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859호 / 기도로 응답받는 교회, 전도로 열매 맺는 교회

작성시간12.07.11|조회수6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859호 / 기도로 응답받는 교회, 전도로 열매 맺는 교회

 

  제18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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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로 응답받는 교회, 전도로 열매 맺는 교회

 

 

 

 

 

   매년 연초가 되면 대부분의 교회들은 그 해의 표어를 새롭게 정한다. 오늘날은 정보시대이므로 온 교우들 또는 방문객들이 인지하도록 큰 글자로 플래카드를 만들어 벽에 설치한다. 다른 교회의 성도들이 그 교회를 방문하면 맨 먼저 그 해의 표어를 보고 그 교회의 한 해 목표를 알게 된다. 표어의 세부 내용 형식도 어느 정도 틀이 생겼다. 큰 목표 아래 3가지 또는 5가지의 세부 실천 목표 혹은 비전이 제시되어 있다. 나는 교회들을 방문할 때 전시된 표어를 보고 그 교회의 목회의 방향을 감지한다. 그 교회의 목사님의 목회 철학도 가늠해 본다. 참으로 다양한 표어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목회 철학도 다양하다.

 

   우리 교회는 농촌의 두 개의 리 단위를 아우르는 규모의 자그마한 교회이다. 마을 수로는 10마을이다. 구역 전 인구가 약 450여명 된다. 시골 교회치고는 상당히 많은 인구이다. 등록 교인 수가 70명 쯤 되니 총 인구의 15% 정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아직도 전도해야 할 영혼은 많다. 게다가 대부분의 주민이 노인들이니 시간이 촉박하다. 태어나는 데에는 순서가 있어도 죽는 데에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늙을수록 죽음에 더 가까워지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마음이 바쁘다. 한 영혼이라도 돌아가시기 전에 구원의 방주 안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다.

 

   우리는 목회에 있어서 영혼 구원을 가장 큰 과제로 삼고 있다. 영혼 구원은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발로 뛰어야 한다. 특히 시골 목회지에서는 직접 사람을 만나 수없이 강권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의 성장은 멈춘다. 아니, 뒤로 퇴보한다. 대부분의 성도들의 연령이 많으므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꾸준히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의 힘으로나 노력으로는 단 한 영혼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발바닥에 땀나게 부지런히 뛰어다니면 그 후의 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이루어 가심을 또한 체험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삶 속에서 실감하며 살고 있다. 다른 일에 착념하여 전도에 소홀히 하면 몇 주고 몇 달이고 아무런 열매가 맺질 않는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전도를 하면 당시에는 아무런 성과가 없는 듯해 보여도 금세 한 명 두 명 등록을 한다.

 

   그래서 목사님은 목회 첫 해에 우리 교회의 표어를 <전도하는 교회>라고 설정했다. 몇 년 후에는 전도도 중요하지만 전도에 앞서 기도가 뒷받침되어야겠다는 것을 깨달아 <기도하는 교회>를 첨가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 표어는 <기도하는 교회, 전도하는 교회>가 되었다. 뒷받침되는 말씀으로는 <기도하는 교회>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이고, <전도하는 교회>는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이다. 올해가 11년째인데 11년 동안 표어는 똑같다.

 

   사람의 모든 일은 비슷비슷하다. 성도들도 처음에는 열심을 내고 기도도 전도도 봉사도 뜨겁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다가도 세월이 흐르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느슨해지고 처음 사랑이 식어간다. 우리 교회 성도들도 목사님이 처음에 전도사로 부임하였을 때에는 한 마음으로 뜨겁게 신앙생활을 했다. 연세가 많으신 전(前) 목사님이 계실 때 장로님과 목사님의 갈등으로 14년 동안 성도들의 신앙이 많이 후퇴했었다. 40대의 열정이 넘치는 새 전도사님이 부임한 이후 성도들은 식을 대로 식은 신앙을 회복하여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교회 일도 열심히 했다.

 

   부속 건물이 거의 없이 본당 예배당과 사택만 있었는데 7~8년 동안 필요한 부속 건물들을 전도사님과 성도들이 힘을 합하여 손수 지었다. 인건비가 안 들게 자재비만 들도록 하니 재정이 넉넉지 않은 교회이지만 여러 부속 건물들을 다 지었다. 또한 난방비를 절약하려고 교회와 사택에 나무 보일러와 나무 난로를 설치하였으므로 초창기 2~3년 동안에는 온 교회 성도들이 힘을 합하여 불난 산에 가서 타 죽은 나무를 베어 트럭에 실어왔다.

