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567호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떼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작성시간11.06.18|조회수3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567호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떼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제15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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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에서 온 일백 아흔 아홉 번째 편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떼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텔레비전이 흔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있지 않았던 시대에 집에 텔레비전이 있으면 아이들 중에서도 인기가 최고였습니다. 텔레비전이 있는 집 아이는 으스대며 아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만화영화를 보여 주던 그런 시대입니다. 특히 김일 선수가 나오는 레슬링을 보기 위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있는 집으로 몰려가곤 했습니다. 남의 집에 가서 보기에 자존심이 상하는 사람들은 돈을 들고 만화방에 가서 보았습니다. 놀이 문화가 시원치 않던 그 당시는 아이들은 돈만 생기며 만화방에 가서 만화책도 보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만화영화도 보곤 했습니다.

 

   저녁 5시가 넘으면 아이들 노는 소리로 시끄러울 골목이 평화가 찾아오며 조용해집니다. 아이들이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 만화방으로 달려갔기 때문입니다. 집집마다 어머니는 저녁 먹으라고 아이들 찾으러 만화방으로 향합니다. 어머니들과 아이들은 만화방에서 실갱이를 합니다. 조금 있으면 끝난다고 애걸하는 아이와 지금 가자고 하는 어머니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쪽은 항상 어머니입니다. ‘다시는 만화방에 못 오게 한다.’ 어머니의 이 한 마디에 아이들은 속수무책으로 손들고 나와야 합니다.

 

    내가 10살 때입니다. 그 날은 1969년 7월 20일로 인류역사상 최초로 달나라를 처음 밟은 닐 암스트롱을 태운 우주선이 발사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우리 집에는 상당히 많은 분들이 모여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어른들과 함께 나는 숨죽이며 우주선이 발사되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텔레비전의 미국 아나운서가 Ten, Nine, Eight을 외치며 마지막 One, Zero를 외치자마자 우주선의 꽁무니에서는 거대한 불길이 내질렀고 우주선은 하늘로 날라 갔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미국인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고 또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어른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아폴로 15호를 타고 제임스 어윈대령이 달나라를 다녀왔습니다. 무사히 지구로 돌아 온 어윈대령은 많은 나라를 다니며 자기가 달나라를 다녀오며 본 것과 체험에 대해 간증했습니다. 그가 한국에 와서 자신은 이번 우주여행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아찔한 순간을 간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캡슐을 타고 지구를 향해 내려올 때 두 개의 낙하산이 동시에 퍼져야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는데 오직 한 개의 낙하산만 정상적으로 펴졌고 나머지 하나는 작동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모든 방법을 다 시도했지만 결국 낙하산은 펴지지 않았고 그 상황을 감지한 사령탑에서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숨죽이고 초죽음이 된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기도합시다’를 외쳤고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밑에서부터 위로 불면서 어윈대령이 매달려 있던 낙하산은 하나만 작동됨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속도를 유지하며 지구로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어윈대령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주선은 휴스턴 사령탑에서 조정하는 줄 알았는데 그 뒤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한 번은 어윈대령이 헝가리 대학에서 달나라 탐험에 관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 시간이 되었을 때 한 학생이 어윈대령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1961년에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된 러시아의 가가린은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 본 소감을 ‘지구는 푸른빛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하나님은 그 우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다.’라고 말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우주에 나가서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때 어윈대령은 분명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특권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을 통하여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마음을 비운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인들은 모두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툭하면 마음을 비웠다는 말들을 하기 때문입니다. 비운다는 것은 사실 위험한 것일 수 있습니다. 비운 것에 선한 것으로 채워지면 좋은데 그 반대로 더 악한 것들로 가득 채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마음을 비웠다고 말한 이들이 나중에는 더 악한 것으로 국민을 기만한 일들을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이 보아 왔습니다.

 

    또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수양을 쌓으면서 무아경에 이르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속세를 떠나 산에 들어가 도를 닦는 소위 말하는 ‘도인’들은 다 하나님을 보았을 것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다 머리를 밀고 산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데 이 세속이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보겠다고 다 다 산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이 지구는 누가 지킵니까?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복잡한 마음이 아닌 단순한 마음을, 혼합된 마음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이었습니다.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예수님께 만져주시고 축복의 기도를 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부모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어른들도 예수님을 만나기 어려운데 아이들까지 데리고 와서 시끄럽고 성가시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진노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 보기를 원하십니까? 아니, 하나님을 나에게도 보여 달라고 떼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복잡한 마음을 단순화하고, 땅으로만 치우치는 마음을 하늘로 향하고, 허탈한 것을 쫓는 마음을 순전한 진리로 향하고, 속세에 얽매여 있는 마음이 성령에 온전히 사로잡힌바 되면 분명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청결한 내 안에 계십니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김해찬목사

(창골산 칼럼니스트)

호주시드니하나교회

hanachurchmok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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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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