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781호 /시골교회의 성경읽기 접근법

작성시간12.03.21|조회수5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781호 /시골교회의 성경읽기 접근법

          

 

  제17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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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교회의 성경읽기 접근법

 

 

 

 

 

    우리 부부는 이 교회에 2002년 3월 1일 부임해서 이제 만 10년이 되었다. 처음 와 보니 시골교회인지라 성도들의 성경 지식이 너무 빈약했다. 그리하여 전교인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아서 새벽기도회 시간을 이용하여 성경 통독을 시도하기로 하였다. 그래도 새벽기도회에 참석할 정도이면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성도들일 테니까. 그래서 첫 해에는 새벽마다 성경을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여섯 장씩 읽어나갔다.

 

    목사님이 한 장, 사모인 내가 한 장씩 교대로 큰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나서 기도를 하였다. 1년이 못 되어 성경 일독을 마쳤다. 아마도 새벽기도회를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사람이면 난생 처음으로 성경 일독을 한 셈이었을 것이다. 어느 목사님 설교에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세 가지를 확인하는데, 하나는 전도를 몇 명 했느냐 이고, 또 하나는 성경통독을 몇 번 했느냐, 세 번째는 기도를 얼마나 했느냐 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들어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어서 항상 염두에 두고 산다.

 

    그 다음에는 매일 새벽에 성경 두 장씩을 읽어나갔다. 목사님이 한 장, 내가 한 장 그리고 나서 짧은 강해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하였다. 그 때부터는 성도들이 일단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조금은 덜어진 듯했다. 나도 성경 일독을 했노라는 자부심이 생긴 듯했다. 시골교회 성도들은 성경읽기를 잘 할 수 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성경을 얼마나 읽었느냐는 질문에 늘 부끄러워하곤 하신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학창시절을 지나면 책을 잘 읽지 않고 산다고 한다. 아마도 학창시절에 입시 공부하느라 늘 책과 씨름하고 살아서 책만 보면 현기증이 나는가 보다. 어떤 이는 밤에 잠이 안 올 때 책을 읽기 시작하면 5분 내에 잠이 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를 하기도 한다.

 

    우리 교회 어느 성도님의 가정에 심방을 가서 예배를 드리자고 하였더니 성경 책가방을 장롱 속 깊은 데서 꺼내느라고 낑낑대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목사님이 “집사님, 성경책은요, 머리맡에 두고 늘 읽어야 해요. 너무 멀리 두면 주일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성경책을 펴보지 않고 지내게 되지요. 하나님은 성경을 많이 읽는 걸 좋아하신답니다”라고 말하니 “늙으니 눈도 안 보이고 해서 읽고 싶어도 못 읽어요”라고 대답하신다. 하긴, 그렇겠구나. 그러니 젊어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이 참 복이로구나 하고 감사했다.

 

    그 다음에는 성경 한 장씩 읽고 강해하는 설교를 하고 기도를 했다. 성경 여섯 장 읽기부터 시작하여 성경 한 장씩 읽기를 두 번째로 끝내고 나니 10여년이 흘러갔다. 새벽기도회 시간에 성경 한 장을 읽고 나서 짧게 강해를 한다 해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가므로 기도하는 시간이 짧아진다. 그래서 2012년 1월 1일부터는 신약성경 마태복음부터 시작하여 한 단락씩 읽고 한 가지 주제만을 가지고 상세하게 강해를 하고 그 말씀을 붙잡고 합동으로 통성기도를 세 가지 한 후에 30여분 정도 개인 통성기도를 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 교회 새벽기도회는 한 분이신 장로님, 여섯 분인 권사님들, 젊은(50~60대) 남자 집사님 두 분, 젊은(40~50대) 여자 집사님 두어 분, 늙으신 집사님 두어 분이 거의 매일 참석하신다. 그러니 그분들 가운데 처음부터 줄곧 참석한 분은 성경 통독 네 번을 마친 셈이다.

 

    그러나 새벽기도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은 어떻게 성경을 접할 수 있겠는가? 물론 주일 오전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듣지만 그 정도로는 성경의 한 귀퉁이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도들이 노인들이라 그들이 집에서 성경을 펴놓고 주중에 읽는 분들이 단 한 분인들 계실까 의구심이 든다. 나의 시어머니께서는 50대 중반까지는 대충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큰 병에 걸려 죽을 뻔 했는데 아들과 함께 기도원에 가서 나흘 만에 치료를 받은 후에 신앙이 변화하여 그 후에는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셨다.

