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854호 /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작성시간12.07.03|조회수5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854호 /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제18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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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 가운데 9절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신 당신이 친히 화목제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살면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말뿐이 아니고 실제로 당신이 그렇게 하시는 행함이 있는 가르침이었다.

 

    사람은 말은 잘도 하면서 행함은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예수님의 형제로서 어려서부터 예수님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본 야고보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야고보서)” 라고 말하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라고 강권하고 있다.

 

    2012년 6월 7일 오전 9시에 우리 부부는 정읍에 나갔다. <○○○ 법무사> 사무실에서 두 사람을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한 분은 우리 교회의 전(前) 목사님이시고, 또 한 분은 우리 교회 구역에 있는 <은곡사> 주지스님이었다. 내가 바쁜 와중에 왜 이런 일까지 하며 사느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하는 말이 이랬다.

 

    “화평을 위해서야. 주님이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셨잖아.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나 복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아무 말 말고 날 따라 와.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야. 드디어 20년 동안 앙숙이었던 두 분을 화해시키려고 해. 모든 불화에 마침표를 찍어야지.”

 

    오래 전, 아마도 20년 전쯤 되는 어느 해에 우리 교회 구역 안에 절이 하나 들어섰다. 문 목사님은 유별나게 타 종교를 배척하는 경향이 강했다. 물론 목사가 타 종교를 흔쾌히 아무런 비호감 없이 대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어찌 보면 스님도 우리의 전도 대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스님이라고 전도 대상에서 제외하면 안 되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믿는 대상은 달라도 서로 앙숙으로 지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어느 목사님이 말했다. 처음 전도사 시절에 어느 마을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더니 며칠 후에 그 마을의 무당이 찾아와서 “우리 같은 업종끼리 잘 지내봅시다”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전도사님은 그녀에게도 열심히 전도를 했다. 드디어 몇 년 후에 그녀는 교인이 되었고 열심 있는 전도자가 되어 그녀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일이 종종 있다. 스님이 목사가 되고, 무당이 집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20년 전부터 문 목사님과 조 스님은 여러 면에서 서로를 견제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서로 앙숙의 관계로까지 가게 된 것은 성도 한 명이 절 주변의 밭을 팔려고 내놓으면서 시작되었다. 스님은 그 밭을 사야 절터가 넓고 보기 좋아질 형편이었다. 그는 그 밭을 사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밭주인이 성도인지라 그 밭을 목사님이 사게 되었다. 목사님은 은퇴 후의 노후대책으로 그 밭에 나무를 심었다. 그 때부터 사사건건 두 분은 대립하고 갈등했다. 시골인지라 둘은 자주 맞닥뜨릴 일이 있었다. 장례 때, 행사 때, 마을 순회 때, 면사무소 회의 등에서.10년 후에 목사님은 은퇴를 했다.

 

    가까운 곳에 아파트를 마련하여 살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이 후임으로 이 교회에 부임했다. 남편이 이 교회에 오게 된 것은 그 목사님의 도움이 컸다. 남편은 원래 누구에게나 잘 하는 편이지만 자기를 후임자로 세워준 그 목사님에게 각별하게 잘 해드렸다. 그 목사님은 모임 때마다 다른 목사님들에게 말했다.

“김 목사는 나의 친 아들보다도 더 내가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야.”

 

    남편은 스님하고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는 평소에 성도들에게 화평함을 강조했고 실천하려고 했다. 길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고 정읍에 나갈 때면 차가 없는 그를 태워다 주고 장례 때 산일을 할 때도 그를 무시하지 않고 잘 대해주곤 했다. 그리하여 주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문 목사가 후임 하나는 잘 세워두고 떠났네. 난 목사는 다 문 목사처럼 스님을 무시하는 줄 알았더니 김 목사는 차암 사람이 됐어. 예의바르고, 인사성 바르고, 예수의 가르침을 잘 실천하는 것 같아. 요즘 세상에 참 드문 목사야.”

 

   작년에 문 목사님이 연세가 팔십이 되었다. 그토록 팔팔하던 목사님도 늙음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땅에 있는 나무도 팔고 땅도 팔아 죽기 전에 쓰고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남편은 난감했다. 과연 그 나무와 땅을 쉽게 팔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땅은 그 스님 말고는 살 사람이 나서지 않을 것임이 자명했다.

 

   아무튼 시도는 해봐야 하니까 스님을 찾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스님은 옛날의 묵은 분노를 터트리면서 절대 그 땅은 못 팔 거라고 못을 박더라는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나무와 땅을 못 팔도록 절 쪽만 남기고 세 군데 주변의 자기 땅을 파서 낭떠러지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하여 그 땅은 스님의 땅 가운데 있는 섬이 되었다.

 

    몇 번 찾아가서 부탁을 하니 조금 양보를 해주었다. 나무는 다른 사람에게 팔라는 것이었다. 조경업자에게 연락을 해서 나무를 팔았다. 그러나 또 다시 나무를 가져가려고 할 때 스님이 방해를 해서 거의 일 년 동안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빌다시피 하여 나무는 처분하게 되었다.

 

   이제 땅을 스님에게 팔아야 했다. 스님은 20년 전의 가격으로 사겠다고 했다. 목사님을 설득하여 싼 가격으로라도 스님에게 팔기로 했다. 그대로 둔다 해도 이제는 그 땅은 쓸모가 없게 되었다. 그 땅으로 들어가는 길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20년 전의 가격으로 팔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스님은 또 다시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자존심을 세워보는 것이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기다리며 기도만 했다. 앞뒤가 막힐 때에는 잠잠히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 상수일 수 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홍해 바다 앞에 선 모세처럼.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출14:13)”

 

   이 년 넘게 그런 과정을 지켜본 나는 “제발 당신은 두 분 사이에서 빠져. 둘이 싸우든지 말든지. 왜 당신이 끼어들어 그런 고생을 사서 하는 거야?” 라고 말했다. 그 때마다 남편은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에 대해서 되뇌곤 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며칠 전에 스님이 제 발로 찾아와서 땅을 사겠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날을 잡아 법무사 사무실에서 만나 서류를 갖추어 거래를 끝내려는 것이었다. 스님을 우리 차에 태우고 정읍에 갔다. 정읍에서 민물고기 장사를 하는 스님의 부인도 우리의 차를 타고 정읍에 갔다. 매실을 따다 팔려고 어제 밤에 집에 왔다가 간다고 하였다.

 

    차속에서 그녀가 자기도 어렸을 때 교회를 다녔었는데 교회를 다니면 마음이 참 편하더라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려서 교회를 다닌 사람이 남편을 잘못 만나 예수님을 떠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스님부부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녀는 그다지 불교에 심취된 것 같지는 않았다. 과연 그들에게 전도할 기회가 올까 싶었다. 하나님만이 아시겠지.

 

   목사님은 벌써 와 계셨다. 늙어버린 목사님을 보면서 스님은 깜짝 놀랐다. 두 분은 서로 안위를 물으며 악수를 했다. 일을 다 마치자 서로에게 남은 인생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주며 웃는 낯으로 헤어졌다. 돌아오면서 스님이 말했다.

 

    “문 목사님도 많이 늙으셨네요. 그토록 매섭고 초롱초롱하던 눈빛이 이제 꺼졌네요. 호기롭던 기운도 사그라졌고요. 아무튼 우리 둘이 죽기 전에 화해하게 애써 주신 목사님에게 감사드립니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양애옥 사모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 산성교회  (창골산 칼럼니스트)

 ao-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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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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