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오늘의이슈

[스크랩] 소용돌이 사회 - 2

작성자백록담|작성시간18.07.25|조회수42 목록 댓글 0




적폐 청산

 

 

차별을 줄이려는 관대함으로 인간적인 동정심을 자극하는 감상 어린 시각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될 때에 우리의 삶이 나아지고 정치사회가 진보해간다고 여길 근거들은 없습니다. 그런 감성적 세계를 옹호하려는 생각들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도록 확산시키기에 열중한다고 해서 사회가 온정(溫情)이 넘치는 사회로 바뀌지 않습니다. 경쟁을 통한 질서를 기준으로 하지 온정의 감성을 기준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현상에 덧붙이는 도덕적 당위로서의 생각들일 뿐입니다. 당위로서의 인간성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냉정함만이 자유롭게 살아갈 여건(與件)입니다.

 

 

뜨거운 용광로 앞에서 땀 흘리는 인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시원한 얼음물과 찬바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을 함께하는 동지적 관계는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가자는 착각을 불러와 세계 평화주의를 부르짖겠으나 현실의 인간 사회는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순수와 오염의 차별처럼 서로 다른 세상입니다. 꿈과 이상은 내 몫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억지로 남에게 강요하는 꼴입니다. 북극곰이 열대에서 살 수 없고 코끼리가 북극에서 살 수 없습니다. 현실을 벗어난 이상사회를 꿈꾸어보자고 주장할수록 세상은 거짓과 사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신으로 향해야 할 의지의 경로를 사회로 돌리려고 할 때에 거기에는 또 다른 강제와 차별을 외치는 독재의 목소리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영원하고 시간이 영원하며 신의 세계가 영원하듯이 인간의 사회로서의 국가나 도시 또한 영원을 기준으로 그 정체성을 유지해나가고자 하는 내재적 기능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그런 본능적 의미에서 과거로부터의 습관과 관습이라는 연쇄 고리의 이어짐으로 작동합니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사상사적인 유산도 있겠으며 물질적인 유산을 낭비하지 않고 물려주어야 할 의무 또한 있다고 보입니다. 한 세대가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 재능을 낭비함으로써 사회적 무능으로 전승(傳承)을 오염시킬 수는 없습니다. 제도로서의 규범이 유산이며 물질로서의 번영이 유산이고 질서로서의 사회적 구조가 유산입니다.

 

 

자연 파괴로 숲이 사라지고 오염으로 멍들어가는 토양에 투쟁 일변도의 사회는 계속되는 무책임한 빚의 증가로 채무이행의 불안까지 안겨주면서도 오직 실정법을 개정해 돌려 막기로 막 나간다면 세대 간의 연결고리는 그들이 파괴범이자 주범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잘 살아가기 위한 노력으로서의 창조적인 발전방향의 제시가 아니라 내가 터득한 욕심의 개념들로 세상을 더욱더 혼란스럽게 뒤집어엎어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기록하고자 온갖 연기를 해대는 거짓 인간들이 그 주범이라 하겠습니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서구 표절로서의 사회주의사상에 경도된 환상 속 장밋빛 아르카디아만을 꿈꾸어 왔지 스스로의 노력은 너무나도 일천(日淺)하기에 구태의연한 사상만을 펼쳐내기 때문입니다.

 

 

소박한 자기화(自己化)가 아니라 거대한 세계화를 향해 자신을 등신불로 밝혀내려 애씁니다. 역사에 의미 있는 인간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모든 것을 권력이 상승할 때에 완성하고자 덜컥 수를 여기저기 두며 부도어음을 발행해 자기를 영웅시하고 뻥튀기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과거를 질타하고 범죄-화하려는 인간일수록 그 내면을 온정적이며 애국적인 삶으로 채워갑니다. 과거와의 거리를 두고 적폐 청산을 주장할수록 체면은 올라가고 본때 없는 사상들은 더욱더 빛을 발할 수 있음을 그들은 수많은 투쟁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속빈 깡통이 요란할 수밖에 없듯이 속 빈 강정일수록 과거를 들먹이며 현재의 자신을 감추기에 열연합니다. 전문가에게 빨리빨리는 어리석음이자 욕망이며 속임수일 뿐입니다. 과거청산에 법을 들이미는 것은 그처럼 빨리빨리 만을 주장하는 어리석음의 내부 의미를 가집니다. 전문가들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능력을 펼쳐내 보여줌으로써 과거의 어리석음과의 객관적 비교를 통해 오염이 줄어드는 사회를 이끌어냄으로써 저절로 진보가 이루어지도록 구상할 것입니다. 전문가가 사라진 현실은 밭고랑을 갈아엎기에만 열중하지 씨앗을 뿌리고 풀을 매어 수확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수많은 부품으로 이루어진 자동차도 여기저기 들쑤셔서 좋아질 리는 없습니다. 단번에 고장부위를 찾아내야 합니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고장 난 부위만을 원 부품으로 교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차 전체를 분해 정비해서 더 좋아지리라고 장담한다는 것은 자신의 전문적인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자동차를 실험 대상으로 여긴 것뿐입니다. 원래 공장에서 출고한 상태가 최선의 상태입니다. 과거의 의미는 이와 같습니다. 어쭙잖은 전문가가 되어 사회를 개혁하고 세상의 질서를 바로 세우겠다고 나설수록 세상은 선무당의 놀이터가 되어갈 뿐입니다.