 

   연세 드신 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학교를 안 다녔으니 한글 미 해득이었으나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을 읽고 싶어서 한글을 깨쳤다. 70세가 넘은 후에 정읍에서 혼자 방을 얻어 살면서 권사로서 교회 청소하고 기도하면서 여생을 보냈는데 가끔 집에 방문해보면 혼자 사는 방에 작은 상을 놓고 그 위에 늘 성경을 펴놓고 읽으며 시간을 보내시던 일이 생각난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집에서 그렇게 성경을 펴놓고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없는 것 같아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마침 우리 교회 연세 드신 성도님들은 주일날이면 아침 9시부터 교회에 나오신다. 교회 봉고차를 운행하시는 장로님이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9시 30분 이내에 차량 운행을 끝내시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교회에 올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교회에 나와야 한다. 그러니 10시가 되면 대부분의 연로하신 성도님들은 모두 예배당에 앉아 계시는 것이다.

 

    11시가 예배 시작 시간인데 예배 시작 전 1시간이나 시간이 남아도는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10시부터 30분 동안 목사님이 성경공부를 가르쳤다. 그런데 목사님이 30분 동안 성경 공부 가르치고 30분 동안 찬송 부르고 나서 11시에 예배를 인도하자면 엄청 피곤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사모인 내가 성경 공부를 담당하게 되었다. 나는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하여 성경을 가르치기로 하였다. 기초교리, 어느 분의 간증, 믿음의 예화, 성경 이야기 등을 활용하였다. 요즘에는 창세기를 이야기 형식으로 하였는데 저번 주에 끝났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성경 퀴즈 대회도 하여 답을 맞히는 사람들에게 상품을 주기도 한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사모를 강단에 세우기를 꺼리신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 한국이라는 풍토에서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은 ‘내조자’에 불과하니까. 우리 시찰 내 가까운 교회의 사모님도 주방일 말고는 교회에서 아무 하는 일이 없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내가 깜짝 놀라서 ”아니, 시골교회에서는 그렇잖아도 일꾼이 부족하여 중학생이라도 써먹어야 할 판에 사모라는 고급 인력을 방치해두고 있다니 너무 하는군요“라고 했다.

 

    한참 지난 후에 보니까 그 얘기에 깨닫는 바가 있었던지 그 사모님이 예배 전 찬양 인도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며칠 전에만 해도 동기 목사님 부부가 놀러왔는데 얘기를 나누던 중 그 교회는 어른들은 별로 없고 주일학교와 중등부가 열여섯 명이나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럼, 다음 세대를 위한 목회를 중점적으로 해야겠네요. 그러려면 목사님 혼자서는 감당하기가 힘드니까 사모님의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해서 협력 목회를 하세요“ 라고 조언을 했다. 그 사모님이 여러 가지 달란트를 갖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상담교사로도 오래 일하였고 유치원에서도 근무했던 적이 있다. 그 사모님이 그 동안의 목사님에 대한 서운함을 담아서 ”저는 주일날은 하루 종일 먹거리만 담당한답니다“ 하길래 내가 ”왜요?“ 했더니 ”우리 목사님은 제게 교회 일을 시키지 않고 혼자 다 해요“ 한다. 그래서 내가 그 목사님에게 말했다. ”목사님, 사모님은 제가 볼 때 능력이 굉장히 많은데 그 능력을 왜 사용하지 않고 썩히게 합니까? 마치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그것을 땅에 파묻어 놓은 것과 같은 거네요.“ 그 목사님도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 사모의 능력을 활용하기를 기대해본다. 우리 목사님은 내게 너무 교회 일을 많이 시켜서 때로는 내가 불평을 하기도 한다.

 

   우리 교회는 시골교회라서 성경 퀴즈 시간이면 배꼽을 쥐고 웃는 일도 많다. 두 번째 성경 퀴즈 시간이었다. 이제 처음 교회를 나오기 시작한 초 신자가 한 분 계신다. 연세는 50대 중반이라서 우리 교회 성도들 가운데서는 젊은 축에 든다. 그러나 그녀도 역시 한글 미 해득이시다. 옛날에 가난한 집의 맏딸로서 부모님이 학교도 보내 주지 않은 것을 지금도 서운해 하시곤 한다. 한글이라는 것은 배우기로 맘을 먹으면 아주 쉽게 배울 수 있는 간단한 것이지만 어려서 배우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한글 배우는 것을 겁을 낸다.

 

    지금이라도 가르쳐 주겠다고 하였으나 불가능하다면서 마다하신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는데 그 가죽은 무슨 동물의 가죽이었나요?” 나는 너무 쉬운 문제라서 아무라도 맞출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문제를 냈는데 의외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물론 젊은 축에 드는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J집사는 일부러 나이 드신 분들 맞추라고 입을 다물고 있었으리라. 한참을 아무도 손을 안 드니 용감하게도 이제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아까 그 성도님이 손을 번쩍 드는 것이었다.

