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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는 80대 중반에 예수님을 만나 사랑에 빠진 분이 계신다. 너무 늦게 예수님을 알게 되었음을 애석하게 여기는 늦사랑난 분이다. 너무 늦게 예수님 앞에 나아왔음을 자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복음을 깨달았다는 증거이다. 팔십 평생을 유교사상에 따라 살던 사람이 예수님 사상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그 성도는 과거에는 그 동네에서 내로라하는 대갓집 마님이었다. 새해가 되면 94세이시니 거의 1세기를 사신 셈이다. 그 연세에도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상당히 잘 사는 집에서 나고 자랐다는 말일 게다. 감사하게도 그는 귀도 어두워지지 않고 총기도 사그라지지 않아서 설교 시간이나 성경공부 시간에는 맨 앞에 앉으셔서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씀을 들으신다. 강단에 서면 눈빛을 반짝이며 말씀을 흡수하는 성도들이 큰 힘이 되는 것을 느낀다. 반면에 졸고 있거나 딴 짓을 하고 있는 성도를 보면 퍽이나 실망이 되고 기가 꺾여 말이 잘못 나오는 수가 있다.
94세 되신 최 집사님은 노쇠하셔서 안 아픈 데가 없으시다. 특별히 무슨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니나 뼈가 약해지셔서 허리, 무릎, 다리가 아파서 오래 앉아있기도 힘들지만 수요일 밤 예배까지도 참석하신다. 이유는, 당신이 늦게 예수님을 만나 시작한 늦깎이 신앙이므로 믿음의 그릇을 좀 채워야 천국에 가서 주님을 뵈올 때 부끄러움이 감해지지 않을까 한단다. 늙어서 자기 한 몸도 건사하기가 힘들므로 교회에서 봉사나 헌신을 할 수는 없으나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보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발이 떨어지는 한 기어서라도 교회에 나오고 싶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런 순수한 성도의 어린아이 같은 믿음의 모습이 목회자에게는 격려가 된다. 직장 생활을 할 때 도시 교회에 다니는 동료와 대화를 나누던 중 우리 교회는 주일 오후 예배 참석자가 주일 오전 예배 참석자의 60%, 수요일 밤 예배 참석자는 주일 오전 예배 참석자의 40% 정도 된다고 했더니 부러워했다. 그는 도시교회에서는 주일 오전 예배 외에는 예배 참석률이 저조하다고 말했다. 모두 어디로 가는가? 산으로, 바다로, 관광지로, 일터로, 침대로 간단다. 히브리서 저자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라고 권면하고 있다. 현대교회의 성도들은 과거에 비해 모이기를 힘쓰지 않는다. 바쁘기 때문인가, 믿음이 약해져서인가. 하나님과 본인만 알리라.
최 집사님의 집은 옛날 집 그대로이다. 부엌만 입식 주방으로 고쳤다. 안방은 한지를 바른 창살문 하나로 안과 밖이 구분된다. 높은 마루 아래 놓인 큼지막한 댓돌 하나, 그 위에 가지런히 벗어놓은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언제나 외롭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다. 젊어서야 높은 마루가 먼지도 오르지 않고 시원해서 좋았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무릎이 뻣뻣해지니 마루는 높아져 오르기가 힘들다. 마루 한 번 오르내리기가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내리는 것만큼이나 버겁다.
아들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산다. 아들도 70살이 넘은, 오래 전에 퇴직을 한 노인이다. 최 집사님의 집은 낡고 옛집 그대로여서 연로한 집사님이 겨울을 나기에는 너무 춥다. 11월이 되면 마당에 심은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감을 따고, 김장을 하고, 메주를 쑤고 나서 11월 말 또는 12월 초에 아들네 집에 가신다. 따뜻한 아파트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설도 쇤다. 2월이 되어 입춘 지나고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 지나면 어김없이 돌아오신다. 그 성도가 없는 12월~2월까지 3개월여 간은 선생과 눈을 맞추어주는 착한 학생이 하나 줄어서 성경 얘기를 하는 나는 신이 좀 덜 난다.