 

 

전통을 말살하며 잘 살아가는 민족은 없습니다. 스스로가 전통의 완결체임을 잊어버린 얼치기 나그네입니다. 전통의 개선은 파괴나 외면과 다른 차원입니다. 그것은 전통을 이해하고 배워서 더욱더 빛내는 즉 오래되어 녹이 슨 칼을 잘 갈아서 더욱더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연마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지식으로 알 수 없는 오래된 전통으로서의 음식 맛이 거기에는 녹아 있습니다. 음식 조리용 칼이 닳아 갈수록 전통은 더욱더 풍요로운 창조를 일구어낼 수 있게 됩니다. 보는 사람과 먹는 사람에게 신뢰와 자신감을 북돋워줍니다.

 

 

연마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 그 사용가치나 쓰는 용처(用處)는 시민들에게 맡기는 것이 진정한 정치사회의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멍석만을 깔아야지 거기에 살풀이춤까지 추어서는 주객이 전도된 즉 정치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전제정치를 몰고 올뿐입니다. 시혜적인 정치를 베풀겠다는 독방(獨房) 속의 계획들은 그 자체가 독단이고 독선이며 전제국가이자 계몽적 개념의 노예들이 펼치는 노예국가의 모습일 뿐입니다. 우리는 서구의 노예국가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전통을 가꾸고 살리는 길에 매진해야 할 시절입니다. 전통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근본 없는 인간들일수록 자신의 근본을 세우기 위해 과거에 대한 경시와 파괴에 더욱더 열중합니다. 요즘은 어린아이들까지 과거를 무시합니다. 그런 세태는 결국 노인에 대한 무시로 이어지며 세대 간 갈등은 그 도를 넘어 남녀 간의 갈등을 촉발하고 거기에 가족 간의 갈등까지 자연스레 펼쳐지고 있는 시절입니다.

 

 

우리의 욕망은 옛 질서를 수선하기를 거부합니다. 구두를 수선하고 옷을 수선하며 인식을 수선하기를 구태의연하게 여깁니다. 오로지 새로운 사상으로 새로운 이벤트로 행사 위주의 놀이에 빠져듭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는 무조건 없애야 할 증거처럼 인식됨으로써 스스로 역사의 범죄자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변화야말로 사회가 진보해나가는 지름길이겠으나 그것을 사회의 일반적 필요에 부응하는 변화가 아니라 투기와 같이 위험을 감내하는 부정적 변화를 요구하는 실정입니다. 급격한 변화는 신념의 부작용으로 개념에의 집착에 더욱더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심오함도 없고 서서히 가 아닌 빨리빨리의 개혁으로 촉발되는 논의 부재의 현상은 화합을 경원시함으로써 모두를 분열로 몰아가는 무관심의 냉대적인 병폐(病廢)만을 키워갈 뿐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완벽하다고 여길 때 그런 증상이 나타나며 순식간에 사회를 오염시킵니다. 개혁은 누구나 할 수 있겠으나 그 성사 이후의 보존에 대한 능력은 쉽지 않은 경륜을 요구합니다. 동계 올림픽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사이지만 그 이후의 폐허에 대비하는 능력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태양광발전은 누구나가 선택의 클릭만 하면 이루어지나 그 유지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으려 합니다. 전기저장 장치가 배터리인 이상 그것은 더욱더 큰 환경재앙을 불러올 뿐입니다.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종교적 경구가 생각나는 시절입니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는 시작이 끝이 되었으며 그 이후의 과정은 남의 나라 일처럼 여깁니다. 무수한 대도시의 아파트 숲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의지를 없애버림으로써 인공의 세계를 살아가게 되었으며 거기에서 나타나는 여러 질병들이 도를 넘고 있으나 무기력한 정신박약의 도시인들은 마취에 빠져 들어갈 뿐입니다.

