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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교회 나온 지 이주일 된 성도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지은 시를 시화 액자를 만들어 예배당 벽에 걸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성도는 주일예배에 나오기 전에 새벽기도회와 금요일 밤 기도회에 먼저 참석했다. 사유인즉슨, 딸이 대학 3학년생인데 밤에 가위 눌려서 깊은 잠을 못 잔다고 하여 그것을 고쳐달라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한두 달쯤 그렇게 했다. 어느 날 새로 나온 분들에게 성경책을 선물하는 달란트를 가진 김 집사님이 성경책을 사서 선물로 주며 설명을 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주일오전예배에 꼭 참석해야 한다고. 그리하여 2012년 7월 15일 주일부터 주일오전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녀와 관계를 맺은 것은 20여 년쯤 된다. 남편이 목회를 하려고 마음먹기 전이었다. 그녀의 쌍둥이 아들들과 우리 딸이 같은 초등학교의 같은 학년에 다녔고, 그녀의 딸과 우리 아들이 같은 유치원을 다녔다. 우리 동네 초등학교였고, 그 학교의 병설유치원이었다.
우리 부부는 그 때부터 20여 년 동안 그녀를 전도했고 구원받기를 기도했다. 그녀는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뒷바라지 하느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혼자서 세 아이들을 키웠다. 작년에는 만나면 “내년부터는 교회 다닐게요”라고 했다. 올해가 지나면 아이들 교육이 대충 끝나서 내년에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여자 혼자 시골에서 농사지어서 세 아이들을 키우는데 별달리 도움도 못주면서 강권하기가 민망하여 1년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때가 되셨나 보았다. 딸을 통해서 어머니의 마음을 주님께로 이끌어 주셨던 것이다.
그녀는 교회를 다니고 기도를 하면서 많이 변했다. 표정이 많이 편해졌고 밝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사모님, 제가 요즘 새벽기도를 나가잖아요. 갑자기 시상이 떠올라서 <새벽기도>라는 제목으로 시를 하나 지었어요. 그 시를 액자에 시화로 넣어서 표구하여 기도실 벽에 걸고 싶은데 괜찮을까요?”“물론이죠. 어디 시 한 번 읽어보세요.”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시를 읊었다.
“새벽에 일어나 / 맑은 물 긷는 여인의 심정으로 / 주님께 다가가고 싶습니다. //온 만상 잠재우고 깨우시는 / 주님의 사랑의 손길, / 날마다 주시는 한량없는 / 주님의 은혜, // 오늘도 따사로운 주님 품안 / 그리워 / 주님 앞에서 /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아주 좋네요. 아름다운 시예요. 언제부터 시를 쓰셨어요? 농사지으면서 바쁘실 텐데 시도 쓰시고. 그러니까 성도님은 시인이자 농부시네요.”
그녀는 3년 전부터 시를 써왔다고 했다. 곧 시집을 내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지평선 축제>의 주부백일장에서 은상을 받았단다. 그리하여 초 신자인 김 성도님의 시화를 예쁘게 만들어서 새벽기도를 하는 교육관 벽에 걸어 두었다.
사실, 새벽기도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고난도의 신앙생활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한국교회의 부흥이 새벽기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것이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교회에서는 장로님, 권사님들은 의무적으로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신다. 2012년 들어 새로 오신 남자 집사님 두 분이 참석하여 기도회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 외에 여자 집사님들 가운데서 몇 분이 오다, 안 오다를 반복하며 참석하신다. 초 신자인 그 성도님은 처음에는 딸의 문제로 참석하기 시작했는데 그걸 계기로 지금은 모든 공식 예배에 참석할 뿐만 아니라 처음 사랑을 받은 자로서의 열정과 기쁨이 충만하므로 여러 가지로 교회에서 봉사를 하며 지내고 있다.
교회 청소, 주일 점심 식사 당번 등.내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그녀가 절망에 빠져 있어 살고 싶지 않을 때였다. 위로 쌍둥이 아들들을 낳고 5년 터울로 딸을 낳은 후, 어느 날 밤에 친구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간 남편이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 몇 년은 행여나 하며 기다렸다.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나갔나, 누군가가 죽였나, 의혹에 의혹을 더해갔지만 10년이 넘었을 때에는 기다림을 접었다. 하여튼지간에 불가사의한 일이다. 미증유의 일, 해답이 없는 사건이다.
같은 학교와 유치원을 다니는 자녀들 때문에 학부모로서 학교에서 자주 만날 당시, 그녀는 우울증으로 어둡고 비참한 몰골이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상황이었지만 세 아이들 때문에 겨우 밥을 억지로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으며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던 시절이 몇 년 동안 계속되었다. 밤에는 잠을 못 자 불을 환히 켜놓고 있으니 동네 사람들은 그녀가 정신이 이상하다고 수군댔다. 아마도 어머니의 정신적 충격이 딸에게도 은연중에 전이가 되어 딸이 가위에 눌리는지 모를 일이다. 허나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시리라 믿는다.
