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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에서 온 이백 서른 일곱 번째 편지
지난 주 주일은 호주의 Father’s Day이면서 아내의 생일이었습니다. 두 아이들은 엄마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랴, 아빠의 Father’s Day선물을 준비하랴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다 큰 아이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직접 엄마가 좋아하는 굴과 새우 요리를, 아빠가 좋아하는 마늘 빵을 만들어 호주 식으로 아침 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생일 케이크와 함께 엄마와 아빠에게 카드와 선물을 전해 주었습니다. 모든 예배를 마친 후에는 아이들이 예약한 달링하버의 근사한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식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다를 바라 보며 식사를 하면서 나는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두 아이들이 딸이니까 이렇게 했지 만약 아들이었으면 이렇게 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집에 돌아 온 후 책상에 앉아 아이들이 준 카드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았습니다. 카드에는 “아빠 감사해요, 아빠 사랑해요” 라는 글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아빠 영원히 우리를 잊지 마세요” 라는 말로 끝맺음을 맺었습니다. 나는 그 글을 읽고 속으로 웃으면서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니까 아주 오래 전의 일입니다. 2층 교회 사무실에서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저를 급하게 찾아와 다급하게 목사님, 아이들이 차에서 못나오고 있는데요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누구 차에서, 누구 아이들이 못나오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나에게 목사님 차에서 목사님의 자녀들이 못 나오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순간 왜 우리 아이들이 지금까지 내 차에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회에 도착한 나는 차에서 내리고 아무 생각 없이 알람을 작동시켰습니다. 그리고 조금 걷는데 차에서 알람이 막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참 이상하다. 왜 갑자기 차에서 알람이 울릴까 생각하며 알람을 끄고 다시 알람을 작동시켰습니다. 그리고 나는 교회에 돌아와 예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청년이 나에게 와서 아이들이 차에 있다고 말해 준 것입니다.
“아니, 이럴 수가!” 내가 아이들을 차에 둔 상태로 알람을 작동시켜 버린 것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그 당시 집사람은 한국을 방문 중이었고, 나는 교회에 도착한 후 차에서 내리면서 뒷자리에 있던 아이들을 까마득하게 잊어 버리고 있었습니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아이들을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차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리자 아이들도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차 뒷문이 열리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나는 아이들이 차 안에서 실수로 차의 문을 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차의 뒷문에 잠금 장치를 해놨기 때문에 아이들은 차의 뒷문을 열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내리려고 했지만 차 안에서 문을 열 수가 없었고 내가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빠인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다급해진 아이들은 앞의 운전석으로 넘어와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알람을 작동시킨 후이고 갑자기 알람이 울리자 아이들은 당황하여 문을 바로 다시 닫은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아빠가 장난하시나 보다, 다시 돌아오시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빠는 알람을 끄더니 다시 알람을 작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교회로 들어가 버리신 것입니다.
그 당시는 어렸던 아이들은 차 문을 열어 알람이 울리면 차에 큰 문제가 생기고 큰일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차문을 열지도 못하고 성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성도들이 지나가자 문을 열어 달라고 소리쳤지만 밖에서는 들릴 리가 없었고 성도들은 ‘목사님 아이들이 왜 차에 있지 있지’라고 생각하며 그냥 무심히 지나친 것입니다. 그러다 나에게 와서 말한 청년이 바로 차 옆을 지나게 되었고 그리고 차 안에서 울상이 되어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차로 달려가서 문을 열어 주자 큰 아이가 저에게 이렇게 물어 봤습니다. “아빠, 정말 우리 아빠 맞아? 어떻게 우리를 잊을 수 있어” 그때 그 말을 들은 나는 아이들에게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가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부모가 자식들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 때는 자신의 자식을 잊어 버리며 살 때도 있습니다.
몇 년 전 여름에 호주에서 엄마가 차에 갓난 아이가 있다는 것을 잊어 버리고 쇼핑 센터에 들어갔다가 몇 시간 후에 나와 보니 차 안에 있던 아이가 질식해서 죽어 버렸습니다. 한국에서는 추석에 부모가 아이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 가다가 그만 기차에 아이를 두고 내렸다가 나중에 찾은 적도 있습니다. 설령 부모가 자식을 잊어 버린다 해도 우리를 잊어 버리시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부모들이 혹시 자식을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으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손 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49:15-16)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데 혹시 하나님이 나를 잊어 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분은 없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결코 잊어 버리고 계시지 않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손바닥에까지 새겨 놓고 당신을 지켜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다 너를 잊어버려도 나는 너를 잊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 힘을 내십시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잊지 않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황무지와 광야에서 보호하시며 돌보신 것처럼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 가고 있는 우리들을 자신의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신32:10)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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