 

   나는 기대를 하면서 “아, 그래도 젊은 사람이 낫구나. 교회 나온 지는 얼마 안 되었어도 성경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구나” 하고 뿌듯하게 생각했다. “정답을 말씀하세요” 하고 목사님이 재촉하니 이 성도님이 예배당이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호랭이 가죽이요” 하였다. 그 순간 예배당 안은 포복절도하는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 외에도 그 성도님은 실컷 아브라함에 대한 얘기를 자세하게 해준 후 저번 주에 예상문제로 문제를 하나 가장 쉬운 걸로 내 봤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낳은 것은 몇 살 때입니까?” 그랬더니 그 성도님이 “쉰여섯 살이요”라고 하였다. 아마도 자기 나이가 쉰여섯인 모양이다. 참으로 순진한 분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영적 나이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육신의 나이가 많다 해도 교회에 나온 햇수로 영의 나이가 차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분은 영적으로는 이제 갓난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나 사모하는지 4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낙심에 빠져있던 중에 우리 부부의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날씨가 좋으면 운동도 할 겸해서 절룩거리는 다리로 1시간 넘게 걸어서 교회에 나오곤 한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20:16)”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교회에서는 믿음이나 봉사에 있어서 순서가 정해진 것이 아니다. 특히나 은혜 받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이 순서가 없고 사모하는 자에게 더 큰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본다. 그 성도가 사는 동네에 오랫동안 혼자만 교회를 다니던 집사님이 한 분 계신다. 그 집사님은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으니 실로 60여년 교회에 다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집사님은 예배 시간에 늘 존다. 그런데 이제 자기 마을에서 오랜만에 새 신자가 생겨서 함께 교회를 나온다. 그러니 이제는 졸다보면 새 신자 눈치가 보이니 맘 편히 졸지도 못하여 안 졸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본다. 옛말에 “눈 길 함부로 걷지 말라. 뒤따르는 자들이 그 발자국을 따라 가느니”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 먼저 예수 믿는 자들이 바르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다음 사람이 그의 신앙을 본보기로 삼을 테니까.

 

   어쨌든, 이제 창세기를 끝내고 출애굽기를 들어갈 예정이다. 사실은 긴 창세기의 이야기를 끝냈으니까 이제는 기초 교리를 가르쳐 볼까 하고 <성부하나님, 성자예수님, 성령하나님>에 대한 자료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성경 이야기를 하긴 하면서도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하고 궁금했었는데 며칠 전에 성가대석에 앉는 젊은 집사님과 전도를 하러 갔는데 그 때 그 집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성경을 읽고 싶어도 너무 어렵다는 생각에 선뜻 읽지 못했는데 사모님 성경 이야기를 듣고 나서 창세기를 읽으니 참 재미있고 쉽데요”라고 하길래 용기를 얻어 이어서 출애굽기를 이야기 형식으로 하기로 했다. 그 다음에는 사무엘 상하, 그 다음에는 열왕기 상하, 그 다음에는 신약 성경을 이야기로 해서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성경을 접근시키고자 한다.

 

    또한, 우리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마다 주로 강해 설교를 한다. 요즘 주일 오후 예배 때에는 구약 성경을 파노라마식으로 한 권 씩 요약 설교를 하고 있어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저번 주에 <학개서>를 했다. 말귀를 좀 알아듣는 성도들은 구약 성경 전체를 통시적으로 훑은 것이다. 요즘 수요일 밤 예배 때에는 <에베소서>를 읽으며 <교회론>을 하고 있다. <교회란 무엇인가?>를 정확히 짚어주려는 것이다. 사실, 성경 지식이 적은 성도들, 성경을 읽지 않는 성도들은 아직도 ‘교회’하면 ‘교회 건물’을 떠올린다.

 

   우리 자신이 바로 교회인 것을 망각하고 산다. 그리하여 자기 교회 큰 것과 화려한 것을 자랑한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상기시켰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막13:1)“ 하니 주님께서는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막13:2)“ 라고 대답하셨다.

 

    지금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실제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하고 겉모습을 붙잡고 신앙생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하시는데 사람들은 항상 외적인 것만을 보고 감탄하고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육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수준의 영적인 분별력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우선 나부터도. 그러므로 나는 기도할 때마다 “영의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라고 한다. 그리고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3)” 라는 말씀을 외우고 다닌다. 그렇게라도 해서 영적 각성을 하며 살고 싶어서이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양애옥 사모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 산성교회  (창골산 칼럼니스트)

 ao-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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