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577호 /부스러기와 같은 당신을 위해서

작성시간11.07.03|조회수4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577호 /부스러기와 같은 당신을 위해서

 

 제15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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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에서 온 이백 번째 편지

  부스러기와 같은 당신을 위해서

 

 

 

     ‘일언천금(一言千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마디의 말이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말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이며 또한 대단히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서당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교과서로 자신을 수양하고 반성하고 양심을 기르는 인격 수양의 목적으로 가르쳤던 명심보감에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일언지익(一言之益)이 중어천금(重於天金)하고 일행지휴(一行之虧)가 독여사갈(毒如蛇蝎)이니라. 이 말은 말 한마디를 잘하는 것이 천금을 가진 것보다 도움이 될 수 있고 한 번 행동을 잘못하면 독사에게 물린 것보다 더 지독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일언천금’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날 수많은 사람들이 읽은 베스트셀러 중 켄 블렌챠드가 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있습니다. 회사의 중역으로 회사에서 인간관계로 많은 고민을 하는 웨스 킹슬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출장을 가 있는 동안 우연히 씨월드 해양관에서 범고래의 쇼를 보게 되는데 3톤이 넘는 범고래가 그렇게 멋진 쇼를 보여 준 것에 감명을 받고 범고래 조련사를 찾아 갑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렇게 큰 범고래가 멋진 쇼를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느냐고 그것에 대한 비결을 조련사에게 묻습니다. 그때 조련사는 범고래와의 관계는 인간 사이의 관계와 다르지 않으며 범고래가 그렇게 멋진 쇼를 하도록 만드는 비결은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과 칭찬 그리고 격려라고 말해 줍니다. 한낱 미물인 고래에게도 잘한다고 계속해서 칭찬해 주면 고래는 그것에 좋은 반응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게도 칭찬의 말을 계속해서 해 주면 사람은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땅에 기근이 닥쳤을 때 랍비 여후다는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에게만 저장된 곡식을 나누어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요나단이라는 남자가 랍비에게 와서 자기에게도 식량을 나누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랍비는 그에게 식량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이행하였는가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 질문에 요나단은 ‘아닙니다. 저는 그 조건을 완수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식량을 줄 수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나단은 ‘그렇지만 저를 주인의 상에서 나오는 음식 부스러기를 먹는 개로 생각하시고 저에게 식량을 좀 주시옵소서.’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은 랍비는 감동하여 그에게 곡식을 주었다고 합니다.

 

   탈무드보다 더 감동적인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는데 이방인들 중에서도 유대인들에 의해 가장 천대받던 민족인 가나안족속의 한 여자가 갑자기 뛰쳐나와 예수님께 큰 소리로 외쳐댔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나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들은 체도 안하십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계속해서 큰 소리로 외쳐대자 너무나 성가시고 또 시끄러웠는지 제자들이 오히려 예수님께 어떻게 좀 해봐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는 여인에게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여인에게 면박을 주며 그 자리에서 단박에 거절을 하십니다.

 

   여인의 몸으로 창피를 무릅쓰고 오직 자신의 딸을 고치고 말겠다는 신념으로 많은 남자들 앞에서 예수님께 애걸복걸을 했지만 그 결과는 너무 참혹하게 사람들 앞에서 망신으로 돌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물러서지 않고 막무가내로 자신의 딸을 살려 달라고 간청하며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매정하게 말씀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 이 여인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개처럼 취급당하는 처참한 굴욕을 당합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예수를 욕하고 돌아섰을 법도 한데 이 여인은 그 틈새를 이용하여 예수님께 더 큰 소리로 간청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께서는 굉장히 큰 감동을 받으셨는지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개 취급하였습니다. 그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도 이 여인을 그 당시의 사람들처럼 개 취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해 보고자 함이었지 예수님이 그렇게 무정하고 몰상식한 사람은 아니셨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너무나도 재치 있게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넘겼습니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나요?” 이 한마디로 이 여인은 자신의 딸을 고칠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로부터 믿음이 크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여인이 예수님께로부터 칭찬을 들었습니까? 이 여인이 말을 아주 재치 있게 잘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감동 받아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예수님 자신이 이 여인을 시험한다고 하셨는데 도리어 이 여인에게 말로써 지고 말았다는 것을 시인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여인이 칭찬을 받은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너무나 확실하게 알고 있는 그녀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제자들까지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분명한 목적을 모르고 예수님께서 로마 정부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수장의 자리에 오르면 서로 한 자리나 차지하겠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다툼을 벌리고 있는데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며 목적까지도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부스러기 같은 우리들을 위해서 오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의인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오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가진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지지 못한 자를 위해서 오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권세 자가 아니라 눌리고 소외된 자를 위해서 오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를 위해서 오지 않았습니까? 바로 내가 그러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바로 부스러기와 같은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친히 오신 것입니다.

 

  얼마나 확신에 찬 말입니까? 이 말 한마디에 이 여인은 자신의 딸을 고칠 수 있었고 또 예수님께로부터 믿음이 크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일언천금(一言千金)’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천금의 가치가 있는 말 한마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말이 아니겠습니까? “사랑의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당신, 부스러기와 같은 당신을 위해서 이 땅에 친히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김해찬목사

(창골산 칼럼니스트)

호주시드니하나교회

 hanachurchmok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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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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