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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에서 온 이백스물네 번째 편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전력 질주합니다. 사람들 중에 실패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위해서 우정도 버리고, 의리도 버리고, 신의도 져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소위 ‘성공’이라는 것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성공했다 생각하며 인생을 즐기려는데 예기치 못한 일들이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옵니다.
자기와는 먼 이야기로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며 그 이야기 중심 가운데에 초라한 모습으로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실패자가 되어 버린 나를 발견하고 “아! 나는 실패자!!”라는 탄식을 합니다. 이것은 분명 인간의 눈으로 보는 성공과 실패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눈이 아닌 신앙의 눈으로 볼 때는 성공자인데 실패자가 있고 분명 실패자인데 성공자라는 칭함을 받는 자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실패자 같은 위대한 성공자”로 남아 있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분명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위대한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입성하시는 장면을 본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분명히 예수님은 대단한 성공자였습니다. 온 세상을 뒤집을 만큼의 힘을 가지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을 들어가시는 예수님 앞에서 호산나를 외치며 위대한 성공자의 탄생을 축하하며 환호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많이 배운 대단한 학력의 소유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르칠 때 많은 사람들은 그 말씀하시는 권세에 눌렸고 특히 많이 배웠다고 자부하며 못 배운 자들을 업신여기는 그 당시 엘리트 집단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이라고 야단치실 때는 통쾌하기까지 했습니다.
바리새인이며 산헤드린공회원이었던 당시 대 스승이었던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과 대화 도중 예수님께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했을 때 니고데모가 엉뚱하게도 자기와 같이 늙은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느냐, 내가 다시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하느냐는 우문의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네가 이스라엘의 대 스승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잘 알지 못하느냐고 면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당대에 내노라고 하는 선생도 꼼짝 못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다시 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많은 부를 가지신 분도 아니었습니다. 아니,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들도 자신의 거처가 있지만 자신은 머리 둘 곳이 없으시다고 말씀하신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신 무소유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거만에 떠는 부자들이 예수님 앞에 와서 쩔쩔매는 모습들을 보며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했을 것입니다.
하루는 율법적으로도 자만해 있고 많은 부를 소유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고 이 청년은 거들먹거리며 무슨 계명입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부자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이 계명들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큰 소리칩니다. 도리어 내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느냐고 예수님께 따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들먹거리는 부자 청년을 향하여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했을 때 부자 청년은 한마디 말도 못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박수를 보냈을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자들 앞에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 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배운 적도 없는 사람이 배운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전혀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도리어 가진 자들 앞에서 큰 소리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환호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은 무지한 우리들을, 가진 것이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여 줄 분이라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외쳤을 것입니다. 사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를 외치는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 온 왕에게 “당신은 위대한 승리자입니다” 라는 백성들의 표시였습니다.
그랬던 대단한 성공자 예수님이 힘 한번 써보지도 않고 대제사장의 군졸들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모욕의 십자가, 능멸의 십자가를 지고 힘없이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힘으로 십자가를 지지 못해 시몬이라는 사람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그 뒤를 처량하게 쫓아가는 모습을 사람들은 보았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자신들이 가진 세상의 욕정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가 보았는데 정말로 맥없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고 말았습니다. 심한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하여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으며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실망감을 달랬습니다. 십자가에서 허망하게 운명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애쓰다가 처참하게 실패한 처량한 실패자라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무덤에서 부활하시어 영원한 실패자가 아니라 위대한 성공자로 사람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이 땅에 어느 누구도 죽음의 권세를 이기지 못한 세상에서 내노라 하는 위대한 실패자들에게 진정 위대한 성공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스데반 또한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 분명 그는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때 실패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천사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간 위대한 성공자로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스데반이 실패 같은 위대한 성공자로 우리에게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실패 같은 위대한 성공자인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실패 같은 위대한 성공자인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아간다면 우리들도 분명 하나님 앞에 그리고 믿음의 후손들에게 실패 같은 위대한 성공자로 남을 것입니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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