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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얘기하라면 마귀, 사탄, 괴물, 외계인, 죽은 사람, 산 사람 등을 거론한다. 외적인 모양이 험악하거나 등골이 오싹거릴 수 있는 존재를 만나게 되면 그 어느 누구도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진정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무서운 사랑을 경험해 보지도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운운하는 것은 아직도 그 어마어마한 사랑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무서운 사랑을 경험해보려고 금식도 하고 기도를 무섭게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무서운 사랑을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무서운 사랑에 안착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많은 분들이 인생의 삶 속에서 문제해결의 열쇠를 얻으려고 자신의 육체에서 솟아올라오는 본성을 죽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수많은 수도사들이 고행을 해온 것처럼 육신을 쳐가면서 금식도 하고 밤새우며 기도하는 등 엄청난 고행을 감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기도와 고행을 열심히 하고 난 뒤 자기 방법대로 해결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 옛 사람인 내가 처리하는 것은 바로 육신적인 생각과 행동의 발로이며 죄의 본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옛 자아가 가득 차 있는 상태가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옛 자아를 처리하지 않으면 기도하면 할수록 잡음이 들려와 기도를 전혀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조용히 기도하면 안 되는 이유는 먼지가 가득한 매트리스는 조용히 두들겨서는 속 먼지가 나오지 않듯이 펄펄 뛰고 뒹굴면서 주위가 난장판이 되도록 기도해야만 된다. 스며들어 있는 옛 자아를 처리하기 위해서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패야만 속 먼지가 나오듯이 자신의 가슴을 치며 자학스러운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부르짖고 난 뒤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자신의 혼을 잠재우고 영적 세계에 돌입하는 영의 기도는 내면세계를 대청소하는 차원이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하나님의 음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눈으로 의식할 수 있는 깨달음의 차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인해야 하는데 그 말씀을 찾지 못하고 또 다른 세계에 몰입하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혼의 찌꺼기인 잡념을 뿌리치려고 얼마나 용을 쓰고 있는지....... 용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와 함께 자라나야 한다. 그런데 주와 함께 자라려고 내가 노력한다고 자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라나야 한다.
영적 대청소를 하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기도를 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먼저 마음의 세계가 주와 합일치가 되지 않으면 어떤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기도하기 전에 나를 다스려 달라고 하는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초청의 기도를 해야 된다.
그런 기도를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자신의 입장만 표명하는 기도자체가 성경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기도를 제대로 하려고 찬송을 하기도 하며 일명 준비 기도를 하는 분들이 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묵상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는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이다. 말씀은 위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공중하늘인가? 아니면 내 안에 하늘인가?
지난번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 책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입에 있으며 내 마음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피력한 바가 있다.(신 30:14)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행동하는 것이 정상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새 사람의 행동이 돌출될 수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천사의 흉내를 낼 수 있으며 거룩한 모습을 표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먹거리면서 천사처럼 가장할 수 있으며 거룩한 주의 종처럼 위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뜻에 따른 행동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 없이 새 사람의 행동이 나오는 것이 바로 가식이며 위선과 왜곡의 산물인 것이다.
지난번에 언급한 것처럼 만 번 이상 성경을 읽지 않는 상태에서 백 번의 기도를 할 수 없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런데 성경의 깨달음보다 기도부터 하려고 앙탈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 중에도 설교보다는 성경강해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달되어져만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왜 영적 대청소를 하려고 하는가? 더러워서인가? 아니면 생명의 본질인가? 신앙인은 주와 연합이 되면 생명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나는 생명의 떡이라는 떡을 먹으면 키가 자라고 살이 찌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라게 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내 인격이 자라게 되면 생명이 충만하게 된다.
세상에 살다보면 집 안팎에서 세균을 묻혀 들어온다. 그것을 없애려고 손도 씻고 옷을 세탁하며 살균소독도 하고 청소도 하며 집 안을 깨끗이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치우면 치울수록 돌아서면 머리카락과 먼지는 쉼 없이 들어온다. 치워도 끝이 없다는 것이다. 옛 자아와 새 사람은 끊임없이 충돌이 일어나면서 먼지와 쓰레기를 계속 생기게 되어 있다.
