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959호 /어울림의 미

작성시간12.11.06|조회수6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959호 /어울림의 미

                   

 

  제19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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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울림의 미

 

 

 

 

 

    어제(2012.10.4.)는 김제에서 목회하는, 남편의 신학교 동기생을 만나러 갔다. 원평에서 봉남면을 지나 김제로 가는 길은 <김제 지평선 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많이 눈에 띄었다. 10월 10~14일에 하는 모양이다. 차창 밖으로 길가의 양쪽에서 바람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가 너무 아름다워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가을에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는 아름답다. 나는 젊은 시절에 많이 들었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의 소절을 반복적으로 입속으로 흥얼거렸다. 그 소절만 가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사가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모르지만 그 부분만 입속에서 맴돌았다. 대학 다닐 때에는 그 당시 유행했던 가요를 많이 들었었는데 지금은 가요를 들을 일도 부를 일도 거의 없다.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니지만 교회를 중심으로 살다 보니 저절로 멀어졌다.

 

   코스모스는 하나씩 보면 아름다울 것도 없이 수수한 꽃인데 길가에 무더기로 어울려 피어 있으면 참 아름답다. 진보라색, 연보라색, 흰색의 꽃들이 어우러져 바람에 흔들릴라치면 저절로 내 마음까지 흔들린다. 가을의 정취가 물씬 나서 내 마음도 움직여 “아! 다음 주에 지평선 축제에 한 번 와 봐야겠네”라고 말했다. 축제에 맞춰 일부러 조성했는지 다른 곳보다도 더 잘 가꾸어 놓은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김제 시내의 어느 플래카드에 ‘400리 코스모스 길’이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사실, 진보라색이나 연보라색의 코스모스는 그 자체만 보면 좀 촌스럽다는 느낌이 나는 색이다. 시골의 중년 이상의 여인네들이 많이 입는 옷 색깔이다. 가장 무난한 색인 것인지 어느 주일날에는 우리 교회의 성도들에게서도 절반 이상 그런 색깔의 옷을 입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진보라색, 연보라색, 흰색의 코스모스가 어우러지면 자연스러우면서 고아하다. 그리하여 저절로 ‘아! 아름답다’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가을의 선선한 날씨와 함께 마음을 치유해준다. 요즘에는 복잡한 기계화, 세계화 문명에 찌들어 인간의 영혼과 정신과 육체가 모두 병든 자들이 많다. 시간을 내어 코스모스가 바람에 한들거리는 시골길을 따라 자동차를 타고 천천히 여행하는 것이 치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우리 교회 성도들과 ○○○정신요양병원에 병문안을 갔다. 성도 중에 한 분이 어떤 연유로 그곳에 입원해 있었다. 그곳에는 두 종류의 환자들이 있다고 했다. 병실에서 밖으로 자유로이 나올 수 없는 환자들과 병원 내에 있는 휴게공간까지는 자유로이 나올 수 있는 환자들. 겉으로는 환자들처럼 보이지 않는 여러 명의 환자들이 바깥의 휴게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알코올 중독 환자들인 것 같았다. 병실마다 환자들이 그득했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힌 동물들처럼 좁은 공간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거나 걷는 자들의 공허한 눈빛이 심장을 찔렀다. 왜 많은 현대인들이 정신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가,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울적했다.

 

  12시에 목사님을 만나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서로의 목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신학교는 함께 다녔지만 신대원은 다른 곳을 다녔으니 신학교를 졸업한 이후 처음 만나므로 7년만의 만남이었다. 그 목사님은 초등학교 행정실장을 하다가 40대 후반에 신학을 시작하여 작년(2011년)에서야 목사 안수를 받은 늦깎이 목사였다. 그는 60세가 다 되어 목사가 되어서인지 목회에 열정을 갖고 있었다. 물론 어느 목회자라고 열정이 없는 목회자가 있겠는가만, 그래도 그는 짧은 기간 밖에 목회를 할 수 없으니 더욱 더 열심을 낼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그는 목회자가 되기 전에 장로였는데 그때부터 전도에 대한 열정이 뜨거워서 일대일 제자훈련을 했었다고 한다. 사실은 장로 시절에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하여 교회를 개척했기에 교회의 역사는 그의 목회 경력보다는 더 길었다. 늦게 어느 선배 목사님의 권유로 신학을 했다고 한다.

 

   점심식사 후에 그 교회 4팀장인 안 권사님과 교도소 심방을 겸해 전도를 하러 가기로 했다고 하면서 동행하자고 했다. 우리 부부는 전도도 배울 겸 따라가기로 했다. 그 교회의 교우 한 사람이 지적장애인인데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켜 몇 년 전에 교도소 생활을 하다가 출감했다. 그러나 보호관찰 기간에 또 위반 행동을 하여 6개월간 재수감되어 그를 자주 방문한다고 했다. 그는 돌보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교회가 돌보야 주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안 권사님이 어머니처럼 그를 돌보고 있다고 했다.

 

   안 권사님은 전도의 열정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안양에서 살다가 몇 년 전에 김제로 이사를 와서 백 목사님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권사님은 그 교회의 4팀의 팀장에 임명되었다. 날마다 자기 구역의 길에서 혹은 가정을 방문하여 전도를 하고 교제를 했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형제가 바로 그 형제이다. 그 형제는 9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40대의 지적장애인으로 정상적인 삶을 꾸려가지 못하고 방황하며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살고 있었다. 그의 아내도 지적장애인이었고 두 아이들도 같은 증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

 

     권사님은 날마다 그의 집을 방문하여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전했다. 처음 몇 달 동안에는 그 형제가 함께 하지 않고 딴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그 형제는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마음속에서 방해하는 악한 영의 뜻에 맞서 그 방에서 나와 예배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가 말하기를 “내 안에서 어떤 것이 이 방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오늘은 내가 그냥 와 버렸어요”라고 했다. 그 때부터 점점 믿음이 자라갔다. 권사님은 그의 얘기를 많이 들어주었다. 지금은 ‘권사님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많이 기대고 함께 교제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후로 삶도 많이 변했고 신앙도 자라서 교회생활을 잘 한다고 한다.

 

   권사님은 그를 만나면서 그로 인하여 그가 사는 아파트의 관리원, 시청 직원, 교도소 담당 직원, 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등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복음을 모르던 자들이 복음을 안 사람도 있고,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던 사람들이 은혜를 회복하여 교회생활을 잘 하게 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전도 체인이 형성되어 복음이 활발하게 확장되어 나가는 것을 경험하며 산다고 한다.

 

   교회란 육신적으로는 각자 다른 모습을 지닌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빈부의 격차도, 학벌의 격차도, 인종차별도 없어야 한다. 가을에 길가에 핀 코스모스의 여러 가지 색깔의 꽃들이 어울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는 제각기 다른 모양, 형편, 소유를 초월하여 조화를 이루고 화목을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어야 한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양애옥 사모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 산성교회 

 (창골산 칼럼니스트)

 ao-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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