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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를 계속 글을 쓰다가 중단했더니 독자들이 계속 이어져갔으면 바램으로 연락을 취해왔다. 오늘은 여호수아 12장의 내용인데 1~6절 까지는 모세 휘하에서 정복된 요단 저편(해 돋는 동편)에 있는 시혼과 옥과 그에 따른 영토를 정복하여 르우벤과 갓, 므나셋 반 지파에게 각각 기업으로 나누어 주었다.
7~24절 까지는 여호수아에 의해 요단 서편에 있는 31왕들을 정복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님과 함께 충실한 삶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진정한 안식이 주어지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반드시 멸해야 하는 명령에 말을 듣지 않고 진멸하지 않은 곳에는 타협과 패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이것은 이 땅에 주님과 함께 연합되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반영구적인 원칙이다. 그런데 기도와 금식으로 용을 쓰다가 안 되면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버리는 것이 바로 세상과 타협을 함에 따라 항상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교회에 와서는 영락없이 패잔병의 모습인데 그렇지 않다는 모습으로 앉아 있으니 얼마나 가관인가?
이런 부류에 속해 있는지도 모르고 자기는 괜찮은 줄 알고 옆 사람보고 웃고 조롱하고 있으니 말이다. 영적 거울인 성경에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고서 그런 상태인 것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봐야 하는 이유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설령 하나님의 말씀을 본다고 하지만 자신에게 유익한 말씀이나 은혜를 줄 수 있는 말씀을 찾아서 읽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세상의 사고방식에 지배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다만 성경에 이름이나 숫자만 기록한 내용에서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도 마태복음 1장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를 낳았다는 내용이 산부인과 족보인 줄 알았고 남자가 남자를 어떻게 나게 하는지 의구심만 갖고 있었다. 그러나 구약의 전반적인 내용을 마태복음 1장 신약의 첫머리에서 거치고 난 후에 신약의 내용을 접해야 한다는 신비로운 뜻을 차후에 알게 되었다.
예수님 발아래서 은혜를 갈구하는 마리아가 앉아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누가 10:39)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되는 존재는 바로 이런 존재를 의미하고 있다. (누가 8:35)
지금 내가 어디에 앉아 있어야 되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은 자신의 처신을 가장 잘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발(바시스) 이란 단어는 기초, 힘, ‘걷다’라는 동사에 파생된 단어로 천국이란 단어로 이어져 있는데 바로 천국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에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성령께서 모든 말씀을 탐내다시피 하여 먹기 때문에 12장에 있어서의 승리의 일람표와 같은 내용도 독자들에게는 흥미로 나타나는 것이다. 필자도 하나님의 말씀 중에 어느 것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아마 창세기 5장이나 마태복음 1장을 좋아한다고 하면 다른 분과 달리 독특한 내용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1~6절에는 요단 동편 광야에 있어서는 이스라엘은 두 사람의 왕을 정복함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서편 가나안에 있어서는 31명의 왕을 정복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나 있는 지극히 크고도 귀한 약속의 모든 것을 요구도 하지 않고 받는 일도 없이 머물러 만족하고 있는 자는 죄와 육과 세상에 대하여 얼마 뿐의 승리 밖에는 승리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승부근성을 가진 사람은 완전한데까지(히 6:1~2) 나아가는 사람들로 엄청난 승리를 얻게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함에 따른 도의 초보를 버려야 할 때가 왔다. 그런데도 아직도 기초를 쌓는 일에만 전념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아야 하는데 계속 기초를 닦아가고 있다.
