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890호 /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않게 되면

작성시간12.08.22|조회수7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890호 /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않게 되면

                  

 

  제18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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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않게 되면

 

 

 

 

 

    진리의 말씀은 언제 어디서나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말씀을 깊이깊이 파고 들어가게 되면 얼마나 숨겨진 비밀로 감춰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감춰진 말씀을 깨닫는 과정에서 하나님께로부터 허락하신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말씀을 비밀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고난의 과정을 걷게 하신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일까?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고난이라고 지난 번 글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 에녹처럼 자신은 온데간데없으며 오로지 하나님만 드러나는 삶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고난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거나 자기 탓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다. 고난이 내게 엄습해 올 때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유일한 기회임을 깨닫고 자기 자신을 부인하기 위해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끊임없이 죽어지는 것이 바로 고난이다. (고전 15:31) 그러면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않은 상태 어떤 상태일까?

 

    요일 2: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거짓말하는 자라고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않는 자가 바로 거짓말하는 자라는 뜻이다. 세상 사람들보다 더 거짓말하고 사기 치는 존재가 바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백일하에 드러나는데도 아니라고 시치미 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무서운 존재로 언급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가 아니냐?”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면 적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적그리스도가 EC공동체에서 나온다. 이슬람교에서 나온다. 아니면 유대인이다. 이런 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진짜 기가 막힌다.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기 전에 먼저 저자가 기록한 요한일서를 올바르게 읽었으면 한다.

 

   하나님 아버지가 내 안에 살아계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존재하시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고 자꾸 드러내고 있다. 영이신 하나님은 내 안에 들어와서 나와 함께 즐기시려고 한다. 예수님도 내 안에 들어와서 같이 놀자고 하신다. 그런데 그 두 분을 교회 예배당에만 계시라고 하고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하고 있다.

 

    갈 2:20처럼 “이제는 나사는 것이 아니요 주 내 안에 사네”라고 그렇게 찬양하며 성경구절을 암송을 하면서도 얼마나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자기 안에 남편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결혼해서 한 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사 54:5, 렘 3:14, 호 2:19, 20, 말 2:11)

 

   하나님께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장가가고 싶어 하고 결혼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영이신 하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혼으로 느끼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같이 나누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것을 거부하고 차단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통치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서도 기도만 열심히 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 속에 숨겨지고 감춰진 비밀을 알려고 진리의 말씀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 되는데 기도만 하면 비밀을 알려주는 줄 알고 신기루를 쫓아가고 있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고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설교에만 집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요일 2:23에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아버지가 없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다는 것은 아버지가 내 안에 있는데도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을 시인하는 자는 아버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한다고 해서 온 동네를 다니면서 자랑하거나 전도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시고 나와 함께 자라남을 깨달아야 하며 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해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주셨고 나와 함께 삼일 동안 무덤에 장사지내고 난 후 나와 함께 부활하신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생명으로 존재하신다고 시인하는 것이다.

시인(是認)이라는 단어가 호모로게오(o`mologew)라는 지칭하는 데 호모(o`mo 같은 동질의 존재)과 로게오(logew 말한다)의 합성어로 주님과 한 몸이 된 존재와 함께 말하는 것“시인”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내가 하는 주기도문, 사도신경, 기도, 찬양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그 분과 함께 해야만 되는 것들이다.

 

   이때까지 내가 하는 주기도문, 사도신경, 기도, 찬양 등 신앙적인 표현을 한 것이었다면 내가 하나님을 믿어준 것 밖에 되지 않는 인심을 쓴 것뿐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믿어지지 않지만 “내가 하나님을 믿어준다. 내가 기도해 줄게, 찬양해 줄게, 헌금해 줄게” 하는 선심성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한다면 회개, 통곡 정도가 아니다.

 

   발버둥 치며 울어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 이것을 안 필자는 머리에 재를 뿌리며 옷을 찢으며 참회의 기도를 할 수 없었다. 너무나 기가 막혀 울음도 나오지 않았으며 어안이 벙벙해서 하나님 앞에 무어라 표현할 수 없었다. 얼마나 내가 거짓으로 신앙생활을 한 거짓말쟁이로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대적자인 적그리스도라고 한다면........

