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810호 /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

작성시간12.05.01|조회수5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810호 /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

 

                  

 

  제18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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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

 

 

 

 

 

      누가복음 9장을 읽고 기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예수님이 12제자를 불러 모아 귀신을 제어하며 병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셔서 마을에 파송을 했다. 제자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냈다. 그들은 신이 나서 예수님에게 고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일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씀을 안 하시고 제자들을 데리고 조용히 다른 마을로 가셨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날이 저물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세어 한 오천 명 되는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이셨다. 그 후에 제자들만 남았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때서야 비로소 당신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밝히셨다.팔 일쯤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 기도하실 때에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셨다. 두 사람이 떠난 후에 베드로는 너무 황홀한 나머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말했다. “주여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기에 초막 셋을 짓고 여기서 눌러 삽시다.”

 

    이튿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왔다. 산 아래에서는 남은 9명의 제자들이 귀신 들린 외아들을 데려온 한 남자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온갖 귀신들을 쫓아냈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아마도 그 당시의 경험을 되살려 처음에는 자신 있게 덤벼들었으리라.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시자 아버지 되는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갔다.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당신의 제자들은 능히 못하더이다.”

 

    예수님은 단 번에 귀신을 꾸중하셔서 쫓아내셨다.이 일에 관하여 마가복음 9장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나는 이 말씀에 더 은혜를 받았다. 그 후에 제자들이 집에 들어가서 예수님께 물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9:28)”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요, 의무이다. 성도된 자가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했을 때 기도하게 된다. 의사가 능히 고치지 못할 중병에 들었을 때에나 여름에 비가 오지 않아서 곡식들이 타들어갈 때 성도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기도할 때 매우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고 했으며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고 기도할 것을 .강조하셨다.

 

    남편은 결혼 전에 기도의 능력을 체험했다. 내가 그와 결혼하려고 마음을 굳힌 직후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 때 55세였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허리 디스크로 앉은뱅이와 방불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남편은 군대에서 제대하고 도시로 나가려 했으나 병든 어머니를 홀로 두고 갈 수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며 몇 년째 집에서 손바닥만한 밭뙈기 농사를 짓고 있었다. 밤에는 통증이 더 심해 어머니는 한 숨도 주무시지 못하고 끙끙 앓는 소리가 가운데 부엌을 둔 건넌방에서 자는 아들의 마음을 후벼 팠다.

 

    남편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군대 가기 전까지 일주일에 이틀, 토요일과 주일은 하루 종일 교회에서 살았다. 토요일은 온종일 주일 예배 준비를 했다. 주보 만들고 청소하고 주일학교 예배 준비 등을 했다. 그는 하나님을 잘 믿는 성도인 자신의 어머니가 질병으로 고통 받는 것을 고통스러워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결판을 내고 싶어 했다.

 

    먼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찾아갔다. 이미 전에 여러 번 병원에 갔으나 그 당시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다는 판정을 수차례 받았었다. 역시나 찾아간 병원마다 그 병은 그 당시의 의료 실력으로는 고칠 수 없으니 진통제나 투여하면서 죽기를 기다리라고 했다. 남편은 병원 문을 열고 나오면서 오기가 나서 외쳤다. “하나님, 제가 기도를 빡세게 해 볼 테니까요. 고쳐주시면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거고요, 안 고쳐주시면 나 하나님 그만 믿을 겁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모시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기로 했다. 일주일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준비를 하고 나서 기도원으로 떠나면서 교우들에게 선언을 했다. “기도원에 가서 나흘 만에 어머니의 병 나아가지고 오겠습니다.”왜 나흘이라고 했는지 자신도 몰랐다고 한다. 아마도 성령님께서 그렇게 선포하게 하셨던가 보다. 삼일 동안 기도원에서 금식기도를 했다. 그 때까지는 병이 나을 기미가 전혀 없었다.

 

    수요일 밤 예배 때 어느 전도사님의 말씀 중에 신유의 은사가 있는 원장님의 손만 의지하려 하지 말고 자기가 직접 하나님께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속히 응답하신다는 말씀이 마음을 강타했다. 그날 밤 9시에 잘 걷질 못해 발을 질질 끌며 걷는 어머니를 부축하여 산에 올라가 나무를 붙들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부르짖어 기도했다. 겨울이었다. 찬 서리가 내려 온 몸이 마비될 지경으로 추웠다. 둘은 울부짖었다. 발악을 하였다. 2시간 정도 지나서 어머니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고 한다. “딸아, 네 죄를 용서하노라.”

 

     그 다음 날 새벽예배 시간에 기도 중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머리에서부터 온 몸을 뜨겁게 지지며 훑어 내려갔다. 그리고 허리의 통증이 사라졌다. 비틀어졌던 몸이 반듯해졌다. 질질 끌리던 다리가 정상이 되었다. 꼭 나흘만이었다. 그 후로부터 어머니의 신앙은 변했다. 주일 성수, 십일조 생활, 교회 봉사, 기도 생활, 성경 읽기 등 남은 삶을 온전히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사시다가 83세에 돌아가셨다.

