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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8일에 전북신학교 Home Coming Day가 있어 남편을 따라 갔다. 2011년 2월에 명예퇴직을 한 이후 나는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남편을 따라가서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글감을 찾는다. 나의 이웃에 50대 중반의 수필가 한 분이 도시에서 살다가 작년에 이사를 왔다. 우리 동네의 폐교된 초등학교를 사서 체험학습공간으로 꾸며 사업을 하려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산다.
어느 날 내가 그 가정을 방문했다. 마침 이웃에 사는 우리 교회 남자 성도 한 분도 그곳에 놀러왔다. 가끔 일하다가 커피 생각이 나면 놀러온다고 했다. 셋이서 얘기를 나누다가 우렁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우렁된장찌개가 맛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 때 그 남자 성도님이 자기 논 옆에 웅덩이가 있는데 거기에 우렁이 많다면서 함께 날을 잡아 잡으러 가자고 권했다. 나는 쌍수를 들어 반기는데 그 수필가님은 시큰둥했다.
그 때 그 성도님이 말했다. “아니, 수필가님께서는 글을 쓰시려면 많은 것을 체험해야 하거늘 시골에 와서 살면서 집안에만 있으면 무슨 좋은 글이 나온대유? 우렁도 잡으러 가고, 고사리도 꺾으러 가고, 동네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그래야지유.” 수필가님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성도님 말이 맞는 말입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따끔한 충고 고맙습니다.”
내가 창골산 봉서방 카페에 글을 쓴 지가 일 년이 넘는다. 이제는 부지런히 글감을 찾지 않으면 다음 글을 올릴 수가 없다.오늘은 전북신학교 Home Coming Day에 가서 들은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바탕으로 <목회자의 위기관리>에 대하여 써보려고 한다.
목회자란 누구인가? 목회자는 설교자이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니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 선포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소명과 사명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대언하는 직책을 맡은 자들이 바로 목회자이다.
여러 사람들이 목회자 혹은 설교자에 대하여 글을 썼다. 그 가운데서 목회자들이 많이 읽는 책은 다음과 같다. 찰스 스펄전의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리처드 백스터의 <참 목자상>,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와 설교자>, 존 스토트의 <설교자란 무엇인가> 등이다.
나는 얼마 전에 존 스토트의 <설교자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그 책에서 존 스토트는 설교자란 하나님의 청지기, 사자, 증인, 종, 성도들의 영적인 아버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목회자상을 갖고 목회자의 삶을 사는 가운데 목회자도 인간인지라 실수도 많고 실패도 많고 넘어짐도 부지기수이다. 주변에서 목회자의 고난, 실패, 위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야기들이 많이 들려온다.
어느 목사님은 45살에 암에 걸려 사망했다. 후일담으로 그는 도시에서 개척교회를 하면서 고생을 너무도 많이 하였다고 한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지만 그래도 인간의 수명이 너무 짧고 삶이 고달플 때에는 의아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우리의 지혜로는 알 수 없다.
어느 목사님은 일본의 현지 교회의 청빙을 받아 갔다고 한다. 그가 몇 달 후에 한국에 나와 친구를 만나서 얘기를 했다. 그 교회의 전 전 목사님은 목회 도중에 우울증에 걸려 목회를 중지했고, 전 목사님은 사모님이 우울증에 걸려 목회를 중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무도 그 교회에 부임하려고 지원하는 목회자가 나타나지 않아 특단으로 한국의 목사님을 설득하여 청빙했다는 것이었다. 목회의 어려움은 제삼자가 섣불리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결합되어 발생하는 것이 목회의 중단이다. 오죽하면 중간에 목회를 접어야 했을까. 자세한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리라.
어느 목사님은 시골 교회에 부임했는데 교회 앞집에 사는 동네 사람 하나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그 목사님은 유도가 5단이고 성질이 괄괄했다. 목사님은 참다 참다 못하여 어느 날 교회 앞에서 그를 패대기쳤다. 그러고 나서 그는 목회를 접고 그곳을 떠났다고 한다. 오죽하면 목사가 동네 사람을 패대기쳐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다가 얼마 전에 이웃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난다.
