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853호 / 용서의 예수님(눅23:43)

작성시간12.07.02|조회수7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853호 / 용서의 예수님(눅23:43)

                  

 

  제18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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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의 예수님(눅23:43)

 

 

 

 

 

    < 눅23:4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죄도 없으신데 죄인이 되셔서 형벌을 받으셨다. 그것도 아주 극악한 죄인이나 받는 십자가 형벌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인간적으로 본다면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53:7대로 십자가 형벌의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에 아무 말 없이 전적으로 복종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이 극심한 고난이 모두 하나님의 선하신 뜻, 즉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한 섭리에 의한 것임을 아셨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온전히 복종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아셨기 때문에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까지도 기꺼이 용서하셨다. 눅23:34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상태에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용서의 기도를 올리셨다. 비록 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크나큰 죄악을 저지른 자들이었지만, 그 일이 결국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었기에 자신들도 모르는 가운데 사단의 종이 되어 악역을 하고 있는 그들을 도리어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께 용서해 주시기를 중보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는가? 왜 그 고난의 길을 가셨는가? 죄인들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가 아닌가? 따라서 비록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지만 그들을 위한 용서의 중보 기도를 올리신 것은 예수님께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고난까지 받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마18:22대로 형제들이 죄를 범했을 때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5:38-46에서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자신이 악을 선으로 갚으신 분이시기에, 그래서 우리 또한 그런 자신처럼 악을 선으로 갚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자비하신 분이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자비하셔서 비록 우리가 죄를 지었음에도 용서해 주시기에 살 길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용서해 주시지 않으신다면 죄인인 우리가 어찌 지옥 심판을 피할 수 있으며, 어찌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겠는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한 강도를 보라. 생전에 극악무도한 짓을 하다가 이제 죄값으로 십자가 형벌을 받아 죄인으로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순간에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간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은 강도는 예수님께 꿈과 같은 복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눅23:43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생전에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러 십자가 형벌까지 받게 된 강도인데 감히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갈 수가 있겠는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강도를 용서해 주셨다. 그리고 낙원에 받아들여주시기로 결정하셨다. 세상에서조차 정죄 받아 십자가 형벌을 받은 죄인으로 전혀 자격이 되지 않는 강도인데 말이다. 말 그대로 엄청난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우리도 이 강도와 같은 놀라운 복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강도와 같은 죄인이다. 십자가 형벌이라는 극형을 받아 마땅한 죄인들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 그래서 그 은혜로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의로운 자가 되었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강도가 단지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해 주시고 받아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 하나 만으로 낙원에 들어갔듯이, 죄인인 우리도 단지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해 주시고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 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받아 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자. 사55:7-9에서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실 수 있으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죄를 지은 자는 하나님께 나아가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살 길이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래서 도저히 살 길이 없게 된 상황이라 할지라도 마지막 소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강도처럼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면,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오직 은혜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사43:25에서 하나님께서는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사1:18에서 하나님께서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과 관련하여 한 가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근거가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에 대해 마땅히 내려져야 할 심판 없이 그냥 용서하실 수는 없으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을 대신 받게 하셨고,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자 예수님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고난까지 겪게 하신 것이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그냥 용서하는 것은 그래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 도리어 나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놓아야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이 어려운 용서를 예수님께서 친히 하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이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예수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자. 이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로서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우리가 되자.서울대흥교회 담임목사 조남호(010-6310-8728 wpig63@hanmail.net)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조남호목사

[서울대흥교회]

(창골산 칼럼니스트) 

 wpig6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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