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983호 / 주님은 나에게 어떤 매력에 빠져있을까?

작성시간12.12.05|조회수6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983호 / 주님은 나에게 어떤 매력에 빠져있을까?

                  

 

  제19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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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나에게 어떤 매력에 빠져있을까?

 

 

 

 

 

    이사야 54:5에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는 구절은 창조의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도 되지만 내 남편이라는 것은 획기적인 발언인 것이다. 또한 예레미야 3:14에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배역한 아내가 아닌 자식이라면 남편이 아니라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자식과 남편은 성립할 수 없는 단어다.

 

    호세아 2:16에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바알의 의미는 주인이란 뜻으로 남편을 주인양반이라고 하는 한국사회에서 진정한 주인양반은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양반이 된다는 뜻이다. 내 삶의 자리에 주인양반이 되시는 분과 관계개선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호세아 2:19~20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는 말씀을 토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려면 그 분과 결혼을 해야만 된다는 의미다. 하나님과 영원히 살려고 해도 결혼을 해야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결혼의 조건이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을 장황하게 설명하려면 끝이 없을 것이다. 길을 잃어버린 왕자가 헤매다가 길을 잃고 낭떠러지에 떨어져 생명의 위기 속에 있었는데 아주 깊은 산골짜기에 살고 있는 마을에 처녀가 그 왕자를 발견하고 생명을 구하는 사건이 있었다.

 

    생명을 되찾은 왕자는 기력을 찾는 동안 그 처녀와 눈이 맞아 청혼을 했었다. 그러나 신분적인 차이와 여러 가지 정황에 따라 도저히 결혼이 성립이 되지 않았지만 왕자의 아버지인 왕이 모든 과정을 듣고 진정한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기는 자비로운 마음이 발동이 되어 결혼이 성사되었다.

여기에 당황한 것은 산골짜기에 살고 있던 처녀가 자신의 초라한 환경에 걸맞지 않는 청혼이 너무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안 왕자의 간곡한 구애 속에 혼사가 이뤄졌다, 이런 내용의 설화나, 사건을 중심으로 드라마,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여러 편이 제작되어 많은 분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 되었다.

 

   이에 따른 처녀가 바로 내 자신임을 공감해 나갈 때 과연 내가 합당하게 결혼 대상자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 일어날 것이다. 내가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말씀을 종로에서 인천 부평까지 가는 지하철에서 묵상하면서 오는데 내내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주님께서 나의 남편이 되시려는 이유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먼저 자기 자신을 성찰해 봐야 할 것이다. 신부가 되려면 처녀로서의 정결함을 지녀야 할 것이다. 과연 내가 주님 앞에 떳떳하게 정결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신부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본다면 도저히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신부가 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으며 정결한 신부가 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온전한 구원을 이루셨다. 주님과 함께 한 몸이 이루게 하시려고 연합의 은총을 만들어주셨다. 그러나 연합으로서 온전한 신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연합에서 한 걸음 나아가 연합의 성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연합의 상태에서 반드시 나타나야 할 생명이 나와야 한다. 신부로서 나타나야 하는 신비로움과 함께 생명력이 나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처녀로서 가져야 할 순결함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처녀가 가져야 할 신비로움과 아가서에 나오는 신랑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매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아가서 4:8 ~ 12)

 

   이 글을 쓰면서 과연 주님은 나에게 어떤 매력에 푹 빠져 있을까?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주님의 마음을 어지럽게 할 정도로 얼마나 괴물의 모습으로 되어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라. 몇 년 전에 영화로 나왔던 아주 못생긴 피오나 공주처럼 신부로서 매력이 전혀 없는 것만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매력에 끌려 자신의 목숨을 끊을 만큼 사로잡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털끝만큼이나마 주님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 그 무엇인지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처음에는 잘 몰랐다. 그러나 신부라는 단어를 접하고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 안에 아주 미세하게나마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 처음부터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짐승과 같은 아니 괴물처럼 생긴 우리의 모습에서는 매력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 안에 거하는 신앙생활 속에 연합의 시작이 이루어질 때 매력덩어리가 발견되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시작되는 순간, 마치 임산부를 초음파사진으로 판독할 때 생명체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태아의 모습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를 발견하는 것과 같이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연합의 신비를 이루어질 때 매력이 발산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자궁 안에서 연합되는 신비로움에 주님께서 한시도 우리에게 눈을 떼지 않고 이글거리는 사랑의 눈으로 주목하시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 이레라는 단어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는 의미로 알고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를 기억하고 목도하며, 감찰하고 탐지하며 바라보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호와 이레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만 적용되는 단어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귀중한 단어라는 것이다.

 

   신부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프헤 (h` nu,mfh) 뉨포(nu,ptw)는 ‘신부처럼 베일을 치다, 젊은 신부 베일을 쓴, 정혼한 여인, 며느리, 딸, 신부’라는 단어들의 뜻을 갖고 있다. 너무나 신기한 것은 신부라는 단어와 신랑(뉨프히오스 numfi,oj)이란 단어가 서로 동의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방, 혼인집(뉨프혼 numfi,on)이란 단어도 신부와 신랑과 함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랑과 신부는 엄연히 성별이 차이가 있고 신분의 차이도 있다. 그리고 자라온 환경이나 문화나 모든 여건들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의어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당혹스러운 단어라는 것이다.

 

   어찌 신랑과 신부라는 단어가 서로 동의어로 같은 뜻을 담고 있어야 하나라고 의문을 갖고 읽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단어 속에 깊은 뜻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온 몸에 전율이 흐르며 몸서리치게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은 결혼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신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남편이 되시는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은 결혼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결혼식이요, 혼인잔치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가들어 오시려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왜 우리가 혼인잔치에 구경꾼이 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신부가 되어야 하는지

 

  신부가 되기 전에 신랑의 마음을 끌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는지 아가서에 나오는 구절처럼 마음을 빼앗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내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발견하셨다는 것이다. 내가 나의 매력을 너무나 모르고 있을 수 있다. 나와 함께 살았던 부인마저 그리고 내 부모마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던 내 부모나 내 부인이나 내 자녀나 그리고 주위에 주변사람들마저도 모르는 매력을 주님만이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 사실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하신 뜻이 바로 이것이다. 주님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을 만큼의 매력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나의 매력을 발견해 주심을 감사하고 기뻐하는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인위적인 매력을 만들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마음을 끌 수 있도록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만이 알아볼 수 있는 매력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신부(新婦) 칼라(lh'q')

 

아가서 4:8 ~ 12

 

8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아라.

9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10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사랑은 포도주에 지나 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 보다 승하구나!

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12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아가 5장 1절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 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이사야 3:20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이사야 49: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이사야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이사야 62: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예레미야 2:32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예레미야 7:34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기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쳐 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예레미야 16:9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를 내가 네 목전, 네 시대에 이곳에서 끊어지게 하리라

예레미야 25:10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소리와 등불 빛이 끊쳐 지게 하리니

예레미야 33:10~11

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1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집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로 돌아와서 처음과 같이 되게 할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3장 10절 내용의 계속임 (10절과 11절의 내용 같음)

요엘 2:16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륌프헤 (h` nu,mfh)

요한복음 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요한계시록 18: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요한계시록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21: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이준호목사

(창골산 칼럼니스트)

ljh41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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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문의는 필자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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