한번 빛을 보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가 된 적이 있다면 그것을 자꾸 반복하고 싶어서 매주 영성컨퍼런스가 있는 곳에 찾아가 컬컬한 심령을 채우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은사를 주셨다함을 믿는다고 해놓고(롬 8:32) 강의가 끝나고 난 뒤 오늘 밤에 빡세게 기도해야겠다는 기가 막힌 망언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기가 막힌 은사가 자기에 임하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라도 생활 속에서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마지막에 불사름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은혜의 단비를 맞으면서 합당한 채소를 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12장에 얼마나 명백하게 개별적으로 기록된 31명의 왕들 무찌르고 승리하게 된 것을 읽는 것이 매일매일 승리하게 되는 감동과 격려를 받게 하는 것이다. 꼭 30의 승리가 아니라 31의 승리여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승리는 사람에게는 흥미 없는 작은 것으로 생각될지 모르나 하나님의 눈에 중요한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에는 귀한 것이다.
적에 대한 어떠한 승리도 하나님의 뜻에는 작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큰 승리, 작은 승리를 구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승만 찾지 말아야 한다. 그 어느 적이라도 얕잡아 봐서는 안 되는데 너무나 얕잡아 보다가 아주 처참하게 패배하는 경우를 일반 스포츠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 중의 정밀한 수를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초생아의 수 다윗의 용사의 수, 요한복음 21장의 물고기의 수 등도, 유익한 성경연구의 제목이 된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왜 돌멩이를 다섯 개를 가져간 목적과 이유를 말씀을 견주어 전했더니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감동을 나누게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요단에 들어간 후 이들 31 왕을 정복한 일은 거룩하게 된 후에도 아직 남아 있는 죄를 하나하나 처분해야 할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는데 그 설은 순간적인 거룩을 가르치는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죄에서 단번에 거룩하게 하시며,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때, 단번에 죽게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죄는 성경의 죄와 세상의 죄를 동일 시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안에 존재하고 계심을 모르고 있는 상태를 죄라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무지 속에, 혼돈과 공허 속에 사로잡혀 있는 그 자체가 바로 죄의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것이 흑암 중 깊은 나락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죄의 뿌리인 옛 사람은 이미 처분되어 있는 아직 오만함이라든가, 성급함이라든가가 남아 있다고 생각할 것은 아니다. 거룩해져도 아직 죄가 남아 있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죄의 성질은 거룩해져 죄의 능력에서는 해방되었다고 할지라도 거룩해진 생애에도 싸움은 계속 일어나게 되어 있다.
즉 공중의 모든 권세를 잡은 자, 즉 하늘에 있는 악의 영과 싸우는 것이다.(엡 2:2, 6:12) 이 악령과의 정면충돌은 천국 백성이 된 자가 경험해야 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전달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본질과 원형을 찾아 나서는 것을 막아서는 악한 영들과 끊임없이 싸워야만 되는 것이다.(영화 ‘일라이’를 참고) 이것이 31왕이 보여주는 교훈으로 신앙과 복종에 의해 연전연승은 보장된 것이다. 우리 앞선 신앙의 선배들이 싸워 이겨낸 것을 본받아 우리가 그와 같은 싸움에 참여하여 승리하게 된다면 연전연승이라는 것이다. 선배들의 승부근성을 본받아 승리하는 싸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하신 대로 우리 싸움의 도구로서 내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싸우시는 것이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씀을 토대로 싸움을 임하게 된다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다.(삼상 17:47)
이런 자신감을 갖는 것이 바로 영적 승부근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듯이 나 혼자만 싸우려고 안간 힘을 쓰거나 용을 쓰지 마라. 내 안에 있는 그 분께서 나를 통하여 싸우시는데 기여하도록 주님과 함께 나서는 것뿐이다. 감독의 지시를 받아 선수들이 싸우는 것처럼 철저하게 그 분의 지시만 받으면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
여호수아서는 승리할 수밖에 없는 지침서로 신앙생활 속에 반드시 승리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여호수아서를 접하면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승리의 삶이 되시기 바란다. 영적승부근성은 타고나면서부터 가진 분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키워나가는 분들이 있기에 먼저 성령 충만의 가장 기초적인 특성인 담대함을 채워야 할 것이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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