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성숙에로 나아가려면
본문 말씀 = 히6:1-3 참된 신앙(信仰人)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은혜를 갈구하며 더욱이 그를 영접(迎接)하여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를 말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신앙은 구원의 복음에 대한 지식이란 지성적 요소, 구원에 대한 기쁨과 감격이란 감정적 요소, 그리스도만 믿고 살려는 의지적 요소(要素)를 지닙니다. 또한 이러한 신앙(信仰)은 살아 숨쉬는 것으로서 생명력(生命力)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 생명력(生命力)은 근본적(根本的)으로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 싹트며 형성되는 개인적(個人的)인 신념과는 완전(完全)히 다릅니다. 신념은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자라납니다. 반대로 신앙은 자기의 고집과 성품을 죽이며 위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음으로써 자라납니다. 그런데 신앙은 그것을 받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태도(態度)에 따라 계속 자라날수도 자라나기를 멈출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공급은 받아들이는 자의 영적 게으름이나 불신 때문에 지체되기도 합니다. 구약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와 인간(人間)의 끝없는 불신(不信), 그리고 그로 인한 이스라엘의 불행이란 과거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에 오늘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 신앙적 타성에서 벗어나 영적 전진과 성장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고 도전을 주고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계속적인 은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아이의 수준에서 머뭇거리는 우리들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앙의 완전한 성숙(成熟)에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시간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먼저 말씀의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 서신을 받는 교우들의 영적 상태를 꾸짖고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수용하는 긍정적인 면모를 보였으나 이내 곧 유대교의 핍박과 미혹(迷惑)에 넘어가 그 신앙이 더 이상 성장(成長)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먼저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라"(1절)는 경고(警告)를 받습니다. 곧 말씀의 기초 기본 교리(敎理)에만 더 이상 머물러 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버리라"는 말의 원래 뜻은 "그것으로부터 떠나 출발하라"는 의미입니다. 즉 말씀의 기본 진리들에만 계속 머물지 말고 그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더 나아가라는 권면입니다. 이 말씀은 말씀의 기초(基礎)를 소홀이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전제(前提)로 하여 더 앞으로 나아가라는 충고인 것입니다. 사실 말씀의 기초는 성장의 방향을 결정(決定)하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즉 그 중요성은 건물의 기초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견고한 말씀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노력(勞力)은 멀리한 체, 눈에 드러나는 봉사나 활동으로 성급하게 뛰어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씨를 심고 기초 공사를 다지기 보다는 열매를 먹고 다 지어진 건물(建物)에 빨리 들어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에는 신앙의 바른 성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마7:24-27, 눅6:48-49). 오늘 본문(本文)은 히브리서 서신(書信)을 받아 보는 교우들에게 말씀의 기초(基礎)들을 여섯 가지로 말합니다. 곧 회개, 신앙, 세례, 안수, 부활, 심판 등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속속들이 알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신앙(信仰)을 이러한 말씀들의 기초(基礎)들에 비추어서 명백히 하여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초대(初代) 교회 보다도 더 복잡한 우리 시대에는 더 분명하고도 바른 말씀의 기초(基礎)가 필요합니다(히2:1-3). 그럴 때에 우리는 손쉽게 뒤로 물러서거나 타협하거나, 성급한 봉사에 뛰어들지 않게 될 것입니다. 2. 신앙의 장성한 분량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완전한자로 세우려 하심"입니다(골1:28). 우리는 중생(重生)을 통해서 완전히 하나님의 자녀(子女)가 되었지만 생각이나 행동(行動)은 여전히 범죄함에 노출(露出)되어 있으며 거칠기만 합니다. 중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지셨다는 선언(宣言)과 보증(保證)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격의 완전한 성숙이 중생(重生)과 동시에 성취(成就)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온전한 모습은 중생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될 기초를 닦은 뒤, 성령의 인도(引導)와 도우심으로 본인의 결단과 노력에 따라 점차 죄의 부패에서 떠나 성결케 되고 점차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성화(聖化)의 과정(過程)을 통해 이루어 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전(如前)히 나약하고 불안정한 자신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다고 해서 또한 구원을 보증(保證) 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신앙이 성장해 가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말씀의 기초(基礎)를 다졌다면 이제는 그 기초에서 출발하여 더욱 장성한 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행해지지 않는 진리(眞理)란 있을 수 없습니다.
진리는 행함으로 입증되고 또 진리를 행하는 자만이 진리 안에서 성장(成長)하게 됩니다(마7:24-29). 그리고 진리(眞理)를 행해야 할 영역(領域)은 개인적인 신앙 생활이나 교회 생활에서 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과 발길이 닿는 모든 생활의 영역에서 진리를 행함으로 우리는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凡事)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25)고 증거(證據)합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명령(命令)이기도 합니다(마5:48). 우리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변명으로 말씀의 명령을 피(避)해가서는 안되겠습니다. 3.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이어야 합니다. 우리 중에 우리 자신의 힘으로 죄(罪)에서 구원함을 얻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 앞에 닥쳐오는 힘겨운 영적 도전들을 혼자의 힘으로만 이겨낼 수 있는 자도 없습니다. 우리는 죄(罪)로부터 건짐을 받아서 이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分量)에 이르도록 자라가야 하지만 그렇게 자랄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우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완전한 데로 나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3절). 그러나 여기에서 조심(操心)해야 할 것은 이 말씀이 우리가 이 땅에서 완전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리는 사실입니다. 소위 "완전주의" 교리를 펼치는 자들은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완전에 도달(到達)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에 이세상에서 우리가 완전해 진다는 것은 성경(聖經)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가 육체를 벗어 버리는 날까지, 그리스도의 장성(長成)한 분량이 충만(充滿)한데 까지 완전하여 지기를 힘쓰되 그것의 최종적인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엡4:13, 벧전5:10). 그런데 완전(完全)한 데로 나아가는 것 곧 성화를 이루는 주관자는 우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속에서 거룩함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 협력(協力)하고 복종하는, 즉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이 중심이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요15:4). 곧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안에서 죄(罪)에 대하여 민감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 안에서 영적인 진보를 이루는 모든 일들을 찾아 행할 뿐 아니라 도덕적인 선(善)을 행하는 일에 있어서도 적극적(積極的)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실 때 우리의 신앙(信仰)도 올바로 성숙(成熟)해 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든 시대가 그렇지만 우리 시대는 더욱더 성숙한 신앙과 성숙한 신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에 성숙한 신앙인(信仰人)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이 시대의 신앙의 타락상을 성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고로 우리가 성숙한 신앙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의 분명한 기초(基礎)가 다져져야만 합니다. 말씀의 기초 없이는 쉽게 신앙의 방향(方向)을 잃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말씀의 기초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더 예민(銳敏)한 영적 자각력(自覺力)과 성숙한 예배(禮拜)와 봉사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자칫하면 하나님을 명분상으로만 의지한 채 인간의 의지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철저(徹底)하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 성장을 이루어 이 시대(時代)에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들을 위한 겸손한 도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그랜드 종합주석 >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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