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971호 / 심방 일기 1

작성시간12.11.20|조회수5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971호 / 심방 일기 1

               

 

  제1971호       

       본 메일은 님께서 카페가입시 동의 하였기에 발송되었으며 수신을 원치 않으시면  카페 내정보에서  수정해 주세요

                            클릭하시면 자세한 내용을 보실수 있습니다

창골산 농어촌교회 돕기 일백운동

 

 

창골산 원고보내주실곳

cgsbong@hanmail.net

 

  심방 일기 1

 

 

 

 

 

    2012년 10월 30일. 우리 부부는 오전에는 텃밭에 가서 팥을 수확했다. 지난 5월에 많은 시간을 들여 실하고 둥글고 예쁜 팥을 골라서 심었다. 올해 팥을 수확해보니 종자가 개량된 것이 확실했다. 작년에는 팥 종자를 고르지 않고 마구잡이로 심었다. 그리하여 크기도 천차만별이고 모양도 고르지 못하여 팔려고 내놓았더니 안 팔렸다. 콩은 두 번의 강한 태풍으로 인하여 작황이 시원찮았다. 어쨌든, 한 가지라도 곡식의 수확이 풍성하여 기분이 좋았다. 우리 주님도 2012년 한 해의 결산을 하실 때 풍성한 열매를 맺은 것을 보시면 기뻐하실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2012년도 저물어가는 요즈음, 한 해의 결산을 할 일이 두렵기도 하다. 우리 교회는 전도에 있어서 연초에 한 사람당 한 명씩 전도할 책임을 주었다. 오늘 일 년 동안의 새 교인 등록 상황을 보니 14명이다. 절반은 이사 온 분들로서 이미 세례를 받은 분들이고 절반은 태신자이다. 7명의 태신자 중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아프다는 이유로 예배에 출석을 잘 하지 않는 분들이 4명, 제대로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분들이 3명이다. 풍성한 전도의 열매가 맺었노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연말은 다가오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성도들은 아마도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 게으른 자는 석양에 바쁘다는 말이 있다. 일 년에 한 명하면 쉬운 일인 듯 보여도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한 영혼이 사탄의 진영에서 하나님의 진영으로 옮겨오는 일이다.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일이다. 성령의 역사하심과 인간의 영혼을 향한 사랑이 합쳐져 이루어지는 일이다. 과연 우리 교회 성도들은 일 년 동안 얼마나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심방하며 헌신했을까, 궁금하다. 송구영신 예배 때 결산을 하게 될 것이다.

 

   오후에는 심방을 하기로 했다. 마침 작년의 현미 찹쌀이 남아 있어서 새 찹쌀이 나오기 전에 처분을 할 요량으로 떡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농사지은 땅콩을 떡고물로 사용하여 현미 찹쌀떡을 했다. 나의 단골 떡집 집사님이 땅콩 고물을 사용한 떡은 처음 해본다면서 성의껏 했다고 했으나 내가 원하는 맛이 나오진 않았다. 아무튼 막 찐 떡 한 덩이씩을 챙겨가지고 심방을 갔다.

 

   행정마을에 사시는 권 할머니를 찾아갔다. 그녀는 북한에 가족들을 두고 홀로 월남한 남자를 만나 살았다. 아이를 낳지 못한 할머니는 언니의 막내아들을 양자 삼아 키웠다. 10여 년 전에 남편은 <남북 이산가족 찾기>에 신청을 하고 기다리던 중 북한에 사는 가족들을 만나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권 할머니는 자기와 아들을 두고도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 년만 더 살았어도 그 가족들을 만나보고 죽었을 텐데 하며 그를 불쌍히 여기고 안타까워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아들마저 죽었다. 홀로 남은 할머니는 찾아올 가족도 없다. 하루 종일 유리창으로 비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신다. 교회를 나오다 말다 하신다. 요즘에는 일 년 가까이 교회를 안 나오셨다. 가끔 찾아가면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신다. 심방할 때마다 매 번 복음을 전하지만 복음을 깨닫지 못하시는 듯하다. 오늘도 홀로 사는 외로운 늙은이를 찾아와줬다고 고마워하셨다. 너무 오래 교회를 쉬어서 미안하다면서 “지금 내가 교회를 다시 나가도 괜찮을까?” 하고 물으신다. “그럼요. 누가 뭐라겠어요. 언제든지 오시면 대환영이지요.”

 

   다음에 같은 마을에 몇 달 전에 이사 오신 박 할머니를 찾아갔다. 그 할머니는 저번에 살던 곳에서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근데 왜 이곳에 이사 오셔서 교회를 안 나오세요? 신앙 연륜도 많다던데요?” “내가 몸이 안 좋아. 몸이 나으면 갈려고. 그렇잖아도 지난번에 그 교회 홍 권사가 찾아 왔더구만. 내가 병 나으면 교회 간다고 했더랬어.” 이제 80세이신 할머니의 병은 노화에서 온 병인데 어느 세월에 병이 다 낫겠는가. 목사님이 말했다.

 

   “할머니, 사람은 늙으면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에 올 시간이 다 되었노라고 준비하라고 신호를 보내므로 여기 저기 아픈 거예요. 몸이 좀 아프시더라도 지금 바로 교회를 나오셔야 해요. 사람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는 거예요. 이제 하늘나라에 갈 준비를 하셔야 해요. 하늘나라에 가시려면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이 땅에 살 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사셔야 해요.”

