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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수의 강

궁극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요소는?​

작성자은혜|작성시간26.06.14|조회수31 목록 댓글 0
디베랴 바닷가에서 시몬 베드로에게 떡과 생선을 먹이시는 예수

우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 주변

사람(내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로 인하여 속 끓어 한다.

가깝게는 가족, 멀게는 직장동료나 친구 그리고 이 땅에

나 아닌 모든 사람들이 그 대상일수 있다.

우린 나와 같지 않은.. 더 나아가 내 맘에 안 드는 숫한

사람들로 인하여 상처를 받고 실망을 하고 때론

깊은 상실감과 배신감에 빠져 헤매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경제적인 이유나 건강의 문제보다

이 부분 때문에 인생의 맛을 잃고 생산적이지 않은 일에

시간을 허비할 때가 많다.

'도대체 왜 저모양일까?'

'어쩜 저렇게 못났을까?'

'왜 저렇게 답답할까?' 등등..

우리의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할 때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기도 하며,

교회를 옮기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고, 회사를 옮겨보기도

하고 이혼이나 별거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만큼 이 문제는 우리의 일상에서

중요하면서 핵심적인 요소를 차지 하고 있다.

우리는 적어도 내 맘을 거스리거나 나를 시험(?)들게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도 하고 인내하기도 하고,

야단치기도 하고, 때론 무섭게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오히려 만세반석이다.

도무지 변화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관계의 장애는 우리가 영적으로 비상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치명적인 염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놓치는 것이 있다.

사람은 결코 잔소리나 교육이나 몽둥이나

세월이나 설교로는 변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것은 좋은 교훈 정도가 아니라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간과한 채 끝없이 잔소리하고

몽둥이질을 하고 가르치려 안간힘을 쏟는다.

그러다 지치면 세월이 약이라면서

포기하고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다고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

유명한 설교로도 사람은

별로 나아지거나 성숙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늘 속이 상하고 썩는다.

기막힌 설교를 들었는데도 괴팍하고 엉뚱한 사람은

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사람은 감동과 사랑으로만 변화되고 달라진다.

다시 말해서 내가 품으면 달라지고 변화되기도 한다.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세상은 지금 온통 사랑에 굶주려 난리이다.

내 주변에서 나에게 투덜거리거나 나를 찌르고 있는 숫한

사람들도 알고 보면 내 사랑에 목말라 보채는 중이다.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알아 달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보챈다.

그러나 배만 부르면 놀거나 잠을 잔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살도록 지음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난리법석이다.

 

지금 당신의 귓전에 들려오는 무수한 소리들과

신음들과 외침의 공통점은 사랑의 갈증 때문이다.

자신을 알아주고 사랑해 달라는 함성이다.

우는 아이를 때려 보라.

가르쳐 보라.

잔소리 해보라.

절대 안 그친다.

그러나 우는 아이를 그치게 하는 쉽고 유일한 방법이 있다.

젖을 물리면 된다.

마찬가지이다.

당신 곁에서 시시각각으로 징징거리는 사람에게

잔소리하지 말라.

설교하지 말라.

지적도 하지 말라.

몽둥이도 들지 말라.

 

절대로 안 그친다.

그렇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더러운 집 앞의 골목을 무엇으로

깨끗이 청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몽둥이인가?

아니다.

부드러운 빗자루다.

곱고 부드러운 빗자루가 더러운 집 앞을 깨끗하게

만들지 딱딱한 몽둥이로는 청소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철옹성과 같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움직이는 것은 단단한 매나 날카로운 지적이나

예리한 설교가 아니라 부드럽게

사랑해주고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이다.

'도대체 왜 저럴까?'

그것은 율법이다.

'오죽하면 저럴까?'

'그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잘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세상이 오히려 시끄럽고 어둡다.

너무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넘침으로

우리의 삶의 터전이 지옥으로 변할 때가 많다.

오히려 좀 부족한 사람들 때문에

그나마 가정과 교회와 조직이 천국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있는

엘리야와 같은 처지이다.

위로와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주변에는 온통 지적과 잔소리로 충만하신

시어머니(?)들과 바리새인(?)들로 충만하다.

지금 주님이 요구하시는 성경적 리더십은

친정어머니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용납하고 품어주고 기다려 주고 못난

자식을 더 보듬고 아끼는 친정엄마의 푸근한 사랑 말이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후예들은 기가 막히게

선악 간에 판단하고 비판하는 일에 전문가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사람들은 선악과 먹은 사람이 아니라

생명과 먹은 사람들이다.

생명은 사랑이다.

생명은 품는 것이다.

이 사랑의 모범이 주님이시다.

주님은 배신자 베드로를 책망과 지적으로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사랑과 감동으로 변화시켰고

순교의 자리까지 가게 만드셨다.

이게 바로 천국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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