓은 집성문(22-30절)은 “그는 베엘제불에 사로 잡혔다”(22a)로 시작하여 “그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했다”(30절)로 끝맺는다.
31-35절: 본디 20-21절과 직결되었으리라
31절:
친형제들인지 촌수가 먼 형제들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다. 6,3절에도 형제들과 자매들이 나오는데 역시 친동기인지 아닌지 설명하지 않는다.
34절:
핏줄로 맺어진 혈연관계가 중요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영적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34절의 말씀은 우선 제자들을 두고 하신 것으로 사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족을 멀리할 것을 여러 번 촉구하셨다. 결혼생활을 생각하지 말고(마태 19,12), 당신보다 가족을 앞세우지도 말며(마태 10,37=루카 14,26), 아버지 장례에도 참석하지 말고(마태 8,21-22=루카 9,59-60), 식구들에게 작별인사하러 가지도 말라고 하셨다(루카 9,61-62). 그리고 제자들은 그런 요구를 따랐다(마르 10,28-30). 그리하여 예수님을 중심으로 영적 가족을 형성했다.
35절:
제자들은 영적 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자기 가족을 떠나 예수를 따라야만 했다. 그런데 35절에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고 다만 “하느님의 뜻을 행하면” 된다고 한다(마태 7,21; 요한 7,17; 참조 마르 14,36; 마태 6,10), 하느님의 뜻은 구체적으로 사랑의 이중계명에 드러난다. 35절은 신도들이 영적 가족의 일원이 되려면 지켜야 할 기준이겠는데 아마도 초대교회에서 그런 기준을 정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