2012년에는 2월 17일에 최 집사님이 다른 해에 비해 좀 일찍 돌아오셨다. “올해는 왜 이렇게 일찍 내려 오셨어요?” “아파트는 감옥 같애. 그리고 산성교회에 나오고 싶어서 아들에게 시골 데려다 달라고 날마다 떼를 썼어.”
하루 종일 늙은 어머니와 늙은 아들이 얼굴 마주 대하고 앉아 있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오래 안 보면 보고 싶은 그리운 아들이지만 함께 있으려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두 달이 지나노라면 그것 또한 서로에게 고역이라고 했다. 하루 종일 나눌 말이 없다. 둘 다 과묵한 편이라 첫날에 이런 저런 궁금한 것 알고 나면 다음날부터는 입에 버캐가 생길만큼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모자간이다.
아들은 어려서는 귀엽고 한시도 옆구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비비적대지만 턱에 수염이 자라기 시작하노라면 곁에 오려 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자연현상이요, 인지상정이라 생각하면서도 어미는 그런 아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든다. 우리네 여인네들은 나이가 들면서 아들을 어려워한다. 어렸을 때에는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주며 돌보았지만 성년이 되고 나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사람이 된다. 그래서 모자가 함께 살기는 힘들다. 나이 들면 고부사이보다 모자사이가 더 껄끄러워진다고들 한다. 우리 교회 늙으신 성도들 중 대부분은 아들네 집에 갔다가 며칠 만에 돌아오시곤 한다. 아파트가 따뜻하고 편하긴 하나 마음이 불편하니 몸도 불편하여 오래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 집이 천국이야.”
2월에도 시골집은 여전히 춥다. 오래 난방을 하지 않아 방은 썰렁할 테고, 여기 저기 손보아야 할 곳이 많을 것 같아 주중에 최 집사님 댁을 심방했다. 아니나 다를까, 두어 달 비워둔 방은 얼음장이었다. 따뜻한 아파트에서 살다 와서인지 오자마자 감기에 걸렸단다. 연탄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있었다. 연탄아궁이가 축축한 탓인지 연탄불이 자주 꺼진다고 했다. 전기장판이 있어 이불을 둘러쓰고 잠자기에는 그다지 춥지는 않겠지만 방안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외풍이 심하고 추웠다. 그나마 윗방과 아랫방을 막는 미닫이문이 천장이 내려 앉아 잘 닫히지 않아 반쯤 열려 있어 불이 들어가지 않는 윗방에서 황소바람이 들이쳤다.
목사님은 우선 문틀을 깎아 문이 잘 닫히게 고쳤다. 다음에는 연탄아궁이의 재를 파내어 연탄이 잘 타게 한 다음 연탄불을 살렸다. 우리 부부는 집사님의 손을 붙잡고 감기 빨리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시골의 목회는 성도를 가족처럼, 부모처럼 돌보는 것이어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시골의 목회자는 늙으신 성도들의 자식이다.
우리 교회 제일 연장자(아마 95세쯤)이신 정 집사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내가 우리 목사님, 사모님을 내 아들, 며느리보다 더 이므롭게(편하게) 여긴당게. 내가 우리 아들, 며느리에게도 할 수 없는 부탁을 우리 목사님, 사모님에게는 하곤 하지. 그런 중 알고 주책없는 늙은이라고 하지 말고 우리 어머니 부탁이다, 하고 이해해줘.”
몇 년 전에 함께 근무했던 동료 여교사가 늙으신 부모님에 대하여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말했다. “우리 친정어머니가 시골집에 홀로 사시는데 양 선생님 얘기를 들으니 교회라도 다니시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에 만나면 꼭 교회를 다니라고 권해야겠어요.”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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