목사나 성도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인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죽은 자는 화를 낼 일도 없다. 죽은 자는 자존심 상할 일도 없다. 죽은 자는 따지고 말 것도 없다.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했듯이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잘 안 죽어진다는 것이다. 팔팔하게 살아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가 고달픈 것이다.
어느 목사님은 아버지도 목회자요, 자기도 목회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목회 현장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목회자가 되지 말아야지” 했는데 지금 자기도 목회자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북 사람으로서 한국전쟁 때 월남해서 목사가 되었다. 이북 사람들의 성격이 대개 괄괄한 모양이다.
그의 아버지는 성질이 급하고 비수같이 날카로웠다고 한다. 예배 도중에 성도들이 자세가 바르지 못한 것을 못 보았는데 마침 아들의 흐트러진 모습이 눈에 띄면 당장 “아들, 앞으로 나오라우”해서 앞으로 불러내어 성도들이 보는 가운데 뺨을 후려갈겼다고 한다. 참, 아들도 성도 중의 하나인데…… 목회자는 누구에게나 온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족들에게 더 온유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그것을 모른다.
목회자에게는 종종 크고 작은 위기가 찾아온다. 인생사 한평생에도 수많은 위기가 찾아온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양들이 있으니 위기가 찾아올 때 위기관리를 잘하지 못하면 그 양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목회자에게 찾아오는 위기를 크게 분류하면 세 가지이다. 첫째, 사명감에 대한 회의에 빠지는 위기, 둘째, 무기력증에 빠지는 위기, 셋째, 관계적 위기이다.
첫째, 목회자는 가끔 내가 왜 이 길을 꼭 가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온다. 과연 하나님이 정말 나를 주의 종으로 부르셨을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다른 길은 왜 안 되는가 하는 타협이 생긴다. 그러한 회의는 방치하면 수렁처럼 점점 더 빠져들어가게 된다. 속히 극복해야 한다.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고전9:16~17)”를 붙들어야 한다. 한 사람이 주의 종으로 세움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역사이다.
둘째, 목회자는 목회 도중에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는 위기가 온다. 옆 교회 목사는 목회를 잘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 모양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댄다. 성도들은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흘려보내고 도대체 실천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이제는 목회를 그만두어야 할 때인가, 목회지를 옮겨야 하나 라는 고민에 빠진다. 그럴 때에는 사람 의지하지 말고, 사람의 도움을 찾아다니지 말고 바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목회자 자신의 변화와 회복이 필요한 때이다.
셋째, 목회자가 빠지는 위기 중에서 가장 무섭고 빠져나오기 어려운 것이 관계적 위기이다. 중직자와의 관계, 성도들과의 관계, 가족들과의 관계, 동네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이다. 관계적 위기가 올 때 목회자는 어떠한 경우라도 악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종이요, 모든 영혼들의 아버지로 세우심을 받은 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목회자는 자기에게 악하게 대하는 자를 미워하거나 노를 발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는 이웃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목회를 계속 잘 할 수 없다. 이웃이란 가깝게는 가족이요, 중직자요, 성도요, 멀게는 동네사람들 혹은 동료목회자들이다. 이웃과의 관계위기를 잘 극복하지 못하여 목회를 실패하는 경우를 나는 많이 보았다.
결론적으로, 목회자의 삶은 힘들고 어렵다. 사모의 삶은 더 어렵다고들 한다. 가끔 사택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사모의 삶이 목사의 삶보다 더 어려운 법이라며 나를 위로한다. 목회자의 가는 길은 험난한 길이요, 눈물 없이는 못 가는 길이요, 기도 없이는 못 가는 길이다. 때로는 풍랑이 일어 뒤집힐 것 같은 곤경이 오고, 때로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은 무기력증으로 몸부림치기도 한다.
그러할 때 목회자는 속을 썩이지 말아야 한다. 속을 썩이면 병이 생긴다.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의뢰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어떤 일에도 울지 말고, 화내지 말고, 좌절하지도 말고, 보복심으로 속 끓이지도 말고, 상처를 마음에 깊이 담아두어 곪아서 병이 되게 하지도 말고 하나님께 부탁하고 잠잠히 기다려야 한다. 어느 목사님이 말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의지하라.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 찾아다니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리라.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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