나는 몇 년 전에 면사무소에서 그녀를 만났다. 남편의 실종기간이 15년이 지나서 사망 신고를 하려고 왔노라고 했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고생과 슬픔과 고뇌를 이해했는지 사춘기 지랄도 부리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이제는 한 아들은 해군사관대학교를 마치고 해군으로 복무하며 월급을 보내 준단다. 3년만 복무하면 제대이지만 어머니를 돕기 위해 연장하여 2년을 더 복무하면서 자격증도 따고 월급은 집에 보내준단다.
그래서 지금은 한시름 놓았다고 한다. 가난과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왔던 것이다. 또 한 아들은 군대 마치고 4학년 2학기를 남겨두고 호주에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러 갔다. 딸은 간호대학 3학년이다.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녀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고 했다. 남편을 그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으로 치부한 시부모님들의 냉대로 더 힘든 세월을 보냈다고 했다. 지금은 주변에서 모두 그녀를 칭찬한단다.
저번 주에 그 마을에 사는 성도님 집의 수도가 고장이 났다는 신고를 접수하여 목사님과 김 집사님이 수도를 고쳐 주러 갔다. 그 집의 수도를 고쳐 주고 나서 보니 옆 집이 바로 그 시인 성도님 집이었다. 둘은 마침 그 집의 평상이 고장 난 것을 보고 고쳐주었다. 그랬더니 김 집사님 부부와 목사님 부부에게 식사 대접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괜찮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날을 잡아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를 하면서 그녀가 몇 년 전에 목사님의 도움에 큰 힘을 얻었노라고 말했다.
“무슨 도움을 줬다고 그러세요?”“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목사님이 주신 그것이 저에게 큰 용기를 줬어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꼭 밥 한 끼 대접해야 하겠다하고 벼르고 있었는데요. 마침 어제 군인 간 아들한테서 월급이 왔어요. 그러니 꼭 함께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요.”
너무도 적은 돈이어서 우리는 도와줬다고 하기도 창피한 돈이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교회에서는 성탄절 헌금을 좀 보람 있게 사용하려고 했다. 매 년 성탄절에 60만 원 정도의 헌금이 나온다.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연말이고 하니 새 학기를 맞이하여 시골에서 중•고등학교 이상을 가르치려면 힘들겠구나 싶어 중•고등•대학생이 있는 가정에 두 집을 선정하여 30만원씩 장학금으로 지급해왔다.
사실, 우리 교회의 재정은 겨우 교회를 운영하기에 빠듯한 정도이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10년 동안 그 중에서 최소한 일부분이라도 선교비 또는 구제비로 지출을 하고자 애를 썼다. 작년에는 총 수입이 5천만 원 정도 되었는데 일 년 동안 선교비 및 구제비로 지출한 것이 5백만 원 정도 되어 10%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어느 교회에서는 교회 재정의 90%를 선교비로 사용한다는 얘기를 듣고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였다.
어느 해엔가 그 성도님 가정에 성탄절 즈음에 그것을 주었던 모양인데 그녀는 그것을 지금껏 잊지 않고 있었다. 액수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자기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음에 감복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리고 가까운 친족이라도 도움을 주기보다는 그녀의 탓인 것처럼 비난을 하는 상황에서 그녀를 찾아가 얘기를 나누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고 물었던 것이 위로가 되었던 모양이다. 하도 여러 번 그 때 정말 고마웠노라고 말하니 우리는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누가복음 17장 11~19절에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어느 마을에서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을 만난다. 그들이 예수님께 소리 질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한다. 예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제사장들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 하신다. 그들이 가다가 자기들의 몸이 깨끗이 나았음을 본다. 그 중의 단 한 명, 사마리아 사람만 예수님께 찾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린다. 그 때 예수께서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 사람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고 복을 내려주신다.
나병이 나았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가? 허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더욱 큰 은혜이다. 병은 나았으나 여전히 죄 가운데서 하나님을 모르고 과거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욕심을 따라 살아간다면 얼마나 불행한 인생일 것인가. 육신의 질병을 치료받는 것 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영혼이 치유 받고 구원받는 것임을 아는 자는 복된 자이다.
또한 은혜를 받은 자가 감사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옹졸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자로서의 신분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일이 많다. 동양의 역사를 보더라도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듯이, 예로부터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며, 그 은혜를 갚고자 생명까지도 초개같이 버렸던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한갓 미물인 까치조차도 자기 생명을 버려 은혜를 갚고자 했으니, 인간사에 있어서 은혜를 저버리는 것처럼 비열한 일이 없으렷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동물들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은혜를 잊고 살며 오히려 은혜를 모독하는 일도 다반사이다. 어쨌든,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들이여,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 성도들이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는 양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제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 좀 그만 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합당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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