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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원 3학년, 교육 전도사 시절 때의 일이다. 그날도 예배 하러 오는 성도들에게 “어서 오십시오. 그 동안 평안하셨지요?” 인사를 하며 예배당 출입구에서 성도들을 반겼다. 평소 같으면 으레 기쁜 마음, 반가운 마음으로 했을 테지만 그날따라 묘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무엇 하려고 신학을 해가지고 이렇게 맨 뒤에 서서 교회에 오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고개 숙이며 ‘어서 오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하며 인사나 하고. 내 꼴이 이게 뭐냐?’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며 두 눈에서 눈물이 곧 터져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예배 중에도 자꾸 눈물이 나 눈을 깜박거려 보았지만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특히 찬송을 할 때에는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간 남에게 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 갑자기 신학공부를 하고 전도사가 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예배가 끝나자 또 문 옆에 서서 ‘안녕히 가십시오, 평안하세요.’라고 고개 숙여 배웅인사를 한 후 서둘러 교회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서울 고척동 밤거리는 어쩌다 한두 사람이 지날 뿐 한산했다. 눈물은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하나님!’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그러다 마침내 통곡으로 변하고 말았다. 한참을 울고 나니 마음이 시원해졌다. 아니, 그날 밤에는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하나님, 이런 일로 다시는 울지 않겠습니다.” 그날 밤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맨 뒤에 서서 오는 성도들마다 고개 숙여 인사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높임을 받고 섬김을 받는 것은 흐뭇하고 기분 좋은 일이고, 허리 굽혀 섬기는 것은 초라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후 깨달은 사실은 섬김은 낮은 자, 모자란 자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섬김은 넉넉한 자, 성숙한 자가 아직 넉넉지 못한 자, 성숙치 못한 자를 위해 하는 것이었다. 섬긴다는 것은 부끄럽고 초라한 일이 아니라 성숙의 증거였다. 모자란 자는 결코 섬길 수가 없다. 아직 채워야할 것이 많아 베풀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채울 것이 많지만 전도사 시절에는 더더욱 채울 것이 많아 섬기는 자는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까탈스런 남편을, 성도를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리며, 받아주며 기도해주는 아내와 성도는 성숙한 사람이다. 친찰료로 만 원짜리를 내는 환자에게 ‘다음부터는 꼭 잔 돈 준비해오세요.’라고 두어 차례 다짐을 받듯 말하는 공무원보다는 매일 아침 수고를 마다않고 환자들을 위해, 시민들을 위해 잔돈을 준비해놓은 공무원은 성숙한 공무원이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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