 

   8~9년 쯤 되었을 때에 성도들의 신앙이 식어가기 시작했다. 기도도 힘이 빠졌고 전도도, 봉사도 시들해져 갔다. 목사 안수를 받은 직후 우리 부부는 고뇌에 빠졌다. 처음 사랑이 식은 성도들을 이끌고 가기가 힘이 들었다. 특히 목사님은 성도들이 새벽기도회 때 맥이 빠져있는 모습에 힘들어했다. 목회지를 옮겨야 하나, 무슨 방책이 없을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목사님은 금식기도원에 갔다. 목사님 본인이 먼저 재충전을 받아야 함을 느꼈다. 8일 금식하고 왔다. 돌아온 후 새벽기도를 2시부터 6시까지 했다. 가정생활에 부담이 되었다. 2시에 기도를 시작하려면 새벽 1시 5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육체적으로 너무 피곤했다. 나는 조정하기를 바랐다. 나는 영혼도 중요하지만 육체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육체가 연약해지면 영혼도 쇠약해지는 법이다. 우리는 대화 후에 3시로 조정하기로 했다. 대신에 사모인 나도 합력하기로 했다. 한 달 정도 나도 2시 50분에 일어나 3시부터 6시까지 새벽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는 조금 무리였다. 나는 3시 25분에 일어나 교회로 나가기로 했다. 지금은 거의 일 년 동안 해왔는데 무리 없이 하고 있다.

 

   목사님과 사모가 기도를 열심히 하니 성도들도 도전을 받아 다시 기도생활을 회복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동역자를 세 분 더 보내주셨다. 그 중 한 분은 기도 없이는 살 수 없는 그런 집사님이다. 젊어서부터 온갖 질병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겪고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자신은 기도하지 않고는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여생을 기도하면서 전도하면서 시골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한 분이다. 그 분은 새벽기도와 금요일 밤 기도 시간에 엄청 박력 있게 부르짖어 다른 교우들도 덩달아 부르짖어 기도하게 만드는 윤활유가 되어 준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목사님이 기도를 많이 하고 열심히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자녀들이 고향 집에 다니러 와서 우리 교회를 출석할 때에 예배를 마치고 가면서 목사님에게 “기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여럿 있었다. 목사님은 새벽기도 시간에 10마을의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를 한다. 그 사실을 온 성도들이 다 알고 있다.

 

   2012년 5월 4일에 군대에 간 아들이 휴가를 왔다. 우리는 8월에나 올 줄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5월 4일 휴가를 온다고 그 전 주에서야 연락을 받았다. 우리 아들은 상당히 세심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아이이다. 아마도 제 생각에 어버이날을 전후하여 부모님 옆에 있는 것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꿈보다 해몽이 더 좋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아무튼 어버이날을 즈음하여 딸도 서울에서 내려와 내가 밥을 사주었지만 온 식구가 오붓하게 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니 기분이 흐뭇했다. 딸은 아직 비정규직인지라 밥값은 내가 내야 했다. 서울에서 비정규직의 월급으로 제 한 몸 먹고 살기도 벅차다. 나는 룸메이트의 차를 타고 온 딸에게 집에 있는 온갖 먹거리를 엄청나게 챙겨주었다. 딸과 딸의 룸메이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딸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엄마, 너무 많아요. 서울의 투 룸이 얼마나 작은지 시골 사는 엄마는 모를 거야.”

“이웃하고 나눠 먹어.”

“엄마, 승용차 바퀴 가라앉겠어요. 어찌나 많이 챙겨주셨는지.”

“밥 굶지 말고 식사 제 때 챙겨 먹어. 서울 살이 하려면 몸이 건강해야지.”

 

    서울로 돌아간 다음 날, 딸은 메시지를 보내왔다.“떡은 두루두루 나눠 먹었고요. 김장김치랑 쌀은 굉장히 맛있네요. 당분간은 부자가 된 느낌이 들 것 같아요.”딸과 아들은 풍선 아트에서 다양한 모양의 풍선을 사서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교회 실내 장식을 멋지게 꾸며주고 갔다. 그 주의 수요일 밤과 주일날에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감동을 받았다.

 

    그래픽 디자인을 잘하는 아들은 예배당 안의 출입문에 두 개의 플래카드를 디자인하여 신청해 주었다. <기도로 응답받는 교회>와 <전도로 열매 맺는 교회>의 디자인이었다. 출입문 유리창을 통해 낮에는 앞 쪽의 모니터에 햇빛이 비쳐서 찬송가 가사가 잘 안보였다. 어떻게 비취는 햇빛을 가릴까 하고 오래 전부터 고심했었다. 가장 싼 가격으로 해결할 수 방법을 모색하던 중이었다.

