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557호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작성시간11.06.04|조회수3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557호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제15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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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지난 4월 22일 성금요일 새벽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고난주간 새벽기도회는 설교자도 울고 성도들도 우는 회개의 눈물을 쏟는 예배였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이며 세계 최대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우고 이끌어 온 조용기 목사님이 이날 고난주간 새벽예배 설교 도중 갑자기 눈물을 쏟으며 교인들에게 사죄의 큰절을 올렸습니다. 영적 거장이 일흔다섯 노구를 바닥에 묻고 흐느끼는 모습을 본 교인들은 충격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성도들은 원로목사의 흐느낌을 보며 ‘주여’, ‘목사님’을 외치며 함께 통곡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무릎 끓고 눈물로 통회하며 하나님과 교회에 용서와 도움을 간구하는 모습에 교인들은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우시고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 축복을 전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요 근래, 우리 교회에 저로 말미암아 많은 시련과 환란이 있었음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자백합니다. 또 제가 여러분에게, 잘못했습니다.”

 

   최근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교회 자체 내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비판에 휩싸였었습니다. 마치 한 교회가 개인의 교회인양 원로목사님 주변 가족들 분쟁으로 인해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국민일보 등을 둘러싸고 빚어진 가족 간의 경영권 분쟁, 이로 인해 발생한 불미스런 세상에서나 볼 수 있는 법정 고소 건, 교회 내 외부의 따가운 비판과 곱지 않은 시선, 사회적 논란으로 까지 확대되어 버린 교회 문제들로 교회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심지어는 기독교를 향해 입에 담기 어려운 말들도 세상의 허공에 메아리쳤습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오직 한 사람인 조용기목사님이 직접 나서서 하나님과 교인 앞에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긍휼로써 저를 사랑해 주시고 우리 가족을 사랑해 달라”고 용서를 구하며 애절하게 부탁했습니다.

 

   나는 이 소식을 접하며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눈물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영적 리더인 목사님이 강단 위에서 무릎을 꿇고 얼굴을 바닥에 대고 사죄의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태까지 가게 한 목사님과 사모님과 자식들 때문입니다. 그들이 더 욕심을 부리지만 않았다면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찢어질듯 아팠습니다. 세상에서 이미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으신 그 분이 교회에서 정년 은퇴와 함께 모든 것을 내려 놓으셨다면 모든 한국 교회성도들과 후배 목회자들에게 귀한 귀감이 되셨을 텐데 아는 아쉬움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입에서 이 말이 흘러 나왔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사도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었을까?

 

  우리는 사도 바울의 영적 생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돌아보며 우리의 영적인 모습의 단계를 돌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영적자세도 되돌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보내는 편지들 서두에서 자신의 사도권을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롬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고전1:1),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갈1:1).

 

  성경에서 사도란 특히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고 복음의 증인으로 세움 받은 사람을 가르킵니다. 또한 사도란 교회의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임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사도됨을 자신 있게 외쳤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후 55년경에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교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인 사도들 중에서 가장 미천한 자이며 그뿐 아니라 자신은 감히 사도라는 칭함을 받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랬던 그가 주후 61경 에베소 교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자”라고 자신의 모습을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감히 사도의 모습이 아니라 일반 성도들 중에서도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랬던 그가 주후 64년경에 디모데에게 보낸 그의 마지막 편지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죄인 중에서도 가장 부끄럽고 추한 죄인의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의 실체를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신앙인으로서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자신의 죄악된 모습 속에서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에 대해 애통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을 통하여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기에 사도 바울은 옥에 갇혔어도 하나님의 위로를 맛볼 수 있었으며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부활의 주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위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교회에서 나의 위치가 높다고 자랑하는 초기 신앙인의 모습은 아닙니까? 아니면 나의 신앙이 깊어져 가면 갈수록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는 단계입니까? 아니면 나의 신앙이 더욱 심오한 자리에 들어가 나의 죄악 때문에 애통하며 몸부림치면서 오직 하나님의 위로하심만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사모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는 자리에까지 와 있습니까?

 

   지난 주 설교 시간에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자고 성도들과 함께 다짐하며 ‘낮엔 해처럼 발엔 달처럼’ 이라는 복음송을 불렀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듯이 나의 일생에 꿈이 있다면 이 땅에 빛과 소금되어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 하고픈데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 되어 나를 짓눌러 맘을 곤고케하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 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이 그저 주는 사랑 그러나 나는 주는 것 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나의 입술은 주님 닮은듯하나 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 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으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노래 :최미)

 필      자

김해찬목사

(창골산 칼럼니스트)

호주시드니하나교회

 hanachurchmok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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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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