 

    어느 목사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이다. 학벌 좋고 실력 있는 어느 목사님이 있었다. 그 목사님은 한국에서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가서 박사 학위를 4개 따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교회를 개척하였다. 공부도 많이 하고 실력도 좋으니 당연히 목회가 잘 될 줄 알았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나도록 교회는 개척교회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목회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부흥회나 한 번 하고 나서 그만 두어야지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목사님을 사랑하셨던가 보다. 부흥 강사로 온 목사님은 기도를 많이 하는 분으로서 본 교회 목사님의 영적 상태를 진단해 주시는 분이셨다. 부흥회를 마칠 즈음, 강사 목사님은 본 교회 목사님을 앉혀 놓고 처방을 내려 주었다. “목사님, 박사 학위 내려놓고 기도를 하세요. 그러면 목회가 잘 될 겁니다.”

 

    그 후에 그 목사님은 기도로 목회를 잘 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10년 전에 이 교회로 부임했다. 이제 막 전북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생 2학년 때였다. 실력 좋고 경력 많은 목사님들이 들어오려고 노회 교육부 목사님의 줄을 대고 몰려들었었다. 그러나 우리 교회 성도들은 학벌도 없고 실력도 없는 김 전도사가 아니면 안 받겠다고 생떼를 썼다. 노회 교육부 목사님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들 혀를 내둘렀었다. “어디, 전도사가 목회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겠다는 투였었다.

 

     전도사였던 남편은 오로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공부하랴, 아직은 일도 좀 하랴 바쁜 중에도 밤이나 새벽시간에 기도만은 빠뜨리지 않았다. 야간 신학교를 다녔으니까 학교 갔다 와서 피곤한 몸으로 졸면서도 강단에 가서 엎드렸다. 아마도 하나님께 떼를 썼으리라.

 

     “하나님께서 저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저는 목회를 못합니다. 저는 실력도 없습니다. 경력도 없습니다. 아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설교도 잘 하지 못해요. 오직 기도밖에는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이랬으리라.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우리는 직접 체험했다. 부임하자마자 교회에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이 뭘까 하고 돌아보았다. 본당만 있지 아무런 부속건물이 없었다. 그 당시에 특히 시골 교회는 노인들이 태반인지라 주일날 예배 후에 만찬 양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에 교회의 일꾼들인 집사님들이 다른 교회에서 주일날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것을 부러워했다. 그리하여 부임 후 일 주일 만에 주방과 식당을 짓기로 결정하고 새벽기도 시간에 합심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땅이 문제였다. 교회 부지가 좁아서 부속건물을 지을 여분의 땅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한 군데 교회 본당 오른쪽에 논과 인접한 곳이 있었다. 완만한 경사지였다. 그 곳을 옹벽을 쌓아 매립하면 상당히 넓은 땅이 확보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전(前) 목사님이 은퇴하실 때에 은퇴금도 주지 못 했을 만큼 가난한 교회였었다. 그러니 부속건물 지을 돈이 한 푼도 없을 것은 자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믿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한 지 일주일 후에 전도사님이 새벽기도 시간에 기도 응답 받았노라고 선포하였다. 자기도 응답의 내용은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어쨌든 기도하던 중에 마음속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는 응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날 밤 8시 경에 어느 젊은 집사님이 사택을 찾아왔다. 살림하는 돈 중에서 좀도리처럼 조금씩 떼어내 3년짜리 적금을 들었는데 아직 만기가 2달 남았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급하게 지금 당장 전도사님에게 돈을 가져다주라는 성령의 재촉하심에 해약을 해서 돈을 가져왔노라고 하였다. 178만 6320원이었다.

 

     그 때가 2002년 3월이었다. 옹벽 일을 끝내고 나서 정산해 보니 176만 5000원이 들었다. 할렐루야! 정확하신 하나님! 남은 돈이 2만 원 조금 더 되었다. 그것은 전도사님과 성도들이 합심하여 일을 손수 하여 인건비는 한 푼도 안 들어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옹벽을 치고 나니 없던 땅이 꽤 넓게 새로 나왔다. 그 곳에 교육관 겸 식당방과 주방을 지었다. 모든 일을 전도사님과 교우들이 힘을 합하여 직접 했다. 인건비는 거의 한 푼도 들지 않았다. 성도들이 늘어나 식당 한 칸으로는 좁아서 삼 년 전(2009년)에 다시 한 칸을 더 지었다. 작년(2011년)에는 주방도 한 칸 더 지었다. 매 주일 오전 예배 후에 60~70명 정도 함께 식사를 한다.

 

   성경은 기도의 필요성을 보여 준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였다. 특히 예수님이 친히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 교회 성도들은 기도의 본을 보였으며 바울과 베드로는 기도에 대한 권면을 하였으며 사역 도중에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어려움에 빠졌을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기도는 성도를 향한 예수님의 명령이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신앙의 성장을 이룰 수 없음을 주변에서 늘 보아왔다.

 

     우리 교회는 2012년 연초부터 중직들을 모시고 기도원에 가서 3일 동안 금식기도를 함으로써 올해를 기도하는 해로 삼기로 하였다. 그랬더니 수많은 질병으로 고생했던 한 분이 도시에 살다가 우리 교회 옆에 있는 폐교된 초등학교로 이사를 왔는데 뜨거운 기도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새벽기도 시간과 금요일 밤 기도 시간에 동네가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부르짖는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양애옥 사모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 산성교회  (창골산 칼럼니스트)

 ao-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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