 

    상단의 긴 유리에는 “산성교회에 오신 당신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플래카드를 부착했다. 두 짝의 유리문에는 <기도로 응답받는 교회>와 <전도로 열매 맺는 교회>를 큰 글씨로 하고 기도와 전도에 해당하는 성경 말씀, 빌립보서 4장 6절과 디모데후서 4장 2절 말씀을 작은 글씨로 썼다. 우리 부부는 아들과 함께 플래카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기도하는 교회>와 <전도하는 교회>를 좀 더 디테일하게 <기도로 응답받는 교회>와 <전도로 열매 맺는 교회>로 수정하기로 했다. 일석이조였다. 햇빛도 가리고 성도들에게 목회 방향도 분명하게 제시하게 되었다. 바깥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플래카드가 눈에 띄게 된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많이 순진하다. 계산할 줄을 모른다. 경제관념도 좀 희박하다. 약간 저돌적으로 행동할 뿐이다. 무계획적인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가끔 나의 핀잔을 듣는다.

“제발 계획을 잘 세우고 계산해가면서 해요. 그렇게 무대포로 밀고 나가지 말고. 당신은 나 없으면 어떻게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갔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한 가지 내가 인정하는 것은 그가 나보다 훨씬 더 순수하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함이 있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너무도 부족한 자신을 주의 종으로 세워 주신 것에 감사하여 오로지 기도와 전도로 목회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그 마음만은 변치 않고 목회에 임하고 있다. 열악한 농촌 교회의 현실을 대했을 때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마음으로 “주님, 한 분 데려 가실 때마다 두 명씩 보내 주세요”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 교회에 부임할 당시에 여타의 농촌 교회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구성은 주로 노인들이었고, 주님께 갈 날이 얼마 안 남은 그런 분들이었다. 놀랍게도 일방적인 요청 같은 기도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가납하시었는지 10년이 넘게 반드시 한 분 데려 가시고 나서 두 분씩 보내주셔서 오히려 성도들의 수는 많이 늘었다. 그리고 10년 동안 다른 교회에 비해 그리 많이 돌아가신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아마도 하나님께서 보내줄 두 분이 아직 마련이 안 된 모양이라고 말하면서 웃는다. 그리하여 지금은 90대 되신 성도들이 네 분이나 되고 80대 되신 성도들은 열다섯 분 정도 된다.

 

   남편은 목회 초부터 전도에 엄청 관심을 기울였다. 신대원에 다니면서 카풀하는 차 속에서 오며 가며 전도한 이야기를 하면 어느 전도사님은 “지금도 농촌에서 전도가 됩니까?”하고 묻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전도는 하면 반드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확신하며 꾸준히 전도에 열심을 냈다. 그랬더니 목회 후 몇 년 후에 어떻게 연결이 되어 안양 Y교회에서 3년 동안 전도캠프를 열어주었다. 여름철에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자비로 자원한 성도들이 30~40명씩 와서 3일 동안 각 마을을 샅샅이 순회하며 전도해 주었다.

 

    이 지역의 복음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즉시 맺어진 열매는 몇 명 안 되었으나 그 일을 계기로 그 후에 꾸준히 새 신자가 등록을 하게 되었다. 그 일을 통해서 우리 교회 성도들도 전도의 맛을 조금 알게 되었다.

 

   연초가 되면 목사님은 올해의 전도의 목표는 일인당 한 명씩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매 주 광고 시간에 한 명의 전도를 부각시킨다. 어떤 분들은 귓등으로 흘려보내기도 하지만 특히 장로님과 권사님들은 교회 부흥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전도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 권사님은 반드시 한 명의 전도를 열매 맺게 하려고 몇 달 전부터 만사를 제치고 그 집의 일을 도맡아 해주면서 한 영혼을 전도했다고 한다. 막바지에 이르러 한창 일손이 딸린 때, 즉 복분자 순자르기를 할 때에는 다른 권사님들까지 대동하여 그 집의 일을 해줌으로써 드디어 그 분은 그 주일부터 교회에 등록하고 우리 교회 성도가 되었다.

 

    아마도 우리가 이 교회에서 목회를 마치기까지 우리 교회의 표어는 <기도로 응답받는 교회, 전도로 열매 맺는 교회>가 될 것 같다. 아직까지는 다른 것으로 표어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다. 물론 온 성도들도 이에 이의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목사님의 목회 철학이 바로 ‘기도와 전도’이고,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목회자의 목회 철학이 하나님의 뜻에도 일치한다고 생각하므로 목회자의 목회 방침에 즐거이 순종하기 때문이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양애옥 사모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 산성교회  (창골산 칼럼니스트)

 ao-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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