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836호 /귀인 방식

작성시간12.06.11|조회수7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836호 /귀인 방식

 

  제18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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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인 방식

 

 

 

 

 

         달리는 지하철 객차 통로 한가운데서 똥을 누고 있는 여성을 한 시민이 사진촬영을 하여 인터넷에 올렸다. 네티즌들은 그 여인을 가리켜 일명 ‘분당선 똥녀’라고 이름 붙였다. 며칠 후 그 당사자가 분당 노선을 자주 이용하는 40대 정신지체 여성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당시 네티즌들은 그 여인의 행위 자체보다도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의 행위의 원인에 초점을 맞추어 열띤 논쟁을 벌였다. 많은 사람들이 추측한 원인으로는 ‘개념이 없는 사람’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의 행동’ ‘술 취해서?’ ‘얼마나 급했으면--’ 등등이었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어떤 행동에 대한 원인 혹은 어떤 사건에 대한 원인을 어떻게 추론하느냐를 심리학에서는 ‘귀인’이라고 한다. 여기서 원인을 추론한다는 것은 객관적 원인이 아닌 불분명한 원인을 주관적으로 지각한 것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주로 원인의 소재, 안정성, 통제 가능성의 세 가지 차원에서 귀인을 분류한다. 그 중 ‘원인의 소재’ 차원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원인의 소재란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이다. 원인을 자신의 내부요인으로 돌리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이나 여건 등 외부요인으로 돌리느냐이다.

 

    자녀가 공부를 못할 때 혹은 성적이 떨어졌을 때 부모는 두 가지로 그 원인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공부하는 습관을 길들여주지 않아서’ 혹은 ‘공부하는 방식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해서.’라고 원인을 돌리는 경우와 그와는 달리 선생님이나 자녀에게 그 원인을 돌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자녀 스스로도 마찬가지이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혹은 ‘노력이 부족해서’ ‘공부하는 방식이 잘못된 것 같아서’라고 원인을 자신의 내적요인으로 돌리는 경우와 ‘선생님이 공부를 잘못 가르쳐주어서’ 혹은 ‘친구 때문에’라고 외적요인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어떤 원인으로 귀인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며 후속 행동과 그 대처방식까지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만일 부모가 자녀의 성적이 떨어진 것을 부모 자신에게로 돌린다면 미안한 마음과 함께 어떻게 자녀를 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자녀가 ‘노력을 하지 않아서’라고 원인을 돌리거나 혹은 ‘선생님의 지도방식이 좋지 않아서’라고 선생님에게 돌린다면 자녀나 선생님에게 화난 감정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비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녀 자신도 원인을 자신의 내부요인으로 돌리는 경우와 선생님이나 부모 혹은 친구 등 외부요인으로 돌리는 경우는 그 감정과 행동과 대처방식이 각각 다르게 나타날 것은 자명하다. 분당선 전철 객차에서 대변을 본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원인을 ‘개념이 없어서’라고 돌릴 경우 분노나 개탄을 할 것이나 ‘다급해서’ 혹은 ‘정신지체 때문에’ 등 어쩔 수 상황으로 그 원인을 돌릴 경우 어느 정도 납득을 할 뿐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기도 할 것이다.

 

    귀인이론은 여러 가지 면으로 적용해볼 수 있다. 교인 간 혹은 목회자와 성도 간 갈등이 발생했을 시 목회자 중에는 그 원인의 소재를 자신의 교회운영방식의 미숙이나 지도력의 미숙 등 내적요인으로 돌리는 목회자가 있을 것이다. 반면 외부요인인 성도들의 신앙 탓으로 돌리는 목회자가 있을 것이다. 원인의 소재를 어떻게 돌리느냐에 따라 목회자의 감정과 행동과 그 대처방식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목회자 자신에게로 돌릴 경우 자신의 교회 운영방식이나 가르침의 내용 혹은 스스로가 본이 되었는지 등을 점검할 것이나 성도들에게로 돌릴 경우 불평과 원망만이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우선 당장은 마음이 편할지 모르나 발전은 없을 것이다.

 

    갈등이 아닌 성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성장의 원인을 목회자 자신에게로 돌릴 경우 자부심이 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나 자칫 우쭐한 마음이 생겨 거만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도들에게 공을 돌릴 경우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성도가 예배에 불출석했을 경우도 적용해볼 수 있다. 한 부류는 ‘권사이면, 집사이면, 성도이면 당연히 예배에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혹은 ‘그 한 시간도 못 낸단 말인가?’라고 귀인할 것이다. 반면 또 한 부류는 ‘그 성도님에게 무슨 급한 일이나 어려운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라고 귀인할 것이다. 어떻게 귀인하느냐에 따라 그 성도에 대한 감정과 후속행동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내 경우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전자와 같이 귀인했으나 지금은 후자와 같이 귀인하고 있는 편이다.

 

     귀인방식은 대체로 성장과정에서 부모 등의 양육자로부터 학습된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학습한 대로 하고 것이다. 자신이나 타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역기능적인 귀인방식을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귀인방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변화를 위해서는 두 단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단계는 자신의 귀인방식을 탐색하고 또한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역기능적인 귀인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할지라도 비난이나 비판이 아닌 ‘내가 지금껏 이런 방식으로 귀인하고 있었구나’하고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지금까지의 방식과 다르게, 자신과 타인에게 유익이 되는 방식인 기능적인 방식으로 귀인을 해본다. 그렇게 하다보면 점차 기능적인 귀인방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송남용목사

(창골산 칼럼니스트)

 wdjl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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