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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이슈

[스크랩] 봄이 오는 소리 - 2

작성자백록담|작성시간18.02.24|조회수279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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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물리적 변화도 필요하겠으며 거기에 덧붙여 본다면 인문학적인 고전의 탐구를 통해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좁은 우물 안 디지털방식의 삶이 아니라 드넓은 평야의 전망도 바라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삶의 여유도 필요한 시절이라 생각됩니다. 인문학적인 개념의 탐구에서 벗어나 개념의 승화를 통해 여유로움과 즐김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고전이라고 일컫는 모든 책속에는 세상의 원인적인 시각들로 넘쳐납니다. 결과를 가지고 재단하는 어리석음이 거기에는 없습니다. 현상을 불러온 조그마한 원인에서 광야의 넓은 전망을 보여줍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답답하고 속 좁은 세상이 아니라 평야지대 저 멀리서 불어오는 넓고도 시원한 바람입니다.

 

 

서구는 과학을 디지털로 전환시켜가는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거기에 덧붙여 인문적인 시원한 바람을 불게 해줌으로서 중화시키는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표절과 모방의 삶에서는 그러한 능력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오직 도용에서의 부작용에 걸려 넘어지는 젊은이들이 넘쳐날 뿐입니다. 그들의 고통과 답답한 중독의 삶은 세상과 단판 지으려 하는 심성들을 키워줍니다. 세상을 단순하게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려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키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중독의 고통을 내려놓아보려 애씁니다. 그런 결과론적 결실들로 우리의 삶은 멍들어가고 있으나 오직 욕망에 들뜬 사회는 애써 외면하며 사탕만을 물려주려 하기에 바쁩니다. 그런 사탕이 돈이 되기도 하겠으나 질시의 대상을 선정해 질타하기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공짜가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그처럼 고통 받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결과론적 위로를 주기 위한 사탕발림이라 생각됩니다. 결과론적 시각으로는 세상의 원인을 향한 노력을 기울일 수 없는 한계를 가집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그처럼 결과론의 현실과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원망이 모두의 가슴속에 파고들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과거를 들추어내서 현실의 법과 정서의 잣대로 겨눌 때 거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는 과거의 죄인으로 현실을 살아갑니다. 그것을 우리는 운명이라는 말로 덮어왔을 따름입니다. 부모는 과거로서의 자식에게 죄인의 심성이 저절로 커져갑니다. 부모사랑이란 그런 시각의 누적이라 생각됩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지 치사랑은 없다고도 합니다. 사람의 본성입니다. 과거의 죄인이라는 무의식적 마음들이 그러한 심성을 키워줍니다. 물론 그런 의식이 전혀 없는 분들도 많습니다. 자식을 원망하고 질타하는 분들이라 하겠습니다. 자식을 자신의 알량한 개념으로 키워 보려하는 분들입니다. 자연스러운 삶을 회피하고 자신이 설계한 개념으로 자식의 교육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두다 디지털기술의 혜택에 빠져 자연으로서의 인성에의 접근을 차단하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연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디지털기술을 이용하고 사용하는 것에서 그쳐야겠으나 거기에 현실을 적용시키려 집착하며 살아가려할 때에 고통은 가중된다 하겠습니다.

 

 

사회적 분노는 그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디지털적인 구분으로 볼 때에 당연합니다. 어느 순간 폭발합니다. 거기에 원인적인 시각은 없습니다. 조그마한 과거의 잘못도 현실의 잣대로 규명하면 누구나 죄인이겠으나 디지털중독자들에게는 분노를 일으켜줄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됩니다. 거기에 자신에 대한 이해나 성찰은 없으며 오직 디지털기술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돌진할 뿐입니다.

