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1988호 /잘못된 모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신앙

작성시간12.12.12|조회수8 목록 댓글 0

창골산 칼럼 제1988호 /잘못된 모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신앙

                   

 

  제19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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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된 모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신앙

 

 

 

 

 

    인간이 된다는 것은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된다는 것인데 과연 예수를 믿으면 참다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최근 어느 신학대학교 교수들이 모여서 심포지엄을 가졌는데 현재 교회를 다니는 신도들은 예수를 믿되 예수처럼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미 예견된 내용들이라 그렇게 당황스럽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오늘날 교회가 은사가 없거나 영성이 부족한 상태라고 볼 수 없는 시대다. 탁월한 프로그램과 이벤트로 처음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이질감이 생길만큼 현대문화를 주도할 정도로 예배와 시설이나 다양한 매뉴얼로 현대인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말씀을 바탕으로 한 내용들을 표출할 수 있는 원형과 본질을 찾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여러 교회에서 은사가 난무했고 영성이 강하게 역사되었던 시대였다. 그런데 부정부패와 음행으로 타락해진 모습들을 보고 딜레마에 빠졌던 장면들이 신약성경에서 다소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비쳐진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신도들의 모습에서 기독교의 신비로움은 사라지고 있다.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사도 요한마저도 사도 바울의 왕성한 전도사역에서 모순된 점을 발견했으며 개혁할 수 있는 대안을 자신이 쓴 복음서와 서신서, 계시록까지 기록했다.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이 복을 받는다고 자신의 계시록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을 교단적인 교리와 제한적인 신학을 바탕으로 읽거나 자기중심적인 신앙의 차원에서 읽어나가기 때문에 그렇게 쉽사리 발견하기 어려우며 깨닫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전해져 왔던 전통과 문화 속에 성경을 읽어왔기 때문에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던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연합하여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하는데 교회를 다니는 것으로 안심을 놓고 있다. 직분을 받게 되었다고 해서 직분을 얻은 차원에서 성경을 읽고 있다는 것이다. 즉 목회자는 설교의 자료를 얻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주님과 연합하고 결혼하는 신부가 되었다고 완성의 차원에서 말씀을 읽어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연합과 결혼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왕이나 왕비가 되었다고 해서 과거에 읽었던 사서삼경이나 고서들을 전혀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가까이 읽으면서 왕과 왕비로서의 덕목을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

 

   교회를 다니게 되었거나 직분을 얻었다고 해서 말씀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특히 목회자들에게는 목회사역에 분주하기도 하지만 노회나 총회 일이나 기타 잡다한 일로 인해 성경을 읽는 것을 등한히 할뿐만 아니라 기도마저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으며 신앙생활이 아니라 목회에 시달려 영, 혼, 육이 지쳐 쓰러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모순 속에 목회를 하거나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으며 딜레마에 빠져 개인이나 교회마다 몸부림을 치고 있는 상황을 자주 엿볼 수 있다. 이미 초대교회에서도 은사가 창궐했으며 강력한 영성으로 부흥했던 적도 있지만 모순적인 신앙의 모습을 사도행전이나 여러 서신들에서 발견하게 된다.

 

   교회사 이래 모순적인 신앙형태가 발견되지 않았던 때는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모순 속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끊임없었으며 진정한 인간으로 돌아서게 하고자 부단한 하나님의 구속사는 중단하지 않고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틈새 속에서도 온전한 주님의 진리를 고수하기 위해 숨은 공로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든 은사가 인간의 혼을 잠재우고 영적 세계와 교통을 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업적을 남기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 모순이다. 혼의 찌꺼기인 잡념을 제거하기 위해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순만 남는 은사를 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를 위한 임재 속에 옛 자아가 죽고 영적 대청소를 하는 작업을 위한 은사를 발휘해야 한다. 짐승의 속성을 죽이는 작업 속에 은사를 사용해야 하는데 은사를 받은 것을 자랑하거나 남에게 이목을 집중시키려고 얼마나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고 있는지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야고보서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는 것과 같이 공급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옛 자아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아니면 흑암의 권세아래서 공급을 받은 것은 아무리 넘치게 받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즉 하늘의 물과 이 땅의 물이 합쳐지면 먹을 물이 없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사상과 이 땅의 사상을 혼합시켜 버리면 온전한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신학이나 교리적인 모순은 이런 양태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분리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혼합되어져 분리작업을 하기에는 너무나 늦은 감은 있지만 얼마든지 하나님의 말씀의 원형과 본질을 찾게 되면 분리되어 진다.

 

   아니 분리보다 올바른 말씀의 개념과 의미를 찾게 된다면 모순적인 문제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재발견해야 하며 원형과 본질을 찾는 길로 들어서야 할 것이다. 혼으로 발견하지 말고 내 안에 이미 임재하고 있는 주님과 함께 신앙의 안목을 갖고 나가야 할 것이다.

 

   신앙적인 모순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모순을 발견해야 하며 모순 덩어리를 과감하게 벗어던져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내 속에 비춰주는 거울로 역할하고 있다. 거울에 비친 잘못된 모순을 찾아 잘못된 것을 고쳐 나갈 수 있는 신앙생활이 되었으면 한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이준호목사

(창골산 칼럼니스트)

ljh41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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