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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중순 장맛비가 주일에도 내린다.우산을 챙겨 예배에 늦지 않으려 5분 거리도 안 되는 교회에 갔다.비가 와서인지 예배 시간이 다 되어가도 사람들이 오지 않고 예배당은 텅텅 비어있다.생각해보니 언제부터인가 습관성 지각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11시부터 찬양으로 예배가 시작된다. 그러다 보니 자동적으로 늦어진다.찬양도 예배라는 것은 다 안다. 하지만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지금은 결혼을 하여 25년이 되었지만 청년 때의 예배의 모습을 생각해보니 준비찬송이라고 그 당시는 그렇게들 불렀다. 예배 30분 전이나 한 시간 전에 나와서 찬양을 불렀던 기억이 난다. 인도자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에는 각자가 주시는 마음으로 “몇 장 부르시겠습니다.” 하면 다른 사람도 함께 불렀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준비찬송이라고 부르면 다들 한 마디씩 한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나 실상은 모두 주님께 드려지는 예배이기 때문에 그리 따지지는 않지만 간혹 따지는 사람은 엄청 따지기도 한다.따지고 들자면 ‘하나님 축복해주세요’ 라는 말도 잘못된 것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나님이 다른 곳에 빌어 주는 복 이라나 뭐라나 여하간 한자로 그렇단다)
사실 주일인 오늘 교회에 노숙자분이 오셨다. 몇 년 동안 오신분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노숙생활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되고 알게 모르게 교회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 오신 분은 몇 주 전 자신의 노숙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신 분이다.항상 오시면 인사를 깍듯이 하신다. 이곳에 오면 사람대접해 주신다며 말씀하시는 분이다.
다른 곳에 가면 엄청 매정하게 대한다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하시는 분이신데 어느 날 “이제는 이야기 하실 때도 되지 않으셨어요?” 라고 질문을 던졌더니 바로 눈시울을 붉히며 가슴을 치셨다. 약속하신 날 오시지 않아 걱정을 했는데 몇 주 전 오셨을 때 더욱 말라서 얼굴이 반쪽이 되시고 곧 쓰러질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병원에 계셨단다.그분의 사정을 일일이 다 나눌 수는 없지만 오늘 하고자 하는 말은 그분을 통하여 주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난 번 오셨을 때 서울역에서 주무시다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하시면서 헌 가방 있으면 좀 달라고 하셔서 교회에 배낭가방은 없고 젊은이들이 앞에 차고 다니는 조그마한 가방이 있어 급한 대로 챙겨드렸다. 그분은 가방 속에 있는 옷이랑 세면도구를 잃어버려 너무나 안타까워 하셨다.“다음에 오시면 치약이랑 세면도구 챙겨 드릴게요.” 라고 말씀드리고 교회 식구들에게 알렸다.
헌옷이나 속옷 사놓고 안 입는 것 있으면 좀 챙겨 달라고 요즘 소통의 수단인 카카오톡으로 날렸다. 하지만 다른 것에는 반응이 뜨거운데 아무 반응이 없다.결국 아무런 것도 기대할 수 없고 우리 집에 있는 치약이라도 챙겨 드려야지 하는 마음을 가졌었다.그러나 장맛비에 내 마음이 녹아버렸나 잊어버리고 그냥 교회에 갔다.
교회에 가서야 생각했지만 다음에 꼭 챙겨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미뤘다.점심 식사가 끝난 후 모두들 오후 예배를 위해 분주하고 각자들 모여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때 노숙자분이 오셨다.물론 우산을 챙기고 오셨지만 옷은 비에 젖어 그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피골이 상접한 그 모습을 보니 치약이라도 챙겼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추워 보이기까지 한 모습에 지난 번 급하게 드린 작은 가방을 앞에 메고 오셨는데 미안한 마음에 따뜻한 물 한 그릇 드리지 못했다. 천 원짜리 두 장을 들고 나갔더니 두 장을 다 받지 않으시고 천원만 받아 가신다.계단을 내려가시는 모습이 너무나 처량해 보였다.좀 더 사랑으로 품고 챙겨 드리지 못함에 내 마음에 비가 내렸다.
눈물을 감추려 해도 자꾸만 가슴이 우니 눈에는 눈물이 고여 눈을 감아 마음을 다스렸다.주님 찾아오셨는데 외면하는 자와 같은 어리석은 나 자신과 또 성도들의 모습이 너무나 가식적으로 보여 실상은 분노가 치밀었다.오후예배 시간 성도들이 서로 축복 송을 부르며 사랑을 고백한다.그러나 내 마음은 이미 닫혀버렸다.
누구를 사랑하라는 것인가? 우리끼리만 서로 사랑하는 것인가? 서로 얼굴을 보며 손을 내밀어 부르는 축복 송은 내게는 사치였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고 고개를 숙였다. 계단을 내려가는 그 노숙자 분의 뒷모습에서 예수님을 보았다. 우리끼리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어리석은 모습으로 보였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가로수의 은행나무가 그저 아무 내색 없이 하늘 눈물을 맞고 있다. 내 마음도 그저 소리 없이 울었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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