 

 

모든 혁명과 혁신에는 자신의 알량한 개념과 이념과 신념으로 세상을 한순간에 바꾸어버리겠다는 의지의 과정입니다. 그러한 의지는 과거의 전통을 파괴해야만 가능하기에 단절의 부작용을 남깁니다. 현대의 삶이 무수한 과도기적인 과정의 반복으로 구조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안정을 갖고 살아가기가 힘들어짐은 그처럼 세상이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바꾸어버리는 정치권력으로의 쏠림 현상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경제 또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면서 어떤 규율로서도 그 변화를 설명할 수 없는 현실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규제와 통제가 불가능한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있는 현실입니다. 건드리면 건들수록 그 내재적 폭발력이 사회를 흔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랜 전통을 하루아침에 바꾸어보겠다는 거짓 신념들이 현실을 호도해가고 있는 시절입니다. 무차별적 규제와 보복적이고 징벌적인 편 가르기로 세상의 혼란을 유도해 자신의 허접함과 못남을 가리기에 급급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큰소리치며 살아가는 시절입니다. 그들은 지식의 나무에서 열매만을 따먹으며 개념을 신념으로 전환시켜 자신만의 독단으로 투쟁적 삶을 살아온 자들입니다. 투쟁의 고통을 겪었으니 세상을 통달한 듯 삶을 살아왔으며 그런 투쟁의 결실로 권력을 잡은 자들입니다. 그들의 권력 행위에는 세상을 무시하는 태도가 넘쳐나며 밀실에서 속삭이는 그들의 생리를 여실하게 보여줍니다. 동화책을 읽어주며 국민들에게 온정적 시각으로 살아가도록 유도하기에 거침이 없습니다.

 

 

국민들에게 동정의 눈물샘을 자극함으로써 비판세력을 하루아침에 도둑놈을 몰아가는 적폐 청산의 원리를 민주 사회에 도입합니다. 자식이 아비의 범죄를 세상에 고발함으로써 영웅이 되는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개념사회는 그러한 것을 사회적 윤리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가는 사회입니다. 정권교체가 왜 사회적 불안으로 나타나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바닷물 수온이 일도만 올라가도 물고기의 생태환경은 바뀌고 결국 고기들은 터전을 버리고 이사해야 합니다. 하물며 반도에서 살아가는 척박한 환경에 급격한 변화까지 덧붙임으로써 퇴로 없는 외길 신세로 몰아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급격한 변화는 긍정과 부정으로 갈라져 분열되어갈 뿐입니다. 성과는 미미함에도 그 성취에 취해가는 권력자들의 놀이터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시민들은 거기에 분열까지 덤터기 당하며 인생을 훼손해가고 있을 따름입니다.

 

 

관계 전문가들이 개혁과 정책 선택에서 제외되고 맹목적 지시에 따르는 허수아비가 될수록 세상은 혼란해집니다. 자신의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전문가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소신마저 사라진 현대인의 성마른 모습이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시간만 때우면 언젠가는 또 바뀌겠지 소신을 지워갑니다. 영악함은 어느 조직에서나 권력자들의 특징이자 그들의 능력이었을 뿐입니다. 서서히 변화하는 단계적 변화를 받아들이는 정책이야말로 세상의 질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억눌려왔던 투쟁 일변도의 조직들에게 그런 사회적 질서는 파괴해야만 할 적폐로 인식합니다. 그들은 권력을 잡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과거의 질서를 폐기하고자 성급하게 나섭니다. 그런 성급함에서 결정하는 정책들이야말로 갑자기 권력을 쟁취한 인간들이 보여주는 본성이자 오만방자하게 권력을 남용할 표징(標徵)입니다. 결코 인간은 착한 심성만이 있지 않으며 영악한 신념도 만만치 않습니다. 시절이 사람을 만들어가기에 권력에 취한 인간을 바라보기보다는 시절을 알아가는 것이 그나마 삶의 위로가 아닐까 합니다.

 

 

이 무더위에 선풍기도 없이 살아가려니 땀범벅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겨울 바다와 파도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