 

   하나님과 예수님과 내가 한 몸이 되는 것을 얼마나 그리워하면서 지독하게 무서운 사랑을 하게 된 것을 사람의 혼으로 알 수 없다. 원래 사람의 구조는 혼과 몸과 영이 하나가 되어 살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사람의 구조인 혼과 몸과 영이 서로 따로 놀아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죄의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좀 더 언급하자면 창세기 3장에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라고 했는데 죽었다고 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실언하신 것이 아닐 것이다. 아담과 대화도 나누었으며 그 후에 나이가 많아 죽었다는 것 외에 언급된 적이 없다.

 

   그러면 무엇이 죽었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체를 붙들고 죽이려고 하니 하나님의 작품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면 창조의 의미와 목적이 사라지기 때문에 육체를 놓고 혼인 정신을 붙들고 죽이려고 하니 정신이 없으면 정신없는 사람이 되니까 사람 영혼에 불어 넣은 생기(루하흐 x;Wr 영)를 뽑아버린 상태가 바로 원죄의 상태다.

영이 빠져나가면서 혼과 몸과 영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며 혼 따로, 몸 따로, 영 따로 구분되어 움직이는 상태가 바로 정녕 죽으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상태가 바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존재가 사람 몸과 혼과 영혼 안에 자리 잡고 왕 노릇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인이라는 상태죄로 인해 죽은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상태로 계속 이어져 온 것이 저주아래 죄가 왕 노릇하게 하여 계속 죄의 지배하여 타락의 길로 걸어가도록 방치된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은 사랑하신다고 표현을 해 오셨다. 족장읕 통해서, 모세를 통해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사사를 통해서 제사장들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거부했다.

 

   사람들은 혼과 몸과 영이 서로 어긋나 따로 놀아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줄 알았다. 단지 사람의 교육과 문화, 과학과 도덕으로 각종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지금까지 반복되고 반복되어 왔다. 심지어 각종 종교로부터 시작해서 천주교뿐만 아니라 기독교까지 계속 반복되어 왔지만 해결방안은 아직도 묘연하다는 것이다.

 

   요일 2:24에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계획아래 이뤄진 존재를 어떻게 이뤄졌는지 깨달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몸과 혼과 영이 원래대로 되어진 존재로 이루어진 말씀을 내가 깨닫고 회복되는 것이 바로 주 안에 거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사람의 몸과 혼과 영이 하나가 되는 지름길이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을 시인하는 것이다. 시인한다는 것은 마치 주례자와 결혼식에 온 하객들 앞에서 백년가약을 시인하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과 혼과 영이 따로 놀아나게 되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해도 주님을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결혼하여 그 분들과 함께 한 몸이 되어 연합된 삶을 추구하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가 되며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자기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르고 있다면 심각한 상태다.

마귀 사탄으로 인해 속고 있으며 죄에 마취되고 사람의 몸과 혼과 영이 마비되어 서로 따로 노는 정도가 아니라 마귀사탄이 내 혼에 들어붙어서 혼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아니라 혼으로 하는 종교생활로 변질되어 있다는 것이다. 옛 자아가 내 안에서 장악하여 하나님을 좇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혼이 나를 지배하여 영은 꼼짝 못하고 겨우 숨만 붙어 있는 가운데 내가 선심성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라는 찬송가 구절처럼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불러야 한다. 에녹과 엘리야 시체가 없이 사라졌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들은 온데간데없이 전적으로 하나님만 드러내는 생애를 살아갔다는 의미로 깨달아져야 한다.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이 내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밖에도 나타나는 것이 시인의 삶이다. 시를 쓰는 존재만이 시인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존재가 바로 시인이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면 아버지와 아들이 그 안에 존재하더라도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거짓말쟁이가 되면 부모님의 얼굴에다 먹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예수님이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다. 심지어 적그리스도까지 된다고 한다는 표현에 충격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지 말며 적그리스도와 같은 동류로 전략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프 로 필

이준호목사/창골산 칼럼니스트

ljh4183@hanmail.net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예장 통합 거룩한 빛 광성교회 협동목사
장로교연합신문 편집국장, 한국 성경본문연구원 원장
바이블 앤 라이프 대표 010-9600-5727 (카톡으로 문자 환영)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바이블아카데미에서 성경공부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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