 

   박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고, 자기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단다. 시골의 남의 빈 집을 얻어 몇 년씩 살다가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다른 빈 집으로 옮겨 살았다. “돈이 있어야 교회를 가지. 교회 가면 헌금을 해야 해. 어떻게 빈손으로 가겠어. 내가 평생 돈에 포원이 졌어. 돈이 없어 설움을 많이 당했지. 설움 중에서도 집 없는 설움이 젤로 서럽지.” 할머니의 인생사를 들으니 안쓰럽다. 내가 말했다.

 

   “할머니, 이 땅에서는 가난한 자의 삶이 서럽지만요,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의 자녀니까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대요. 그곳에는 눈물도 병도 아픔도 서러움도 없대요. 이번 주일에는 교회에 나오세요. 그리고 우리 교회는 형편대로 헌금을 해요. 없는 사람은 안 하고 있는 사람은 하고요. 헌금 강요는 절대로 안 하고요, 의무적으로 하는 헌금도 없어요. 누구든지 자원하는 자만 헌금을 한답니다.” “교회 가려면 옷도 새로 사야하고 신발도 새로 사야혀. 이사 오면서 다 없애 뿌렀지.” “할머니, 옷은 지금 입은 것 빨아서 입으시면 되고요, 신발이야 뭐 차타고 오니까 이거 신고 오시면 되겠네요.” “목사님, 사모님이 이렇게 친히 오셨는디. 내가 가기는 꼭 가야 허는디……”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박 할머니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 마음을 녹여 주세요.” 쉬었다가 다시 교회를 나오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나는 종종 경험했다. 박 할머니는 이도 다 빠졌다. “할머니, 이가 안 좋으셔서 찰떡을 먹기가 힘들겠네요. 제가 떡 한 덩이를 가져 왔는데요.” “내가 떡을 엄청 좋아하지.” 할머니는 떡을 보고 환하게 웃으셨다. “내가 어젯밤에 좋은 꿈을 꿨는디. 이렇게 귀하신 목사님, 사모님이 찾아 오실라고 그랬는감만. 꿈은 참말로 영물이여.” 할머니들은 꿈을 많이 의존하며 사신다.

 

   세 번째로 수천마을에 갔다. 수천마을에 사는 50대 중반의 성도님을 만나러 갔다. 주일날 아침에 주일 점심 준비를 하신 성도님이 사택에 들여 준 반찬을 비우고 그릇을 돌려주려고 교회 주방에 갔더니 그 성도님의 요양보호사를 하시는 집사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내용인즉슨, 이 성도님이 화가 많이 나서 교회를 안 들어오고 있으며 집에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피운다고 나더러 달래보라는 것이었다.

 

   교회 입구 한쪽에 앉아 있는데 표정이 어두웠다. 그녀를 물끄러미 보라보자니 콧등이 시큰했다. 어깨를 꽉 껴안으며 “집사님, 사는 게 힘드시죠? 너무 마음 아프지 마세요. 사람마다 다 힘든 거예요. 집사님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 말끝에 이 집사님은 엉엉 울었다. 서러움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온 모양이었다. 간신히 달래서 식당 방 소파로 모셔다가 앉혔다. 한참을 울고 나니 가라앉았다.

 

   너무도 가난한 집에 태어나 너무도 가난한 노총각에게 시집을 왔다. 남편은 몸도 마음도 연약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 엄마의 억척으로 키웠다. 남편이 경제 능력이 부족하니 아내는 죽어라고 일을 했다. 남자가 할 일을 여자가 다 했다. 그렇게 하여 논을 일곱 마지기나 사고 저축도 좀 해서 60세가 되면 일을 그만 하고 편히 살겠다는 노후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인생사 누가 알랴. 50대 초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3년여 동안 병원 신세를 지느라 저축한 돈은 바닥났다. 겨우 목숨은 건졌으나 몸 한 쪽이 말을 안 듣는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런 와중에 하나님을 만났다. 그러나 아직도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응어리가 없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몸에 병이 들어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아 가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회오리가 일어난단다. 분노의 화살은 언제든지 남편에게 향한다.

 

    주일날 아침에도 몸이 불편한 아내를 챙겨주지 않고 남편 혼자 자전거를 타고 교회를 와버렸다고 화를 낸 것이었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 즈음에 찾아갔더니 다행히도 언제 그랬나 싶게 가라앉아 있었다. 목사님이 마음의 다스림에 대해서 조언을 했다. 화는 오히려 마음에 독을 키우는 것이니 뇌졸중 환자인 사람은 특히 화를 내면 몸에 해롭다고 말했다.

 

   그리고 숙제를 주었다. 하루에 백번씩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상)”고 사도바울은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심방을 하면서 그들에게 그 말을 하기가 어렵다. 외롭고 늙고 병들고 가난한 삶에 찌든 그들에게 젊고 건강하고 가난하지 않은 내가 그런 말을 하면 효력이 별로 없어 보이는 것 같다. “너는 뭘 감사하니 아무것도 없는데도 남들은 모를 거야 왠지 좋아 정말 좋아 무엇이 그리 좋은지 나도 알게 해다오 너와 나 데려가려 주 예수님 오신단다”라는 가스펠송이 있다.

 

   그러나 실제 삶 속에서 가난, 외로움, 늙음, 질병, 환난을 당해도 감사하며 자족하며 사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다. 가난해서 서럽고, 병들어서 서럽고, 늙어서 서럽고, 어려운 일들이 겹치니 서럽다. 성도들이 모든 서러움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기를 기원해본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양애옥 사모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 산성교회 

 (창골산 칼럼니스트)

 ao-yang@hanmail.net

 원본보기

창골산☆칼럼 

글에 대한 문의는 필자께 

 
첨부이미지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