 

 

인간의 삶은 그처럼 평준화되지 못함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디지털화시킬 수 없습니다. 디지털기술은 단 하나의 기술로서 세상을 평준화시켜버린 괴물입니다. 거기에 변화는 잡음이며 장애입니다. 군더더기로서의 덤은 전혀 불필요한 장애입니다. 정서로서의 정감이나 따듯함은 디지털기술의 가장 커다란 장애물입니다. 그것을 극복해야만 디지털기술이 성립됩니다. 잡음을 완벽하게 제거해야만 디지털기술의 유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없애려 해왔습니다.

 

 

완벽과 절대가 현실을 휘어잡고 모두는 거기에 종속될 때에 디지털은 기술의 완성을 맛보며 즐거워합니다. 완벽한 판단과 결단을 통해 누구든지 법망에 걸리면 철저하게 짓밟아버려야 합니다. 거기에는 남자로서의 성()도 여자로서의 다정함도 필요 없습니다. 모두는 인간이라는 디지털세계의 구조물로 전락합니다. 너도나도 똑같은 생각으로 똑같이 살아가야합니다. 낙오자나 이탈자는 죄를 물어야하는 대상으로 전환됩니다. 잘잘못을 따지고 오염과 잡음을 모두 제거해 깨끗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기술의 덕분으로 모두는 깨끗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며 디지털기술의 도움으로 모두는 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신합니다.

 

 

단 한 번의 터치로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는 능력자들이 되었습니다. 아무런 노력도 요구하지 않는 디지털기술시대에 젊음은 접촉touch 자체가 노력이 되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과 땀 흘림을 통한 성취의 기쁨이나 달성의 뿌듯함은 그들에게는 잡음이자 쓸데없는 에너지의 소비로 전락할 뿐입니다. 편리는 디지털기술의 좌우명입니다. 편리를 위해 그들은 존재의 이유를 가집니다. 그런 세상에서 불편함이라는 죄목은 걸리면 바로 죽음입니다. 조그마한 잘못도 그들의 시각에서는 사회적 사형감입니다.

 

사람의 삶은 스핑크스의 질문에 답하는 오이디푸스의 답안에서도 나왔듯이 절대적 변화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세상에서는 그러한 변화는 절대적으로 없어져야 할 요소일 뿐입니다. 모든 삶이 디지털기술로 통합되고 평준화되었기에 그렇습니다. 디지털기술의 가장 큰 단점이자 죄악은 절대적 편리성입니다. 모든 문명은 편리함을 기반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절대적 편리함은 21세기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편리함에 갇혀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저울추는 균형입니다. 그러한 편리함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몰고 오며 그것이 대중적인 소요로서 나타날 때에 세상은 혼란을 가져오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아침에는 네발이고 낮에는 두발이며 저녁에는 세발인 것이 사람의 운명입니다. 젊음으로 살다가 갈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디지털기술에서는 그런 변화가 없음에 의해 디지털입니다. 오직 지시한 것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너무나도 편리하기에 우리 모두는 기술에 몰입합니다. 몰입에는 주변을 바라볼 시각이 없습니다. 여유로움은 디지털세계에서 딜레이 delay라는 지연을 몰고 오는 장애입니다. 반드시 없애야할 요소입니다. 규격화되지 못하는 게으른 편안함을 디지털세계에서는 가장 싫어합니다. 밤낮의 구분을 없애버립니다. 24시 편의제공이 디지털기술의 장점입니다. 잠자는 시간은 게으름입니다. 에너지 충전이고 보충은 필요 없습니다. 오직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 사명이며 절대적 요구사항입니다.

 

 

과거를 단죄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디지털 운명 앞에 모두는 기술이라는 편리함에 고개속이며 점점 중독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후회는 없애야만 하는 개념입니다. 과거는 재단하고 평가하고 비평하며 잘못을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밝혀냄으로서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여깁니다. 자신들이 스스로 노력해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단죄함으로써 편리하게 세상을 만들어가려 합니다. 한 번의 터치로 세상을 바꾸려는 편리성이 거기에는 가득합니다. 개념의 무서움은 그처럼 사람을 기계화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구와 달리 우리는 개념의 고통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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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겨울 바다와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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