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817호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중년들에게

작성시간12.05.14|조회수6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817호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중년들에게

                     

 

  제18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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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에서 이백 스물 여섯 번째 편지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중년들에게 

 

 

 

 

 

      무엇이 중년기인가? 현대는 많은 사람들이 중년에 대해 혼란스러워 합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이때 중년의 개념도 불분명합니다. 중년의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30 전만해도 60살이면 꼬부랑 할머니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는 60 청춘(?)이라고 합니다. 전에는 60 되면 환갑 잔치를 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환갑 잔치를 한다고 했다가는 비웃음을 듣기 십상입니다. 나이 54, 분명한 것은 나도 이제 중년의 곡선을 넘었다는 것입니다.

 

    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중년은 “청년과 노년의 중간되는 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년은 40 이후부터 60 이전까지 20년을 말한다고 있습니다. 시기는 청소년기가 많은 별명이 있는 것처럼 다양한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퍼지는 40’, ‘실속 없는 50’,  2 사춘기’, ‘성취의 시기’, ‘수확의 시기’, ‘책임의 시기’, ‘샌드위치 세대’, ‘망각의 시기’, ‘불안의 시기’, ‘텅빈 보금자리 시기’, ‘빈둥지 시기’, ‘탈부모기’, ‘적응의 시기’. 이러한 많은 별명이 붙는 것은 지금까지 걸어오던 삶의 주기와 다른 많은 변화와 함께 불안과 흔들림이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년에는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체력과 근력이 떨어집니다. 체중이 복부로 집중되고 머리카락은 점점 늘어나면서 검은 머리카락은 없이 빠집니다. 죽음이 돌연 실체로 다가 옵니다. 자존심이나 자아상에 타격이 있을 있습니다. 전처럼 몸이 강하지 않다 보니 자신이 어딘지 모자라 보입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이룰 없음을 현실로 깨닫습니다.

 

    중년은 인생의 허리와 같은 시기이자 황금기입니다. 그러나 중년은 외롭고 쓸쓸한 시기이기에 아무도 중년에 대해서 말해 주지 않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중년의 때에는 인생의 모든 것을 가져서 사업도, 재정도, 성취도, 사랑도 경험해 연령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겪고 나서 과연 이것이 인생일까 깊은 회의를 갖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의 싱그러움은 퇴색해 가고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노년의 부모를 봉양하고 직장이나 교회와 사회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느라 정신이 없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보고 지금 나는 어디에 와있는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회의와 혼란을 겪으면서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면서 변해 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심각한 충격을 받기도 하는 시기입니다.

 

   성경에서 중년이라는 단어가 (38:10, 시편202:23, 17:11)나오는데 중년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시편 102편입니다. 시의 시인은 인생의 중년을 맞이하는 자의 모습을 표현하면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애절함을 담고 있습니다. 중년을 맞는 사람들은 시의 저자와 같은 동병상련을 느낍니다. 인생의 짧음이 드러납니다. “대저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저가 힘을 중년에 쇠약케 하시며 날을 단촉케 하셨도다.”(3, 11, 23) 노화와 죽음의 과정에 저항하려 하고 건강 상태도 문제가 드러납니다. “ 뼈가 냉과리 같이 탔나이다”(3) 중년에는 몸의 건강이 갈수록 문제가 됩니다. 한마디로 몸에 건강쇠퇴의 분명한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정서적으로도 감당할 없는 그래서 우울증을 유발합니다. 그는 짓밟혀 시드는 풀에 빗대어 마음이 풀같이 쇠잔하였사오며’(4)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삶의 문제를 감당할 없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로 괴로워 합니다. 식욕 상실 때문에 우울해져 갑니다. “내가 음식 먹기라도 잊었으므로”(4). 식욕을 잃어 음식이 맛이 없다고 합니다. 식욕 상실의 결과로 체중이 감소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다”(5) 말합니다. 먹지 않거나 아니면 제대로 먹지 못해 문제가 악화되고 불안과 우울증이 가중될 뿐입니다.

 

   외로움도 그렇습니다. “나는 광야의 당아새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같으니이다”(6-7). 당아새는 죽음직전의 외로움의 상징이요 부엉이는 밤에 외딴 가지에서 홀로 외로이 슬피 울고 있으며 평소에 참새들은 떼지어 다니는데 홀로 참새만 지붕에 처량하게 있습니다.

   원수의 조롱 때문에도 우울합니다. “ 원수들이 종일 나를 훼방하며나를 가르켜 맹세하나이다”(8) 성공의 성취감도 잠시, 다른 사람들이 나의 추락을 기다리고 있다는 무언의 두려움도 수반됩니다. 임박한 죽음에 괴로워합니다. “저가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시며 날을 단축케 하셨도다”(23). 젊었을 때는 삶이 끝없어 보였는데 죽음을 가까운 실체로 보고 있습니다.

 

    인생의 주기는 어느 시기도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없으며 모든 시기가 인격의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렇게 중년의 중요성은 성인 초기 이후에 오는 단계이고 노년을 준비케 하는 선행 단계입니다. 중년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중간지점입니다. 중년은 인생의 내리막을 향해 내려가는 슬픈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 나가는 전환점으로서의 기쁨의 시기입니다. 중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꽃을 활짝 수도 있고 아니면 초라하게 꺾일 수도 있습니다.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육체와 마음은 쇠잔해질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가 멈추기 전까지, 우리의 마음이 다하기 전까지 우리가 땅에서 해야 일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땅에서 우리가 해야 일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땅에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요 세상은 우리를 필요로 한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살아 숨쉬며 움직이는 동안 나의 영원한 분깃이시며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면 이 중년의 때는 분명 우리들에게 축복의 시기일 것입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73:26)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양애옥 사모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 산성교회  (창골산 칼럼니스트)

 ao-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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