그런 충돌이 제일 많이 일어나는 곳이 세상일수도 있지만 교회 안이라는 사실이다. 거기서 득실거리는 세균과 먼지를 가지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선악과를 먹는 것보다 더 많은 독을 먹고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먹고도 죽지 않았다고 번듯하게 살아가고 있는 착각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인천에서 가장 큰 교회에 볼 일이 있어 방문했다가 목격한 풍경은 구역장의 모임이 끝난 뒤 지하 카페에 모여 대화를 하는데 들리는 소리들이 뭉쳐서 보인 환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영적인 말씀을 듣고 나와서 육으로 쏟아내는 장면이었는데 얼마나 무서운 독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독으로 인해 수많은 영혼들이 죽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 속에 은혜 받은 간증과 고백도 있었지만 그보다 세상의 소리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서울 어느 모 교회에서 1부 예배가 마치고 찬양대에 모이는 곳에 가끔 가서 들어보면 세상에서 일어난 대화가 대부분이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도 거론하기도 하며 신앙 간증과 고백들이 있지만 집안 얘기부터 시시콜콜 여러 가지 잡다한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자기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앞에 가서 고작 몇 번 얘기하고 난 뒤 자기 자신의 능력과 방법으로 해결해버린다. 문제가 생기면 100번 이상 질문하고 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명 가수는 자신의 신곡이 나오면 200번 이상 부른 뒤 나와서 신곡 발표를 하는데 하물며 자신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한두 번 만에 끝을 보려고 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방해는 악한 영들이 귀를 막아버리고 잡념이 생기게 하며 영의 기능과 마음을 묶어버리며 의심케 하는 등 끊임없이 옛 자아와 새 사람이 충돌할 수 있는 요소들을 몽땅 끄집어내어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비슷하게 들려주는 방법이 바로 에덴동산에 이미 밝혀진 바가 있는데 불구하고 거기에 다 속아 넘어간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시록 1:3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예언을 정확하게 철저하게 읽고, 듣고, 지켜야만 복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담과 하와가 속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비스무리하게 들려준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 어느 누구도 속아 넘어가도록 우리의 영적 기능을 마비시키며 내면세계를 혼돈하게 하고 공허하게 만들며 흑암이 깊음 위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창 1:2)그래서 들려오는 음성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마귀사탄으로부터 온 것인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예배 가운데서 발견해야 하며 삶 속에서 사용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도로 인해 들려오는 음성이나 환상에 의존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감을 터득해야만 문제가 문제같이 보여 지지 않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마귀사탄의 임재가 임하면 불안, 초조, 격동, 두려움, 사망의 그림자가 엄습하여 문제가 더욱 크게 다가오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감을 터득하게 되면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가 더욱 확장되어지며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아래 보호를 받게 된다. 이것은 영적인 테크닉이나 방법의 노하우가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감이 나타나는 것이다. 주님과 관계성이 올바르게 형성된다면 영적인 눈이 열려지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상태가 자주 있었다. 한국교회가 영적인 대청소를 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교회뿐만 아니라 단체 기관을 포함하야 성도들 개인까지 영적 대청소, 신앙대각성대회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래가지고는 안 된다는 주제아래 내면에 쌓인 묵은 때를 벗겨내야만 한다. 성경과 기독교 위에다 쌓아 놓은 쓰레기더미를 걷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폐기물이 쌓여 있었다면 악취가 나고 세균으로 인해 생명에 위협적으로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언급을 해도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도 남의 집에 불이 난 것을 구경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뎌진 영적 기능을 바로 세워 촉각을 곤두 세워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르게 듣는 안테나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도록 정확하게 철저하게 읽고 듣고 지키는 삶이 되도록 영적 대청소를 감행해야 할 것이다. 틈새에 끼어 있는 묵은 때를 말끔히 청소하는 것이 하루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해야만 할 것이다. 만약에 주님께서 내 집에 오신다고 하신다면 청소를 아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깔끔하게 청소해 놓을 것이다. 사실은 이미 내 집 와 계시지 않은가? 나와 함께 동행 하는 삶이 되었다면 영적 대청소를 하지 말래도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무감각하게 청소를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도록 아주 교묘한 마귀사탄의 작전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무서운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면 첫 사랑을 경험한 초심(계 2:4)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처음 경험한 자리로 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내려가야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도달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와 섭리라고 한다면 영적 대청소를 반드시 감행해야 할 것이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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